뿌린 대로 거둔다. 봄에 파종한 만큼 가을이 오면 거두기 마련이다. 자연의 섭리인 셈이다. 뿌리는 것 못지않게 거두는 일도 중요하다. 제대로 거두지 아니하고 튼실한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유능한 농부의 자세가 아니다.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무렵이면 여기저기서 나름대로 계산하고 결산하는 소리가 들린다. 크게는 국정을 돌아보고 반성과 함께 새해를 설계하고 다짐하는 소리가 커지는 즈음이다. 가정이나 개인도 이런 시간을 거치게 된다.올 세밑도 예년과 다르지 않다. 일반적 세평만으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유통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업수완은 남다르다. 동종업계 경쟁업체의 경영진과는 '결'이 다르다.분명 앞서간다. 정 부회장의 뛰어난 안목과 경영능력은 그가 전면에 나서 추진했거나 도입했던 사업들의 성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대형할인마트 ‘이마트’,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전문매장 ‘일렉트로마트’, 잡화매장 ‘삐에로쑈핑’,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코리아’. 그가 전면에 나서 추진했던 사업은 이미 충분한 성과를 냈거나 전도유망한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정 부회장이 추진한
다시 문경의 모텔에서 눈을 떴다. 어느덧 열 하루가 지나 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도 빨리, 너무도 안타깝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은영은 일어나 앉아 소리를 낮게 죽여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일어났어?”“응. 새 소리에 깼어.” 은영이 돌아보며 말했다. 아직 세수를 하지 않아 부스스한 얼굴이다.그러고 보니 창밖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지저귀는 소리가 햇빛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짹짹, 째재재잭, 삐비비비비비…… 방안에 맑은 음(音)들이 가득했다.나는 일어나 기분 좋게 기지개
경제를 과학적이라고 믿는 이들은 적다. 그러나 수학적 통계로 이해하고 이를 측량자료로 제시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 된지 오래다. 이를 부정할 다른 수단이 없기도 하다. 연말 무렵이 되어서야 지난해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답답하고 느리다.지난해 우리나라 가구소득은 4.1% 늘어났다고 한다. ‘2018년 가계 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늘어났다는 통계를 보면서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믿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통계란 워낙 위장막을 쓰고 있기 일쑤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사회주의체제를 제외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의 특징은 유행이라는 바람에 따라 작동된다. 자칫 유행이라는 헛것을 좆아 헤매는 사회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오해하기 쉽다.그러나 유행을 따라 하염없이 떠도는 사회가 아니다. 그 반대이다. 유행을 창출하는 사회가 시장경제의 골간이다.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 곧 유행이라는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는 시스템이다. 이 생산품이 민생현장에서 소비욕구를 채워나가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비단 의식주를 거래하는 단순한 시장골목만의 기능으로 생각하기 쉽다. 시장경제는 그 사회 민중들의 생각과
“나…… 저기 내려가서 씻고 싶어.” 그녀가 길 옆 하천을 가리키며 말했다.나는 자동차로 돌아가 비상등을 켜고 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서 하천으로 내려갔다. 풀숲에서 하루살이들이 떼지어 날아올랐다. 기껏해야 며칠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들. 쓰르라미는 겨울을 모르고, 고래는 옹달샘을 모르고, 미꾸라지는 바다를 모른다. 그 모두는 각자 한 생명으로 와서, 그 만큼씩 지구를 경험하고 간다. 나는 예닐곱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옹달샘 속이 얼마나 넓은지, 그곳에서 날마다 어떤 드라마가 벌어지고 있는지
지난 한 해를 두고 어느 평론가는 ‘내란’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했다. 일 년 내내 안에서 지지고 볶다가 남은 것은 내상(內傷)만 남긴 허무하기 짝이 없는 해였다고 풀이했다. 함께했던 참석자들도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려 공감한다.안팎으로 고단하기 이를 데 없었던 해였다는 부연설명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모든 것이 정권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결론이 처음부터 쏟아졌다. 경제문제와 정치가 뒤섞여 흡사 서툰 농사꾼이 꼬아놓은 새끼줄처럼 어수선한 분위기로 일관했다.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마무리 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결론으로
