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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26, 불효막심한 효도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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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31  09: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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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불효막심한 효도

 

며칠 전 꿈을 꾸었어요. 15년 전에 쓰러져 뇌사상태가 된 친척 형님인데, 이제 날 좀 편히 떠나게 도와 달라 하더군요.

이런?

쓰러진 당시에 한 번 가보고는 그 뒤로 회생했단 말도, 죽었다는 소식도 못 듣고 지냈는데, 갑자기 꿈에 나타나니 당황스럽더군요.

실제로 어떤 상태인데?

알아보니 그날 이후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병실에 누워 있다더군요. 산소호흡기만 떼면 끝날 상황인데, 그 아들이 반대해서 못한다는군요.

십 수 년 동안이나?

15년요. 그 사이에 아들과 딸은 청소년기를 지나 30대의 청년이 되었죠. 아버지를 병석에 둔 채로 각기 결혼도 했어요. 일가친척 모셔놓고 여느 사람들처럼 식도 치렀죠.

마음이 짜안하군 그래.

그렇게 죽은 아비를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 효도일까요?

효도? 아닌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데.

살리지도, 보내지도 못하는 아들 때문에 형님의 90세 넘은 아버지는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편한 한숨을 푹푹 쉬고 계시고, 형님의 부인은 누구의 부인도, 과부도 아닌 채로 어정쩡하게 살고 있더군요. 아버지를 떠나 보내지 않으려는 연민은 가상하나 살아있는 조상을 위해서는 불효 아닌가요? 또 온 가족이 나눠 지고 있는 경제적 부담은 어떻고요.

그렇군. 죽은 아버지한테 효도하느라 살아있는 조부모와 어머니에게는 못할 고생을 강요한 셈이네. 불효막심한 효도로군.

요즘 젊은이가 이런 고집을 부리다니, 안타까웠습니다.

영혼과 육신의 의미를 잘 모르는 청년인가보군.

명색이 성직자의 길을 가고 있답니다.

하하. 난해하군.

그런데 요즘도 이른 사람들은 꽤 있나 봅니다. 십년 넘은 식물인간. 누가 그러는데, 식물인간 한 사람이 몇 사람을 먹여 살린다고도 하고요. 살아있는 사람에게보다 더 많은 유지비가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놓아두기라도 한다는 건가? 에이, 설마….

 

장자님은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 항아리북을 두드리며 노래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아아, 그 얘기? 혜시가 쓸 데 없이 그 일을 세상에 알려가지고는, 내가 천하에 의리 없는 남자처럼 소문이 났네 그려.

장자님이야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분이니, 아는 사람이 이승에 있으나 저승에 있으나 매한가지일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죠. 마누라가 죽었는데 노래를 부르다니요.

허허. 사람이 나고 죽는 것은 사계절이 순서대로 돌아오고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세. 보통 사람들도 한 해가 저문다고 슬퍼하지 않고, 꽃이 진다고 애곡하지 않지 않는가. 인간의 목숨도 다르지 않네. 나고 죽는 일은 늘상 이어지는 일이어서 이승에 있기도 하고 저승에 가기도 하고 또 이승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지. 굳이 통곡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네.

그래도 이별이란 슬픈 일 아니겠습니까? 내가 아끼던 꽃나무가 강풍에 쓰러져 사라지면 마음이 허한 법인데, 더구나 함께 살던 사람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인데요.

맞아. 그건 나도 부인하지 않겠네. 실은 마누라가 죽었을 때 한참을 울고 있었지. 그러다가 문득 하릴없이 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네. 이게 무슨 청승맞고도 쓸데없는 짓인가 생각이 들었지. 운다고 다시 불러올 수도 없고. 그래 평생 고생만 시켰는데, ‘가는 길이라도 편히 잘 가게’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주던 참이었다네.

사람은 왜 반드시 죽어야 하는 걸까요.

내 아무리 도를 닦았어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재주까지는 익히지 못했네. 그건 다행한 일이야. 늙고 병든 몸으로 몇백년을 더 살면 뭐하겠나. 사람이 죽지 않거나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가정해보게. 그래서 이 세상에 몇백 살 먹은 늙은이들이 득실거린다면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날 테니까 말일세) 세상이 재미있겠나? 저 숲에 향기 나는 꽃도 피울 줄 모르고 더 이상 열매도 맺지 못하는 고목들만 가득하다고 상상해보게. 그래서 새로운 꽃나무나 유실수가 자라날 틈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못하는 컴컴한 밀림이 되겠지.

그것도 좀 곤란은 하겠군요.

그래. 적당히 살았으면 떠날 사람 떠나주는 게 전체를 위해 좋은 걸세. 그리고 늙었으면 떠나가야 새 생명으로 돌아올 게 아닌가.

윤회를 한다는 말씀이로군요?

뭐, 딱히 그렇다고 단정은 않겠네. 죽은 자리에서 새 나무가 자라나면 그게 어디 고목이 새로 돌아왔다고 하겠는가. 그것은 새 생명이지.

그러니까 새 생명으로 돌아온다는 말씀인가요?

하하하…. 그래 새로 태어난 목숨은 온전히 새 생명이지. 지난 삶을 기억까지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지 않는가.

그래도 죽은 부인의 시신을 앞에 놓고 노래를 부르다니 혜시가 놀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놀래킨 거에요.

그래, 그래. 이해는 한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게 아니라네. 오히려 죽은 자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고 보는 게 맞아. 요즘은 ‘마누라 죽어서 좋구나, 이제 나는 자유로구나’ 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웃는 놈들도 많다던데. 뭐 자기 맘이겠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나는 얼마든지 나 자신을 떳떳하게 변증할 수 있네.

요즘 중국에서는 장례식에서 잔치를 많이 벌인다더군요.

그래. 그게 좋아. 누구나 가는 길을 가는 것인데, 청승맞게 통곡이나 하고 있으면 뭐가 좋겠는가. 가는 사람도 마음이 아파서 발길이 안 떨어지겠네. 그래서 내가 유가(儒家)의 청승맞은 전통을 싫어하는 거야. 갈 사람은 홀가분하게 가도록 해줘야지. 중국 말고도 그런 종족들이 더러 있지.

내 친척 조카에게도 이제 말을 좀 해줘야겠어요. 편히 보내드리라고.

굳이 말하면 듣겠는가? 매정하다는 말이나 듣겠지.

그렇겠죠? 아, 여전히 고민은 됩니다.

 

*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노아이생 일아이로 식아이사)

삶은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죽음이 나를 쉬게 해주네. 그러므로 자기 삶을 좋아하는 자는 또한 죽음도 좋다 해야 하리라. (<장자> 대종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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