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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36회 물수제비를 뜨는 저녁②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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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5  09: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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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아직은 배도 고프지 않았고 곧장 영월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골목 안 도로를 천천히 달리다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거리를 걸었다. 머리 위에서 태양이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거리는 너무 더워서인지 거의 텅 비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모두 우리 두 사람 몰래 어디 먼 곳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학교 담장을 따라 걷고 시장통을 따라 걸었다. 피씨방이 보이고 DVD방이 보이고 카페가 보였다. “피씨방 가서 게임이나 할까?” 내가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영화나 보자면서 DVD방 간판을 가리켰다.

 

DVD방은 지하에 있었다. 진열대를 둘러보던 은영이 <겨울왕국>, <수상한 그녀>, <국제시장> 같은 당시 신작들을 제쳐두고 조금 오래된 <건축학개론>을 골랐다.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들고, 종업원이 안내한 칸막이 방으로 들어갔다. 게스(GUESS) 짝퉁 제우스(GEUSS) 티셔츠를 입고도 남자주인공은 풋풋하게 아름다웠다. 젊음 자체가 이미 명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은영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나는 영화속 주인공들에게 강한 질투를 느꼈다.

영화를 다 보고 우리는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았다. 내가 먼저 일을 보고 나와 통로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늦게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가 DVD를 하나 뽑아들고 오더니 한 편 더 보고 가자고 했다. <데드맨 워킹>이었다.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안 봤어?”

“봤지만, 한번 더 보고 싶어서.”

“…….”

보지 말자고 하는 게 오히려 그녀의 불행을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묵묵히 그러자고 했다.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었던 것이다. 영화를 본 뒤 드라이브를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모텔을 찾으면 될 것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헬렌 프리진 수녀 역을 맡은 수잔 서렌든에게서는 그녀의 과거가 보이고, 사형수 역을 맡은 숀 펜에게서는 그녀의 미래가 보였다. 그만 보고 나가자는 말이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삼켜졌다. 이윽고 “Dead man Walking(사형수 입장)!” 이라는 대사가 나오고 사형장면이 이어졌다.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죽음, 공포에 떠는 사형수, 비정하기 그지없는 집행관…… 그녀는 이따금 눈을 깜박거리며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헛기침을 하며 내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을 뿐이었다.

<데드맨 워킹>까지 다 보고 DVD방을 나왔을 때는 해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기우는 햇빛에 그녀의 한쪽 뺨이 치자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차 어느 쪽에 있지?”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더니 돌연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래 또.”

“그냥…… 좀 현기증이 나서…….”

그녀가 헛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표정을 보니 다행히 복통은 아닌 것 같았다. 중심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퇴근 무렵인데도 거리에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여기 잠깐 앉아 있어. 차 가지고 올게.”

“응.”

나는 자동차를 세워둔 골목을 향해 뛰었다.

 

제법 먼 거리였다. 십 분 가까이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서야 자동차가 세워진 골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급히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차도로 빠져나왔다.

얼마 달리지 않아 DVD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건물 앞에 세워진 빨간 티뷰론의 뒷문이 막 닫히고 있었는데, 뒷유리창에 비친 머리 하나가 아무래도 은영이 같았다.

티뷰론은 뒷문이 닫히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병원으로 데려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별 의심 없이 티뷰론의 뒤를 따랐다. 병원에 도착하면 은영을 인도 받을 생각이었다.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건 그냥 돌아나오건 그건 다음 문제였다. 어차피 도로에서 티뷰론을 세울 수는 없었다.

티뷰론은 몇 군데 병원을 그냥 지나쳐 시가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외곽도로를 달리더니, 어디선가 한적한 지방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빌어먹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시내를 그냥 벗어날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니만,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블랙박스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티뷰론 바로 뒤에 붙어 하이빔을 번쩍거리며 클랙슨을 눌렀다.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티뷰론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울컥 피가 끓어올랐다. 눈물이 찔끔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전화기도 없고, 여기서 놓치면 영원히 끝이다…… 일분일초가 아까운데, 개자식들, 개자식들…… 죽인다…… 나는 살의마저 느꼈다. 몇 킬로미터를 그렇게 질주했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이 악령들처럼 느껴졌다.

 

티뷰론이 산모퉁이를 돌았다. 몇 초 후, 내 차도 산모퉁이를 돌았다.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티뷰론이 비상등을 켜고 십 여 미터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라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내가 시동을 끄는 순간 티뷰론의 문이 열리고 은영이 떠밀려 밖으로 내려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 돌멩이를 쥐어들고 뛰었다. 티뷰론은 은영을 팽개치듯 내려놓자마자 문을 닫고 부웅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달렸다. 모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힘껏 돌멩이를 던져보았지만 이미 까마득히 멀어진 티뷰론을 맞힐 수는 없었다.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쉬며 은영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아마 놈들은 놀러가는 길에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은영을 보았을 것이다. 차를 세워 말을 걸어보지만 대답없이 헛구역질만 하고, 주변엔 아무도 없고, 그래서 들뜬 마음에 은영을 들어올려 차에 태웠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술에 취한 게 아니라 건강이 안 좋은 상태 같고, 게다가 누군가 뒤를 쫓고 있다. 이만한 일로 인생 종칠 것 없다는 생각에 놈들은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은영을 내팽개쳤을 것이다. 그나마 소심한 놈들이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당한 일이 실감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쉽게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당당한 여자였다. 그런 자신이 백주대낮에 그런 꼴을 당하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는 그녀 옆에 앉아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머리가 내 가슴으로 기대져 왔다.

빠아아아아아앙~~~! 요란한 클랙슨을 울리며 몇 대의 자동차가 옆으로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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