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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27회 칠 월의 신부③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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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12  10: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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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 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고생해서 돌아가면 한밑천 잡는 것이다. 중국에 갔을 때 민공(民工: 농촌 출신 노동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혼났었다. 한국인들 몰인정하다고 욕하면서 돌아간 중국 노동자들이󰠏󰠏󰠏조선족이든 한족이든󰠏󰠏󰠏같은 중국 인민인 민공들을 사람 취급 안 하는 모습을 나는 많이 보았다.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정도 거의 엇비슷하다. 나는 그들이 한국에서 벌어간 돈으로 제 이웃들에게 ‘행세’할 거라는 생각에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은영은 아마 우리가 그들보다 조금도 더 성숙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 무엇보다 지금은 그런 대화를 할 때가 아니다. 좋은 이야기, 가슴은 찢어지더라도 밝고 건강한 이야기를 할 때다.

“이제 동해바다 가자.”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자동차가 세워진 곳을 향해 걸었다. 길바닥에서 뿜어져나오는 지열이 온몸을 후끈거리게 했다. 거리 전체가 사우나탕 같았다. 글자 그대로 가마솥 더위였다.

“있지, 그냥 알아둬. 난 저 사람들 무조건 옹호하는 거 아냐.”

걸으면서 은영이 중얼거렸다. 교복 입은 남녀 학생 예닐곱 명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자기 말처럼 ‘환율의 마술’에 끌려 우리나라로 일하러 온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알아. 나 저 사람들 고통받는 선량한 천사라고 생각하지 않아. 우리들 중에 나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저 사람들 중에도 나쁜 사람들이 있어. 나도 알아. 내 말은…… 그냥 인간이라는 거야. 저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불체자라 해도 추방당하는 날까지는 사람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거야.”

물론 나는 그녀가 어떤 도그마에 홀려 외국인 노동자 운동에 뛰어든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도 배척당하지 않는 사회, 주저앉은 사람 일으켜세워 함께 가는 사회,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굴며 뛰노는 세상을 꿈꾸었을 뿐이다. 그녀에게는 적(敵)을 부르는 전체주의적 도그마가 없었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 잠수함 속의 토끼…… 그녀는 천진한 휴머니스트였다.

“예 알겠습니다, 황 간사님. 명, 심, 하겠습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일부러 고개까지 숙여가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쭈, 약올리고 있어.”

은영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과장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옆구리를 싸쥐고 넘어지는 시늉을 했다. 헐렁한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차림을 한 아가씨 하나가 택시를 기다리다 말고 우리를 힐긋 바라보았다. 여자의 손에는 서울의 유명 백화점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선캡만 쓰면 당장이라도 자동차를 얻어 타고 바다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미쳐, 미쳐.”

은영이 웃으며 투덜거렸다.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도로변에 있는 컴퓨터 가게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넜다. 컴퓨터 학원 계단에서 사복차림의 여학생들이 와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여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깊은 산 계곡의 물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렸다.

신랑신부는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예식장 옆 골목에 꽃과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된 웨딩카가 보이고, 신랑신부가 보이고, 친구들이 보였다.

예복을 벗고 나들이복으로 갈아입었지만 신랑신부는 첫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신랑은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친구들 중에는 결혼을 한 듯한 사람들도 있었고 안 한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신랑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은 서로를 탐색하는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아마 그들은 오늘 영주 시내로 나가 밤늦게까지 함께 젊음을 즐길 것이다. 어쩌면 몇 개월 뒤, 그들 중 새로운 한 쌍이 다시 그들 모두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결혼식을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상에서의 삶은 그렇게들 흘러가는 것.

“신부 이쁘지?”

은영이 말했다.

“바보. 안 이쁜 신부가 어딨냐? 원래 주인공은 안 이뻐도 왠지 이뻐보이는 법이야.”

“그런데 왜 자꾸 봐?”

“보긴 누가 본다고 그래! 자꾸 말시키니까 보는 거지.”

나는 일부러 심술궂은 소리를 냈다.

“치.”

은영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때 갑자기 그럴 듯한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서 반짝, 하고 떠올랐다.

“따라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야?”

“가 보면 알아.”

번화가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사진관을 찾았다. 사진관 앞에서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여긴 사진관이잖아. 왜 여기 온 거야?”

“결혼사진 찍자고.”

“무슨 결혼사진?”

“우리 둘이 나오는 결혼사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들어가보면 알아.”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 대뜸 주인에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빌려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분명히 돈을 지불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주인이 일단 소파에 앉으시라고 하고는 몇 군데 전화를 걸더니 빈 예식장을 빌려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늘 당장 사진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원하는 사진의 매수와 사이즈를 묻더니, 계산기를 두드려 가격을 산출해 냈다. 도중에 은영에게 신부화장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은영이 그러면 너무 복잡해지니까 안 해도 된다고 하자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신부화장까지 한다면 오늘 내로 사진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럭저럭 70만 원 가까운 돈이 나왔다. 주인은 사진을 찍으려면 지금 계약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은영이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사진 몇 장 찍는데 너무 많은 돈이 든다고 관두자고 했다. 70만 원은 나에게도 생각 밖의 금액이었다. 뭔가 모르게 바가지를 쓴다는 느낌이었지만, 마음이 급해 네고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친걸음이었다.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흔쾌히 계약금을 지불했다.

예전 같았으면 극구 말렸을 텐데, 은영은 더 이상 고집피우지 않았다. 못본 척하며 벽에 걸린 사진들로 시선을 돌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나 못지 않게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주인이 결혼식 사진들을 보이며 원하는 예복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다. 우리가 디자인을 고르자 주인은 진열대 안에서 나와 우리 신체 사이즈를 재보더니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은영이 생각보다 복잡해진다고 속삭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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