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꽃을 꺾어
꽃다발을 바칩니다.
이 저녁 꺾지 않으면
내일이면 시들 이 꽃들을.

그대는 이걸 보고 느끼겠지요.
아름다움은
머지않아 모두 시들고
꽃과 같이 순간에 죽으리라고.

그대여, 세월은 갑니다. 세월은 갑니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갑니다.
그리고 곧 묘비 아래 눕습니다.
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죽은 뒤엔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동안.

삐에르 드 롱사르 <내가 만든 꽃다발>

 

  지금은 하나도 없지만 예전에 나에겐 하모니카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내 곁에 약 오 년간, 다른 하나는 이십일 년간 있었다. 오 년 동안, 그리고 이십일 년 동안 두 개의 하모니카는 내 곁에 머물면서 어느 정도 내 인생을 규정했다. 그리고 지금은 둘 다 내 곁에 없다. 남은 것은 추억뿐이다.
  세월은 우리들 심장에 지을 수 없는 추억을 새겨놓고, 우리의 심리적 외상(trauma)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간다. 
  음악적 소양이 거의 전무한󰠏듣는 것은 좋아한다󰠏내가 하모니카를 두 개씩이나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하모니카 같은 것 없이도 잘 살았을 것이다. 사랑 없는 세상에 사랑을 주러 왔다가, 상처만 입고 돌아간 가엾은 천사. 

*

  몇 년 전 체코를 여행하다 한국어를 배웠다는 50대 초반의 체코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전형적인 슬라브족 여인이었다. 나이 탓인지 몸집은 조금 불어나 있었다. 여인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떠듬떠듬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서툰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여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 내용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여인은 자신의 남편이 한국인이었으며, 오 년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편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 사랑으로 메울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남편은 낯선 이방인들 틈에서 죽었다. 남편은 아파 신음할 때 가끔 한국어를 말했다. 나는 남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남편은 울기도 했다. 남편은 물론 체코 말도 했다. 그러나 이따금 나오는 한국어는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럴 때 남편은 외계인처럼 낯설었다. 남편을 그렇게 보내놓고 뒤늦게 한국어를 배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서 남편 고향의 흙을 가져오고 싶다.”
  나는 가방에 달려 있던 하회탈 고리를 여인에게 기념으로 건네주었다. 여인은 하회탈의 웃는 모습이 슬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슬픈 사람들이 이 탈을 쓰고 썩은 귀족사회를 풍자하는 춤을 추며 놀았다고 설명해주었다. 내 가방에 매달려 달랑거리던 미니어처 하회탈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듯 곱게 싸쥐던 여인의 손이 기억난다.
  나는 여인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인의 남편이 고독하게 세상을 떠났으리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터져나온 남편의 모국어, 그것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다 해도 두 사람이 허물 수 없는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다.
  4․19세대를 대표하던 평론가 김현은 자신의 저서에서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먹지 않았다’고 밝혔다. 육체는 계속 늙어가지만 정신은 그 시기에 멈추었다는 것이다. 김현은 4․19 이후, 그러니까 유신세대와 5․18세대의 사유양태를 때때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나의 대학 선배인 어떤 소설가는 김현의 어투를 빌려 자신은 1987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5․18세대인 그 선배 소설가는 촛불시위 세대의 사유양태를 때때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건 사상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어리석거나 현명하거나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그냥 자연(自然)이 그런 것이므로. 트로츠키라면 아마 1917년 11월 이후 자신은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고 말했으리라.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세계 각국을 전전하며, 결국 언젠가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유서를 남긴 외로운 늑대 레온 트로츠키. ‘방금 아내가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열어 집안 공기가 신선해졌다. (……) 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미래의 세대는 이 아름다운 대지 위에서 모든 악과 억압과 폭력을 일소하고, 완전한 아름다움을 구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자기 시대를 사랑한 사람들이다. 뜨겁게 산 사람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들 정신은 모두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안타까운 어느 한 시기에 고착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청춘시절 듣던 유행가를 평생 들으며 살아간다. 자기 시대에 대한 의리이든 기억의 저장용량의 한계이든, 더 이상은 못 받아들인다. 그렇게 어떤 세대는 조용필을, 어떤 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어떤 세대는 동방신기를 평생 듣는다. 지구 반대편 낯선 대륙에서 슬라브 여인과 결혼을 한 코스모폴리탄 한국남자는 죽기 직전 때때로 한국어를 발음하여 사랑하는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제2의 언어는 ‘어머니의 혀(mother tongue)’로부터 배운 모국어를 이기지 못한다. 고통스러울 때는 더더욱.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히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세월 속에 우리들 인생도 함께 흘러간다. 집단의 역사가 흘러가고 우리들 개인사가 함께 흘러간다. 우리들 가슴이 입는 상처는 각자의 상처일 뿐. 머뭇머뭇 돌아다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흐름 속에 밀려간다.
  어쩌면 우리들 마음 속에는 청동거울이 하나씩 들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쉽게 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의 이미지를 저장해두는 청동거울. 그리고 잠 못 드는 밤, 우리는 뒤척이며 자기도 몰래 청동거울을 꺼내 파랗게 낀 녹을 닦아내는 것 아닐까. 녹이 닦여지고 청동거울이 빛을 내기 시작하면…… 거기…… 서서히…… 우리들 생에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비친다. 거기, 우리가 지나온 그리운 풍경들이 있고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돌아가고 싶은, 그러나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누군가에게는 한(恨)으로 남아 있기도 한 그런 시간. 예민한 사람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 몇 방울쯤 흘리기도 하겠지.
  내 마음속의 청동거울을 닦아내면 두 개의 하모니카가 비친다. 그리고…… 그리고 또 한 여자. 들릴 듯 말 듯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내 인생의 시계는 2015년 여름에 멎어버렸어. 그 해 여름 이후 물리적 시간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 신기하고 재미있긴 하지만,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 하모니카를 전설의 악기로 만들어버렸잖아? 
                                                                <계속>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