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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19회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 비창④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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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0  10: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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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배가 고파지고 있었다. 천천히 시가지를 돌며 적당한 식당을 찾는데 문득 바지 주머니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손을 넣어보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휴대폰이 없어진 것이었다. 아무래도 해남의 식당에 놓고 나온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기가 제3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나는 한적한 길가 공중전화 부스 앞에 차를 세우고 방향등을 켰다.

“왜 그래? 어디 전화하려고?”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응. 아무래도 휴대폰을 해남 식당에 놓고 온 것 같아.”

나는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로 내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기는 계속 꺼진 상태였다. 나는 식당 이름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몇 가지 비슷한 이름을 기억해내고 114로 문의를 했다. 몇 개의 번호를 얻었다. 다 엉뚱한 곳이었는데, 그 중 한 식당 주인이 친절하게도 내가 위치를 알려주자 아침의 그 식당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그렇게 얻은 전화번호를 돌렸다. 다행히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지금 찾으러 가겠다면서 만약을 위해 계속 휴대폰을 꺼놓은 상태로 두라고 부탁했다.

전화를 끊고 자동차에 올라탔다.

“거기 있대?” 하고 은영이 물었다.

“응.”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보성을 벗어나기 위해 사거리에서 차를 U턴시켰다.

“지금 거기 가는 거야? 해남 식당?”

“응.”

자동차가 보성 시가지를 벗어나 들길을 달렸다. 구름에 달이 가려지자 하늘이 온통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온세상이 검은 바다 한가운데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옆에 있어 안심이 되었다. 나는 당장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그녀만 옆에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묵묵히 차를 운전했고, 그녀도 별 말이 없었다. 장흥 외곽도로를 달릴 때쯤이었다. 힐긋 보니 그녀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싸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왜, 어디 아파?”

“아냐. 그냥…… 보고싶지 않아서. 돌아간다는 게 왠지 슬퍼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빌어먹을. 나는 적당한 곳에 자동차를 세우고 기어를 파킹으로 옮겼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되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와 있었던 것이다. 되돌아간다 해도, 그녀는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지 말까?”

그녀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가나 안 가나 마찬가지야. 전화기 찾아야지.”

그렇다. 설령 꺼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개인정보가 가득한 전화기는 옆에 있어야 한다. 후득후득,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멀찌감치 피씨방 간판 불빛이 보였다.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저기 피씨방에 들어가 있을래?”

그녀가 피씨방 건물을 바라보더니 “그럼 나 게임이나 하고 있을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동차를 피씨방 앞으로 몰았다.

나는 그녀에게 지폐 몇 장을 쥐어주었다.

“한 시간 반 정도면 돌아올 수 있을 거야. 식사는 갔다와서 하자.”

“응.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까 너무 빨리 달리지 마.”

그녀가 숄더백을 메고 차에서 내렸다. 차문을 닫은 그녀가 빨리 가라고 손짓하며 피씨방을 향해 걸었다.

나는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가 이내 장흥을 벗어나 어두운 국도를 달렸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항상 함께 여행을 하다 갑자기 텅 빈 조수석을 보자 그녀를 세상 끝에 버려두고 혼자 떠나온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어느 겨울날 위암 진단을 받고 혼자 비틀거리며 병원문을 나섰을 그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해남에 도착해 식당에 들어가자 휴대폰은 카운터 옆에 놓여 있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급히 식당을 나와 다시 차에 올라탔다. 나는 빨리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해남 읍내를 벗어나 어두운 들판을 달렸다. 와이퍼가 북북거리며 끝없이 몰아치는 빗물을 닦아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앞차를 추월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절망적인 조바심이 계속 액셀을 밟게 했다. 자동차바퀴가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게 아니라 쭉쭉 미끄러지면서 1센티미터쯤 공중에 떠 날아가는 것 같았다.

장흥에 도착해 피씨방 문을 열자 컴퓨터 앞에 앉아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

“무슨 게임했어?”

“그냥 이것저것 인터넷 검색만 했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이때 피씨방에서 나에게 보내는 메일을 썼다.

 

우리는 피씨방을 나와 자동차에 올라탔다. 나는 시동을 켜고 보성 방면으로 달렸다. 장흥에서 잘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그만큼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한 시간 넘는 질주의 가속도에 계속 밀려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적당한 속도로 계속 빗길을 달렸다. 어느새 주변에 불빛들이 모두 사라지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은 젖은 아스팔트만 끝없이 밀려왔다. 나는 양손으로 핸들을 쥐고 말없이 운전에만 열중했고, 그녀도 말이 없었다. 가로수들과 어두운 야산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나갔다. 이따금씩 반대편 차선에서 강렬한 불빛을 쏘며 자동차들이 달려와 망막을 하얗게 지우고 뒤로 사라지곤 했다. 자동차는 순천을 지나 계속 어둠 속을 달렸다. 몇 번인가 불 밝힌 상점과 주유소를 지나고, 몇 번인가 텅 빈 시골마을을 통과했다.

 

밤늦게 구례에 도착했다. 시가지가 빗속에 불을 밝히고 수중도시처럼 떠 있었다. 천천히 골목 안 도로들을 운전하다 불 켜진 식당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식당에 들어가자 실내 공기 속에 섞인 고소한 기름냄새, 풋김치 냄새, 얼큰한 국물 냄새가 주린 위를 자극했다.

해물탕 작은 것에 공기밥과 우동사리를 주문했다.

해물탕이 불 위에 올려지고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침이 고였다. 반찬으로 갓김치와 꽈리고추 조림, 나박김치가 나왔다. 시원하면서 따뜻한 해물탕 국물이 들어가자 혀와 위가 만족했다. 나박김치도 맛깔났고, 갓김치는 쌉싸름하면서 매콤한 맛을 풍기며 아삭아삭 기분 좋게 씹혔다. 이토록이나 천박한 몸이었다니! 나는 내 몸의 반응이 무서웠다.

그녀는 예전과 달리 좋아하는 꽈리고추조림에 손을 대지 못했다.

식당을 나와 가까운 모텔을 찾아 들어갔다. 인조벽돌에 인조 담쟁이넝쿨을 붙인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깨끗한 모텔이었다.

다섯 번째 맞는 밤.

그러니까 힘들게 받아낸 휴가가 벌써 다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사표를 낼 작정이 아니라면 나는 늦어도 이삼일 후에는 반드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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