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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19, 인간의 시간, 우주의 시간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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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27  09: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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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인간의 시간, 우주의 시간         

- 해가 바뀌었습니다. 
- 뭐 벌써 바뀌어. 난 달력 하나도 못 구했는데? 
- 에이, 달력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하늘나라 계신 분이. 
- 하아, 그래도 기념이라는 게 있잖아. 아무리 시간이 관념이라 해도, 그 관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즐기는 건 결코 무의미하지 않네. 사실 12월 31일이라 해서 다른 날과 다른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렇게 숫자를 부여해놓지 않았다면 밀이야. 그저 새털같이 많은 날들 중 하나지. 하지만 그 날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정해 의미를 부여하니 지상의 수십억 인구가 즐겁게 지낼 수 있지 않은가. 
- 명절이다 생일이다 기념일들이 다 그렇죠.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루다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특별하다 생각하면 특별한 날이 되기도 하고요.
- 그래. 이건 지혜일세. 만일 아무 날에도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산다면 끝없이 지나가고 끝없이 새로 오는 날들, 지루해서 어떻게 살겠나. 
- 동감!! 월화수목금토일 금방금방 반복되는 요일만 해도 그래요. 이렇게 이름을 붙여놓고 어떤 날은 일하고 어떤 날은 쉬고 하니까 생활에 리듬이 생기죠. 리듬이 있으니 생기가 일어나거든요. 쉬는 날에 대한 기다림, 기다림과 아쉬움 같은 것들이, 다 이 관념 덕분이에요. 
- 호옷, 중요한 점을 얘기했네. 리듬. 
- 비~트(beat) ! 그런가요?  
- 리듬이란 건 굉장히 중요해. 우주도 인체도 다 리듬을 가지고 있지. 리듬이 생명의 출발이야.  
- 건강에 중요하다는 말이겠죠?
- 그 이상이지. 자네는 아직 충분히 느끼고 있지 못한 것 같은데, 사실 지구의 시간은 그 리듬으로 돌아가지. 시간의 동력이라고. 월하수목금토일, 봄여름가을겨울, 1년 365일. 이 리듬이 없다면 어떻게 시간이 돌아가겠나. 
- 흐음.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냥 인간이 명칭을 붙여서 그렇게 된 것 아니고요? 12월31일, 1월1일. 그게 딱 그날이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하루이틀 앞이나 후면 어떻고, 몇 달 뒤라면 어떻습니까. 1년이 반드시 겨울에 시작되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여름에 1월이 오면 안 되나요? 일주일이 닷새면 어떻고 사흘이나 열흘 단위로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10진법을 쓰는 인간에게는 열흘 단위가 더 편리할 수도 있겠어요. 
- 쯧쯧, 리듬의 의미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게. 물론 여름에 새해가 시작돼도 상관없긴 해. 호주나 남아프리카의 1월은 가장 더운 철에 오지. 하지만 1년이 왜 365일인지, 왜 4계로 나눠지는지, 일주일은 왜 7일 단위인지 생각해봤나? 하루가 12시간인 이유는?  
- 그렇군요. 1년이 365일인 건, 지구 공전주기가 그러하니 임의로 정할 수 있는 단위는 아니겠어요. 예외는 있는 셈이군요. 
- 날짜나 시간에 붙은 숫자는, 그렇지 인간이 정한 관념기호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기도 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365일의 자전을 한다는 것, 그 사이에 정확하게 봄여름가을겨울이 한 주기 순환을 한다는 것, 1년을 열 달로 나누는 것보다 열두 달로 나누는 것이 계절구분에 보다 합리적이라는 것. 달이 뜨고 지는 날수만큼으로 정한 음력역법. 모두 타당성이 있지. 달이 한번 부풀고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1/4로 나눈 것이 1주간(7일)이란 기간과 맞아떨어져. 물론 하루이틀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그렇게 보면 1년의 시간도 정확히 365일은 아니지. 0.24일이 더 지나가지 않나. 그래서 4년마다 하루씩 윤년을 두지 않나. 음력에는 윤달이 자주 있고….   
- 오, 듣고 보니 그럴 듯합니다. 인간이 만든 기호들과 우주 천체의 운행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관성이 있다는 얘기지요?
- 그렇지. 필연적인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야. 인간이 기호를 만들자 우주가 그에 맞춰 돌아가는 게 아니고, 우주의 질서를 보고 인간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기호들을 만든 거야. 물론 그 사이에 필연성이 적은 단위들도 있긴 한데, 거기에는 합리성이 기준이 되질 않았나. 
- 장자님 시대에도 이런 역법(曆法)이 있었습니까? 일주일은 7일이라든가. 
- 있었지. 중국 대륙이 한 나라로 통일되기 전 요순 이래의 고대국가들은 기원전 3천년 경? 이때 이미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기호들이 있었지. 그 상형문자들의 중심에 천문 역학을 반영한 절기가 나타나 있어. 저 중동 사람들이 신봉하는 창세설화에도 7일이 나오지 않나. 신(神)이 엿새에 걸쳐 지구를 만들고 마지막 하루를 쉬었다. 7일 주기의 역법이 이미 존재했다는 말이야. 그건 아마도 5천 년 전에 쓰여졌다더군.  
- 인간만의 시간은 아니로군요. 그렇다면 지금 인간들이 사용하는 시간의 개념이 우주에도 통하는 것입니까?  
- 허허. 그렇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해. 생각해 보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 적이 있나? 저 별들에게는 낮과 밤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없을까.
- 있겠지요. 
- 하하.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네. 하루의 낮과 밤은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야.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의 대다수는 태양계 밖에 있거든. 자전을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해. 낮과 밤이 순환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겠나. 
- 낮과 밤이 순환하지 않는다면 날짜가 바뀌지 않는 거죠. 앗, 그렇다면 그곳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 셈이 되겠군요. 
- 우리가 1년이라고 인식하는 시간이 어느 별에서는 단 하루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수백 년이나 수천 년이 될 수도 있겠지. 낮과 밤의 개념이 아예 없는 별도 있을 테고. 
- 아아….
- 쥐라기라고 부르는 공룡시대를 생각해 보게. 1억~2억년 전 어느 시기에 수백만 년동안 지상에서 번식한 공룡들이 있었지. 흔적도 없이 멸종했네만. 적어도 수백만 년간 지상의 최고 지배자였단 말이야. 지금 우리 인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수십만년? 그런데 우리는 공룡들의 기나긴 시간보다 더 오래 지구를 지배해온 걸로 착각을 하지. 
- 고독하군요. 지구상의 인간은 우리만의 시간을 살고 있었어요. 다른 천체까지 갈 필요도 없이 과거에 살던 지구 고생물들의 시간도 우리는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어쩌면 보잘 것 없는 건 태고적 공룡들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인간들의 시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짧아요.
- 그래도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인간의 시간에 충실하도록 하게. 매번 다시 태어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말일세. 일단 푹 쉬게나. 새해 복 많이 ! 
  

年不可擧 時不可止 (연불가거 시불가지) 
늙어 가는 나이는 막을 수 없고, 흘러가는 시간은 멈출 수가 없네. 
消息盈虛 終則有始 (소식영허 종즉유시)   
생성소멸과 채우고 비우는 일은 반복되니,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지. 
(<장자> 추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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