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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32, 얼굴을 읽는 사람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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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2  10: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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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얼굴을 읽는 사람     

정(鄭)나라에 신들린 무당이 있었다. 이름은 계함이다. 
그는 관상에 도가 터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가 죽을 사람인지 살 사람인지, 복 받을 사람인지 화를 당할 사람인지, 수명의 길고 짧음까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미래에 화를 당하거나 죽을 날짜까지 귀신처럼 알아 말해주니 사람들은 그가 무서워서 보기만 해도 피해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열자(列子)는 도를 찾는 사람이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소문을 듣고 계함을 찾아가 만나보더니 족집게 같은 그의 능력에 매료되었다. 열자에게는 호자(壺子)라는 스승이 있었는데, 모든 일을 그 선생에게 상의하던 터였다. 이번에도 열자는 호자에게 먼저 달려가 말했다.
“지금까지 저는 선생님의 도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나본 사람은 얼마나 신통하던지 선생님을 능가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지 한 번 만나봐 주시겠습니까?”
호자가 대답했다.
“나는 너에게 도를 가르치지만 지금까지 가르친 것은 표피적인 것(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얻지 못한 도를 다른 무엇과 비교한단 말이냐. 아무리 암컷이 많아도 수컷이 없으면 알이 생길 수 없는 법. 어설픈 지식을 가지고 세상과 겨뤄보려고 서두르니 다른 사람에게 쉽사리 속을 읽힌 것이다. 어디 시험 삼아 한번 내게 데려와 보거라.”

다음날 열자는 계함을 대동하여 호자에게 왔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나와서 계함은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의 선생은 곧 죽을 것이오. 열흘을 못 넘길 거요. 내가 보니 당신의 선생은 괴이합니다. 젖은 재(濕灰)의 상이 보였소.”
방으로 들어온 열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옷깃을 적시면서 호자에게 계함의 말을 전하니 호자가 말했다. 
“내가 그에게 보여준 것은 대지의 상이다. 그것은 산처럼 육중하여 흔들리지도 멈추지도 않는 것이니, 그는 나의 덕이 꽉 막혀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어디 시험 삼아 다시 한 번 데려오너라.” 
다음날 열자가 다시 계함을 데리와 와 호자를 만났다. 
차를 한잔 마시고 나와 헤어지면서 계함이 말했다. 
“당신의 선생이 다행히도 나를 만나 병이 나았나 보오. 오늘은 아주 생기가 있어요. 나는 그의 생명의 싹을 보았소.”
열자가 들어가 전하자 호자가 말했다.
“나는 그에게 천양(天壤)의 상을 보여주었지. 이것은 명목이든 실제든 끼어들지 못하며 생명의 조짐이 몸 깊은 데에서 생겨남을 말한다. 내 더한 것을 보여줄 터이니 내일 다시 한 번 같이 오너라.” 
다음날 열자가 다시 호자에게로 왔다. 
잠시 놀고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계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열자에게 말했다. 
“당신 선생의 상이 일정하지 않아요. 그래서 상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변화가 일정해지면 다시 한 번 와서 보기로 합시다.” 
열자가 호자에게 말하니 호자가 말했다.
“내가 오늘 보여준 것은 차별이 없는 허무의 상이다. 그는 거의 조화된 기(氣)의 조짐을 보았을 것이다. 예컨대 소용돌이치는 깊은 물도 연못이라 하고 괴어 있는 큰물도 연못이라 하며 흐르는 깊은 물도 연못이라 한다. 이것은 연못의 아홉 가지 유형 가운데 세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또 무엇을 보여줄까. 내일 다시 한 번 데려와 보겠느냐?” 
열자는 놀라울 뿐이었다.

이튿날 다시 계함을 청하여 호자에게로 가니 계함은 호자를 보자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망연한 표정으로 서성이다가 그냥 나가버렸다. 
호자가 “따라가 봐라” 하였다. 열자가 그 뒤를 좇아 나갔으나 계함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졌는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열자가 돌아와 보고했다. 호자가 말했다. 
“오늘은 내 본질 그대로의 나를 보여준 것이다. 나는 스스로 허심하여 사물의 변화에 순응하니 그가 내 실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바람 부는대로 나부끼고 파도치는대로 흐르는 것을 어떻게 읽겠는가. 그러니 도망쳐버린 것이다.”
스승과 작별하고 나온 열자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여태 나름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 새로운 도(道)가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시험해보곤 하였는데,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진정한 공부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열자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칩거했다. 

- 장자님 잠깐만요. 열자가 칩거를 한다면 책을 더 읽거나 수양을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후 3년 동안 아내를 위하여 밥도 짓고 돼지도 돌보고 했다는데, 이건 무슨 말인지요?
- 허허. 응제왕(應帝王)편을 보고 있군. 자네는 스스로 공부를 많이 했다 생각하다가 진정한 고수를 만나서 형편없이 깨진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 헛공부 했군? 일단 허탈해질 것 같아요. 
- 공부랍시고 아무 일도 안하고 책만 들여다본 세월에 자괴감도 들겠지. 그러면 어떻게 하겠는가. 내 밥벌이나 착실히 하고 사는 것이 마땅하다 싶지는 않겠는가? 
- 그, 그렇습니다.  
- 그래서였을 거야. 열자는 선비입네 하고 으스대던 허식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있으면서 세상의 시시비비에 참견하던 것을 멈추었다네. 세상일을 좋다 싫다 더 이상 따지지도 않고. 
- 아아,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저도 이제 공부 때려치울까 봐요.  
- 때려치우고 뭘 하려고? 
- 글쎄요.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군요. 농사지을 밭이 있나, 가진 기술이 있나, 요즘 같은 구직난 시대에 일 시켜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빼고 생각하니 ‘고등실업자’ 다름없군요. 허드렛일이라도 찾아봐야겠죠.  
- 왜? 구인난도 동시 진행 중이라던데. 
- 좋은 일자리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어차피 입산수도할 재목도 못 되니.
- 됐네, 됐어. 자네는 그냥 계속 책 읽고 글이나 쓰게. 
- 할 깜냥이나 됩니까? 
- 그럼 여태 한 공부를 썩히고 빈손으로 갈 텐가? 요즘은 진심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너무 부족해. 자네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하라구. 그게 주어진 운명인 걸 자네도 알잖나.
세상은 고수가 쌔고 널렸다. 착실히 공부하되 들떠 뻐기지 않는 것. 공부하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황금률이다.   (계속) 

*鯢桓之審爲淵 止水之審爲淵, 流水之審爲淵
 예환지심위연 지수지심위연 유수지심위연
소용돌이치는 깊은 물도 연못이요, 괴어 있는 깊은 물도 연못이며, 흘러가는 깊은 물도 연못이다. (<장자> 응제왕 편)
- 사람의 어느 한 면모만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임을 비유로 들어, 어설픈 공부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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