순대국밥으로 사대문 밖에서는 맛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던 K여사네 가게가 결국 지난 시월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을 연지 40여년 된 전통(?)있는 맛집으로 꼽히던 곳이다.그런데 폐업까지 가게 된 연유가 또 하나의 소문이 되고 있다. 주인 K여사의 나이 올해 60대 초반, 아직 일선에서 손을 놓을 나이가 아니다. 게다가 이 점포는 그녀가 문을 연 것도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동네시장 뒷골목에 있던 초가집사랑채를 순댓국집으로 개조한 것이 시초였다.노파가 죽자 딸인 K여사가 이어받았다. 그녀는 일찍이 과수댁이 되었다. 생계를 위
오후 세 시, 아직은 배도 고프지 않았고 곧장 영월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골목 안 도로를 천천히 달리다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걸었다. 머리 위에서 태양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거리는 너무 더워서인지 거의 텅 비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모두 우리 두 사람 몰래 어디 먼 곳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학교 담장을 따라 걷고 시장통을 따라 걸었다. 피씨방이 보이고 DVD방이 보이고 카페가 보였다. “피씨방 가서 게임이나 할까?”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영화나 보자면서 DVD방 간판을 가
“아, 맞다.”그 날 우리는 식사를 홀에서 하지 않고 방에서 했다.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은 음식은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났고, 그래서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나른한 몸을 벽에 비스듬히 기댔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르르 아랫목에 누웠다. 따뜻한 온돌방이라 몸이 노곤노곤 녹는 듯했다. 밤을 꼬박 새운 우리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마음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깨우지 않았고, 우리는 어두워져서야 잠에서 깨어났다.그러고 보니 우리는 너무 많은 곳에 추억을 심어놓고 있었다. 뒷날 나는 혼자 추억의 고문을 견뎌야
동네 골목시장 어귀 콩나물집 할머니는 아흔이 되던 지난 가을 초입에 돌아가셨다. 거의 반세기동안 등굽은 할머니가 운영하던 콩나물가게는 아직 문이 닫혀있다. 할머니의 부음이 알려지자 시장골목은 물론이거니와 인근동에 사는 사람들까지 사나흘을 장례식장에서 보냈다.할머니의 자녀들, 2남 3녀 그리고 손자손녀들만 해도 족해 30여명은 넘을 만큼 대식솔이다. 맏상제를 비롯한 식솔들은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충혈된 눈망울로 지냈다. 일찍이 홀몸이 돼 가게 하나에 매달려 슬하의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길러낸 어머니이자 그리고 손
뉴스에 거짓이 많다면 그것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런데 우리네 매스컴이 전하는 소식 중에 국민을 속이는 거짓뉴스가 상당하다고 한다. 정부가 그 허위성을 입증하고 나섰다.단속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채비를 할 모양이다. 당연한 일이다. 거짓뉴스로 국민을 현혹케 하고, 그리하여 뭔가를 편취하려는 패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서둘러 손을 볼 사안인 것이다. 국민도 쌍수 들어 환영해 마지않는다.거짓뉴스의 가장 큰 병폐는 자유민주주의를 파먹는 병균 그 자체여서 그렇다. 나아가 시장경제질서를
버스 정류장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50대 초반 남자의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그의 뒤로 멀리 뿌옇게 흐르는 비안개에 반쯤 잠긴 마을이 보였다. 버스가 도착하고, 여고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내렸다. 아마도 그 아이가 딸인 듯, 남자가 꽃무늬 우산을 펴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뭔가 이야기하며 마을로 들어가는 신작로를 걸었다.동화 속 삽화처럼 푸른 들판 사이를 우산 두 개가 부딪쳤다가 떨어졌다가 하며 둥둥 떠내려갔다. 나도 몰래 그 남자처럼 우산을 들고 은영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고, 눈시울이 뜨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의원이 여자환자를 진단할 때 손목에 실을 묶어 그 촉감으로 상태를 판단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원시적인 진단법일 터다.그런데 지금도 그런 원시성을 고스란히 적용한 곳이 있단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권부의 핵심이라는 곳에서.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정책을 쥐락펴락하는 문제를 두고 뜸을 들인다는 지적이다.정책에는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유효기간과 효과가 확실하게 매겨진다. 정해진 기간 내에 효과유무가 판가름 나는 것이 정책의 생명이다. 나
