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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읽는 고전 사기(史記)] 천오백만평 무덤, 인부들을 함께 묻다153. 진시황⑦ 내란정국
정해용  |  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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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9  09: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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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大吏持祿取容 黔首振恐 대리지록취용 검수진공
대신들은 녹위를 지키려고 침묵하고 백성들은 두려워 떨다. <진시황본기> 
2세 황제와 조고가 대신들을 살육할 때 대신들이 보인 태도를 나타낸 말

2세 황제는 즉위 직후 아버지 진시황의 릉(陵)을 여산이란 곳에 만들었는데, 그 공사는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새로 만드는 만큼이나 거창했다. 정복전쟁 과정에서 체포해 끌고 온 70여 만의 포로들이 땅을 깊이 파고 다시 쌓아올렸다. 

깊이 파서 만든 묘실은 구리(청동)를 녹인 물로 틈이 생기지 않도록 메워 바닥과 외관을 설치했으며, 궁의 대신과 백관 기묘한 그릇들과 각종 기물의 모형들을 만들어 실제 궁과 같은 모습으로 꾸몄다. 

묘실 천정에는 천문의 도형을, 바닥에는 산천의 지형을 꾸몄는데, 하천과 강 바다는 수은을 부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알려진 부지 면적은 50㎢, 1천5백만 평이나 되고, 진시황이 살아있을 때부터 죽은 후까지 36년이나 걸린 대공사였다. 

이세 황제는 “선제의 후궁들 가운데 자식이 없는 자를 궁궐 밖으로 내쫓으려 하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며 진시황의 능에 같이 묻도록 명령하니 시황제 시절 궁녀로 일하던 매우 많은 수의 여자들이 황제의 유골과 함께 순장되었다.

아방궁… 불만이 고조되다 

무덤을 봉하고 흙을 덮기 전에 장인들을 시켜 자동으로 발사되는 화살과 창들을 만들어 곳곳에 장치하게 했는데, 나중에 도굴하려고 침입하는 자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여산릉이 거의 완성되었을 때 한 사람이 건의하기를 “기술자들이 기계를 만들고 그 아래서 일하던 노비들도 모두 그 구조를 알고 있으니, 그 수가 많아서 필시 누설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장중한 장례가 끝나고 무덤을 봉할 때 기술자들과 그들의 노비들은 아직 안에 있었다. 밖에서 묘도(墓道)의 중문을 밖에서 잠그고 또 바깥문을 내려서 폐쇄하니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묘의 바깥문까지 흙으로 덮고 풀과 나무를 심어서 흔적을 찾기 어렵게 하니 묘는 마치 산과 같이 되었다. 

정확한 위치는 2천년 넘게 전설로만 내려오다가 40년 전(1974년) 지역 농민들이 땅을 파다가 우연히 병사들의 모형(병마용)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발굴이 시작되었다. 6천구가 넘는 실물 크기의 병사와 병마 도용을 찾아내고 여러 개의 묘실이 드러났지만, 진시황의 무덤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여산릉 전체를 발굴하기에는 몇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여산릉이 완성된 뒤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아방궁 공사를 계속했다. 

정당성이 취약한 권력은 겁이 많은 법. 5만명의 정병을 징발하여 함양에 주둔시키고 많은 군견 군마와 함께 훈련을 계속하니 공사 인부들과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전국으로부터 식량과 자재를 계속 징발하고 세금을 더 뜯을 수밖에 없었다. 자재를 운반해오는 인부들은 스스로 식량을 휴대하게 하고, 함양 중심 3백리 이내의 식량을 함부로 먹지 못하게 했다. 자연히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마침내 옛 초나라 땅에서 경비대장 진승(陳勝)이 반란을 일으켰다. 진승은 스스로 초나라 왕을 자칭하며 동조세력을 끌어 모았는데, 기다렸다는 듯 호응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산동지역의 젊은이들은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 고향의 군수 군위 현령 현승들을 죽이고 진승의 반란군에 자진하여 가담했다. 그들은 스스로 제후나 왕을 자처하면서 연합군을 꾸려 황제가 있는 함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동쪽으로 정황을 살피러 나갔던 황제의 알자(謁者)가 황급히 돌아와 반란의 형세를 보고하며 형세가 위급함을 알리자 황제는 분노하여 알자를 구금해버렸다. 다른 알자를 다시 보냈더니 그가 돌아와서는 “그들은 한낱 도적떼이온데, 각 군의 수위들이 추격 체포하여 모두 잡아들이고 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하고 보고했다. 황제는 기뻐했다. 그 때부터는 황제에게 반란군의 형세를 제대로 보고하는 사람이 없었고, 황제는 다가오는 위험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판단과 명령은 거의 환관 조고의 조언을 따랐을 것이다.   

위태로운 진실에 귀를 막다  

처음에 조고는 2세 황제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자 더욱 철저히 황제를 무력화시켰다. 2세 황제를 제외한 시황제의 자식들도 3족을 멸하여 씨를 말려버린 뒤 황실과 황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충신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가 대신들과 더불어 국사를 논의하는 이상 자기 뜻대로만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황제에게 말했다. 

“천자가 존귀한 까닭은 여러 신하들이 다만 폐하의 옥음을 들을 수 있을 뿐 그 얼굴을 감히 뵈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호도 ‘짐(朕)’이라 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아직 젊으셔서 반드시 모든 일에 능통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온데, 조정에 앉아서 신하들을 직접 대면하여 견책하거나 등용하다보면 간혹 잘못된 분부가 있을 때 단점을 그대로 신하들에게 보이게 되는 것이니 천하에 신명(神明)을 보이지 못하게 됩니다. 차라리 궁궐 깊숙한 곳에 팔짱끼고 앉아 정사를 기다리고 계시다가 법에 익숙한 신하와 시중과 더불어 안건을 의논하여 결정하시면 대신들이 감히 의심스러운 안건을 아뢰지 못할 것이며, 천하의 백성은 폐하를 훌륭한 군주라고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비주의’를 권한 것이다. 2세 황제는 계책을 그럴듯하게 여겨 허락했다. 대신들은 황제를 직접 알현할 수 없게 되고, 왕은 오직 조고 일당을 통해 정세를 판단하며 명령하게 되었다. 그것은 선제 진시황이 10년에 걸쳐 걸었던 몰락의 길과 똑같은 길이었다. 

진승의 반란군은 이미 함양 가까이까지 진격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어두운 것은 2세 황제만이 아니었다. 환관 조고 또한 권력에 눈이 어두워 시시각각 들려오는 관군의 패퇴소식에 귀를 막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절대권력을 구축하기 위하여 승상 이사를 비롯한 조정의 주요 대신들을 제거할 방도만 궁리하고 있었다. 

“선제의 후궁들을 궁궐 밖으로 내쫓는 것은 옳지 않다”
2세 황제는 시황제를 모시던 궁녀들을 모두 황제의 유골과 함께 순장하도록 명령했다. 그 수가 매우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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