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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31회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③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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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25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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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젖히자 창문 한쪽으로 멀리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황혼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모듬회와 꽃게매운탕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캔맥주와 찐 오징어를 사들고 밤바다로 나갔다. 낮 동안 달구어졌던 모래는 다 식어 있었다. 파라솔이 모두 치워지고, 북적이던 사람들도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백사장가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셨다. 검은 밤바다가 발치에서 끝없이 흰 파도로 부서졌다. 파도소리는 낮보다 한층 크게 들렸다. 잠깐잠깐 파도소리가 그칠 때마다 아득히 쿵쿵거리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바이킹 돌아가는 쪽에서 “꺄악, 꺄아아악󰠏󰠏󰠏 !” 하는 여자들의 높은 소프라노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술을 다 마시고, 그녀는 무릎에 턱을 괸 채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쏴아…… 쏴아…… 어두운 바다 저쪽에서 파도가 하얀 띠를 두르고 밀려오고,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문득 그녀가 속삭이듯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파도소리에 먹혀, 들리다가 말다가 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찬송가였다. 내가 알기로 4절까지 있는 노래인데 그녀는 1절만 되풀이 불렀다.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무수한 별들이 빛났다. 까만 밤하늘에 동시에 떠서 이리저리 교차하고 있는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들.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의 시간이란 이슬처럼 덧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덧없는 시간 속에 이다지도 많은 아픔이 담겨 있는 것이다.

“미안해.” 은영이 말했다.

“뭐가.”

“내가 자기를 이용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이 순간 나를 배제한다면 사랑이라는 게 무슨 소용 있는 거니.”

“내가 지금 자기 가슴에 못박고 있다는 거 알아.”

“바보……”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신의 아들 예수조차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로마군인이 건네준 마취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했다. 신외무물(身外無物), 육신을 입은 동안에는 몸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산다는 건 바로 상처를 입는다는 거야. 상처 없는 삶은 없어.”

오, 성이여.

오, 계절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멀리서 폭죽이 터졌다. 불붙은 도화선들이 치직거리며 타들어가 피융, 피융󰠏󰠏󰠏 폭죽을 공중으로 쏘아올렸다. 그리고 펑펑 소리를 내며 방사형으로 터지는 불꽃, 불꽃, 불꽃들. 공중에서 폭죽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좋아서 오우, 오우, 하고 비명에 가까운 탄성을 질러댔다. 모두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은영이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했다.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

그녀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만 서른다섯 살. 죽기엔 너무 눈부신 나이였다.

“나처럼 못된 여자도 없을 거야. 동생도 평생 힘들고…… 자기도 힘들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텐데…… 나 정말 못됐어…… 하지만 어떡해?…… 어떡해?…… 응? 이 방법밖에 없는 걸.”

말을 하다보니 감정이 격해오는지 그녀가 목 멘 소리를 냈다. 그녀는 흐읍, 하고 숨을 들이키더니 허리 숙여 제 무릎을 와락 껴안았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녀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늘 담담한 표정이었던 그녀가 감정이 폭발되자 엉엉 통곡을 했다. 나는 팔을 벌려 그녀의 어깨를 싸안았다.

“이게 뭐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슨 인생이 이렇게 시시해? 무슨 사랑이 이렇게 억울해?…… 응?…… 나 그렇게 죄 많이 졌나?… 못할 짓이라는 거 알아. 그치만 어쩌라구…… 나더러 어쩌라구…… 나 너무 무서운데…… 나 너무 무서운데…… 무서운데…….”

울음 울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등이 심하게 들썩였다. 그녀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이제껏 참아왔던 모든 슬픔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나오는 것 같았다.

힘들게 울면서 태어난 인생. 꽃 피고 새가 날고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프로야구 중계를 하고 거리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데, 혼자 사라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가족과 친구들, 하늘의 빛나는 별, 철썩이는 파도, 모래사장, 푸른 숲, 아름다운 음악, 예쁜 다이어리, 정 붙이고 살아온 그 모든 것을 여기 남겨두고 그녀는 혼자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미치게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자살방조라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계속 울었다. 그녀의 몸은 뜨거웠고,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자기야…….”

눈물 글썽글썽한 얼굴로 그녀가 나를 불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아무리 힘들어하더라도…… 구급차 부르지 마. 나…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아. 자기 옆에서 죽고 싶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과연 내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러나 내 고통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육체적 고통, 죽음에 대한 공포, 다시 못 보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 잔혹한 운명에 대한 저주, 그 모든 것이 복합된 그녀의 고통에는 결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옆에서 끝까지 지켜줄게.”

그녀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허리를 폈다. 나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바닷바람에 섞인 비린내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마. 잠깐만 안 보이면 그게 10년 이별처럼 느껴져.”

어느 정도 격정이 가셨는지 응석을 부리는 목소리였다.

“어랍쇼. 멋대로 눈앞에서 사라진 건 너야. 봉화에서의 일, 벌써 다 까먹었어?”

“그런가?” 그녀가 겸연쩍은 듯 비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자기는 그러지 말라고…….”

“걱정 마. 우린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꽁꽁 묶였어. 아무도 못 떼어놓아. 그리고 난 짱가잖아.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고마워, 짱가.”

그녀가 두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싸쥐었다. 미치 어딘가로 내 모습을 담아가려는 동작처럼 느껴져 나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두운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폭죽,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크고작은 환호소리, 발치에서 무심히 철썩이는 파도,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는 밤바람, 먼바다의 고기잡이배 불빛, 하늘의 별……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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