말을 마친 은영이 탈진한 듯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나는 생수병 뚜껑을 따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물을 몇 모금 마시고 크리넥스로 얼굴을 닦았다.트램폴린의 계집애는 계속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힘에의 의지’ 그 자체가 생명이라던 니체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얼마든지 예쁘게 볼 수 있었지만 하필이면 그 순간 우리 앞에서 생명력을 과시하는 그 천진한 에너지 덩어리가 나는 밉기만 했다.“뭐 좀 먹자.”은영이 말없이 나를 따라 자동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문을 닫고 그녀와 함께 골목으로 내려가 식당을 찾았다.시간을
도심권에서 벗어난 동네 골목시장 안에 있던 세개의 슈퍼마켓이 지난 1년 사이에 하나만 남았다. 두개가 5~6개월을 시차로 문을 닫은 것이다. 가게는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있다. 시장골목에는 이렇게 빈 가게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한때 이 골목시장은 꽤 인기가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선거 때가 되면 특히 그랬다. 후보자들이 거의 줄을 서서 시장바닥을 누비기 일쑤였다. 대통령선거 때는 더했다. 이곳을 다녀간 후보자 가운데 대권을 잡은 사람도 있고부터는 아예 필수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이곳 상인들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니까.
정선의 여관이었고, 아침이었다. 나는 나쁜 꿈에서 깨어났다. 내용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흉흉한 꿈인 것만은 분명했다. 방 안에, 그리고 내 몸 안에 나쁜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건강한 체온이 필요하다. 나는 은영을 안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런데 옆이 허전했다. 눈을 떴다.그녀가 없었다. 화장실에 간 건가.어디 있어? 하고 막연히 불러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다시 크게 은영아, 하고 불러보았다.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예감이 안 좋았다.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은영은
지난 2년 동안 경기불황으로 문을 닫은 기업에서 실직한 근로자가 연속 80만명이 넘는다. 특히 숙박업소와 음식점에서 폐업실직자가 7만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조선업계의 구조조정과 자동차산업불황여파가 서비스산업으로 번진 것으로 분석된다.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취득 상실현황에 따르면 올해 1~9월 퇴사 ‧ 회사불황으로 인하 인원감축 또는 폐업이나 도산으로 고용보험을 상실한 근로자가 총 81만4천947명으로 집계됐다.지난해(83만5천983명)에 비해 올해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80만명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실업의 고착화라
우리 경제부침의 주요요인으로 정부를 꼽는다. 정부 즉 정권의 잘잘못에 경제의 명운이 갈린다고 여긴다. 정권에 대한 판단도 정권단위에 따라 성공여부가 갈린다.그것이 당연시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책에 대한 판단도 정권에 대입해 분별하고 또 성공여부를 점친다. 역사를 읽어내는 우리의 속성이 그렇게 길들여졌다는 해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도 그렇다. 일종의 DNA라고 할까.다른 선진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경제에 가장 큰 영향의 미치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그들은 경제흐름에 대한 안목부터가 우리와 차이가 있다.정책에 대해 이해하
커튼을 젖히자 창문 한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황혼이 내려앉기 시작했다.모듬회와 꽃게매운탕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캔맥주와 찐 오징어를 사들고 밤바다로 나갔다. 낮 동안 달구어졌던 모래는 다 식어 있었다. 파라솔이 모두 치워지고, 북적이던 사람들도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우리는 백사장가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셨다. 검은 밤바다가 발치에서 끝없이 흰 파도로 부서졌다. 파도소리는 낮보다 한층 크게 들렸다. 잠깐잠깐 파도소리가 그칠 때마다 아득히 쿵쿵거리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