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혁 부국장
차종혁 부국장

국내 시중은행이 역대급 이자 이익을 손쉽게 올렸다는 비판 여론에 퇴직금과 성과급까지 줄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 대부분이 특별퇴직금을 전년에 비해 5개월치에서 많게는 10개월치를 줄였다. 성과급 역시 직전에 비해 50%포인트에서 많게는 200%포인트까지 줄였다. 

은행권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자 장사로 수 십조 원의 막대한 수익을 내면서 혼자 배불리고 있다는 정부와 여론의 부정적인 시각에 움츠러들고 있는 모습이다. 

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국내 시중은행은 ‘서민 종노릇’에 제 배만 불린다는 은행권에 대한 정부와 여론의 비판적인 시각에 ‘2조원+α’ 규모의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일정 기준 이상의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차주를 대상으로 이자 환급(캐시백)을 시행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시 지원방안을 놓고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가 엇갈렸다. 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업종에 비해 수익을 너무 많이 냈다는 이유로 이를 여론몰이를 통해 환수하는 게 맞느냐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까지는 대한민국헌법에서 정의한 경제 원칙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헌법에서도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소득 분배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에서 수긍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은행권도 정부의 지침과 여론의 요구에 발맞춰 상생금융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내 퇴직금 및 성과급 축소는 도를 넘었다. 

제119조 2항에 앞서 기본원칙이 되는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은행권 내 사내 퇴직금과 성과급 축소까지 초래한 정부와 여론몰이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정의한 더 근본적인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구성원을 이루는 개개인은 물론 법인격화된 기업도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아울러 특정의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통제가 이뤄지고 독단적으로 처리되는 독재적인 결정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현실은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이윤을 낸 기업이 전체적인, 독재적인 결정과 여론몰이에 휘둘리고 있다. 

이제 은행권은 물론이고 어느 기업이든, 개인이든 법 테두리 내에서 많은 이윤을 냈다고 하더라도 경제 정의를 거슬러 홀로 배 불리는 악덕 기업, 악질 축재자로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이런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기업은 주어진 재원을 근간으로 수익을 창출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를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경제순환을 활성화하고, 건전한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

우리 사회와 공생하고 함께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중요한 책무지만 그에 앞서 이윤을 내는 게 기업의 최우선 과제다. 이 우선순위가 바뀌면 헌법에서 명시한 기본원칙은 무너지고, 자유시장경제 하의 원만한 경제순환을 위한 기업의 역할도 무색해진다. 

기업이 이윤을 내는 게 칭찬받는 일이 아니라 이윤을 덜 내고 사회환원이 우선인 사회가 되면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경제순환은 더 무뎌지고, 건전한 일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긴데, 어느 순간부터 기업의 주된 역할이 사회 환원과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는 사회가 됐다.

이쯤되면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괴리가 없어 보인다.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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