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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37회 물수제비를 뜨는 저녁③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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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9  15: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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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저기 내려가서 씻고 싶어.” 그녀가 길 옆 하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자동차로 돌아가 비상등을 켜고 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녀를 부축해서 하천으로 내려갔다. 풀숲에서 하루살이들이 떼지어 날아올랐다. 기껏해야 며칠밖에 살지 못하는 미물들. 쓰르라미는 겨울을 모르고, 고래는 옹달샘을 모르고, 미꾸라지는 바다를 모른다. 그 모두는 각자 한 생명으로 와서, 그 만큼씩 지구를 경험하고 간다. 나는 예닐곱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옹달샘 속이 얼마나 넓은지, 그곳에서 날마다 어떤 드라마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지구는 과연 어떤 혹성인 걸까.

그녀는 물가에 쪼그려앉아 세수를 했다. 마음이 착잡했다. 세수를 마친 그녀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그녀는 얼굴의 물기를 닦고 목운동을 했다.

“괜찮아?”

“응. 참 별일을 다 겪네…….”

그녀가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순간 나는 헤어져 지낸 지난 오 년간의 그녀를 통째로 이해해버린 느낌이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벽이 탁탁 쳐지는 거야’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더는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 숨돌릴 겨를 없이 몰아치는 어처구니없는 많은 불행들에게 끝내는 무릎을 꿇은 뒤에나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와 한 인간을 철저히 부수거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기에 성공하는 자를 초인으로 만든다.

 

“이런 꼴 당하는 나하고 있는 게 좋아?” 그녀가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불쑥 말했다.

“바보.” 나는 일부러 소리내어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 일도 아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아무 일도 아닐 수는 없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사람이라면 나는 일단 티뷰론부터 경찰에 신고하고, 그녀와 함께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은 인생이 얼마 되지 않는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야만 했다. 이미 건너버린 강, 충격을 최소화하거나 무화시키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둥글고 납작한 조약돌을 하나 주워들고 물수제비를 떴다. 조약돌은 서너 번 튕기더니 금방 물에 빠졌다. 다시 몇 개의 돌멩이를 주워 계속 던졌다. 깊이가 얕고 하천 폭이 좁았지만 사선으로 길게 던지자 잘 될 때는 예닐곱 번 가볍게, 가볍게, 물 표면을 치며 튕겨나갔다.

 

다시 돌멩이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데 그녀가 “여기…….” 하며 팔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 납작한 조약돌이 서너 개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준 돌멩이는 대부분 예닐곱 번씩 가볍게 성공했다. 츠츠츠츠츠 마치 살아 있는 뭔가가 물을 밟으며 빠르게 달려나가는 것 같았다. 뒤에서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은영이 감탄의 소리를 냈다. 힐긋 보니 그녀는 겸연쩍게 미소짓고 있었다. 더 이상 조금 전까지의 자조적인 웃음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유희하는 아이가 하나씩 들어 있다. 이 아이는 어떤 상황 속에서건 조건만 주어지면 뛰논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에서도 장난을 친다.

“나도 해보고 싶어.”

그녀가 돌멩이를 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자세가 너무 엉성해 그녀가 던진 돌멩이는 퐁 소리를 내며 빠지더니 다시 나오지 못했다.

“잘 안 되네. 전에 성공한 적 있었는데.”

그녀가 쑥스럽게 웃으며 새로운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잡고 자세를 교정시켜주었다.

“허리를 좀더 숙이고, 팔은 밑으로…… 그리고 물과 수평으로 던지면 돼. 던지는 순간 검지손가락으로 돌멩이를 회전시키는 거 잊지 말고.”

새로운 돌멩이가 그녀의 손을 벗어났다. 그러나 너무 자세에 집착했는지, 이번에는 돌멩이가 싱겁게 허공으로 떠버렸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서 맥없이 퐁당. 그녀는 혀를 내밀었다.

“차분하게 잘 던져봐. 어깨에 힘 주지 말고.”

“알았어.”

그녀가 다시 돌멩이를 몇 개 주워들고 허리 숙여 물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하나, 둘, 셋, 던져나갔다. 마침내 그녀도 몇 번만에 물수제비를 뜨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던진 돌멩이가 퐁, 퐁, 퐁, 수면을 세 번이나 치자 그녀는 펄쩍 뛰어오르며 “와우!” 하고 환호했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짝 부딪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과연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 호모 루덴스였다. 참혹한 재난을 당한 이재민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 놀이터라고 한다.

가끔 클랙슨을 울리며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새들이 울었다. 어둠이 한 겹, 한 겹…… 짙어져갔다.

 

우리는 세상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처럼 키득거리며 계속 물수제비를 뜨다가 어두워 돌멩이가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차도로 올라왔다. 멀리 어디선가 아득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동차 방향을 돌려 다시 영월 시내로 향했다. 영월 시내를 가로질러 소나기재를 넘어 제천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어디쯤에선가 길가 식당에 들어가 장어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나왔을 때는 완전히 밤이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하루가 또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린 것이다. 시간은 우리들 사정 봐주지 않고, 단 일초도 머뭇거려주지 않고, 똑딱똑딱 똑딱똑딱…… 똑같은 속도로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 이제 또 우리는 지상에서의 하룻밤 묵을 방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자동차를 향해 걸었다.

“저기 봐, 은하수야.”

문득 은영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았다. 까만 밤하늘에 은하수가 선명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저기 우주가 있어. 땅위에서 아등바등 살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저기 무한한 우주가 펼쳐져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왜 사나, 왜 사나 싶은데…… 고개만 들면 저기 지상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감 잡을 수 없는 무한한 시간들이 반짝거리고 있어.”

“은영아.”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아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왜?”

“사랑해.”

“어우 바보, 할말 없으면 꼭 그 말 하더라.” 그녀가 내 가슴을 툭 쳤다. 그리고 밝은 음성으로 계속 말했다. “자기하고 돌아다니면서…… 난 요즘 하늘이 지붕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가 말했지. 온 세상이 내 집 같다고. 지금 내 기분이 그래. 난 자기랑 우리 집 정원을 거니는 기분이야. 아주 큰 집…… 아름다워…….”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고 한다면 그것은 욕망의 표적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녀는 한없이 세상을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지상의 시간으로는 감 잡을 수 없는 무한한 시간들이 반짝거리는 하늘 아래에서의 생명을, 한없이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결코…… 결코…… 죽음을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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