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7The end

 

The end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비가 내렸다. 은행잎이 공중으로 휘돌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바닥에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빗방울 소리는 서서히 굵어져 빠른 비트의 음악처럼 들렸다. 나는 루시퍼를 꺼내어 연주했다. 여자가 두고 간 팜플렛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여자의 기획 아이디어는 언제나 빛을 냈다. 구보아저씨 이야기가 핫하게 퍼진 지금 추모공연 기획을 내놓다니. 어제부터 공연을 시작했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추모공연을 하게 되면 구보아저씨가 먼 곳으로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 같았고 나는 그게 싫었다. 추모공연을 기획한 여자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아저씨의 존재를 너무 빨리 잊게 될까봐 두려웠다.

팜플렛 안에는 구보아저씨가 루시퍼 기타를 안고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쪽에는 아저씨의 옛 동료들과 우리 밴드의 멤버들 사진도 함께 실려 있었다. 구보아저씨의 히트곡인 가장 빛나는 순간에를 공연 타이틀로 지었다고 했다.

이번 기획은 구보아저씨도 좋아하실 거예요. 그치만 우빈 씨 없이 우리끼리 공연하는 건 원하지 않겠죠. 우리는 사라져도 노래는 영원히 살아 있잖아요. 노래 안에서 구보아저씨도 아저씨의 옛 동료들도 우리 멤버들도, 모두 다 영원히 숨 쉬고 존재해요. 잘 생각해봐요.”

나는 팜플렛을 내려놓고 기타 케이스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케이스의 지퍼를 열고 루시퍼를 꺼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지 거센 빗소리와 함께 바람 소리가 들렸다. 구보아저씨는 지금쯤 레테의 강을 모두 건넜을까. 아저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귀를 파고들었다. 젊은 놈이 그렇게 약해빠져서 어따 써 먹을래? 하고 혼내는 것 같았다.

오디션에서 우리 팀이 마지막 결승까지 갈 거라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마지막 오디션결승을 삼 일 앞두고 구보아저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좋아했을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평생 다른 길로 돌아와야만 했던 아저씨의 삶이 마치 통째로 도둑맞은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다시 음악과 재회한 삶을 감히 불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불꽃을 피우기도 전 사그라진 인생. 마치 아저씨의 인생에 루시퍼 기타의 저주가 내린 것만 같아 꺼림칙했다. 우리 밴드가 오디션 최종 결선까지 갔을 때 의식이 돌아온 아저씨는 상태도 많이 좋아져서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디션 결승을 전하자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길이라 생각되면 무조건 최선을 다하라고, 자신은 그러지 못해서 후회하고 있다고, 마치 수명이 다한 기타 줄처럼 아저씨는 말했다.

27클럽 회원들 역시 우리 밴드가 결승에 오르자 올림픽 경기의 결승전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한동안 온&오프가 들썩거렸다. 비록 우승을 거두진 못했지만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는 파급효과가 있었다. 오디션을 통해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든 성과는 구보아저씨의 활동 시절 노래들이 음원을 비롯해 라디오, 유튜브 등등 인기가 급상승한 일이었다. 어쩌면 오디션 기간 동안 구보아저씨의 안타까운 죽음이 알려져 파급효과가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일가친척이라곤 전혀 없는 구보아저씨였지만 장례식은 다행히 쓸쓸하지 않았다. 아저씨의 옛 동료가수 몇 분과 27클럽 회원들이 화장터와 납골당까지 함께 했다.

장례를 마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나는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용주 역시 장례를 치르는 동안 몹시 힘들어했다. 나는 용주가 침입할 때 아저씨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 쇼크사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나는 한동안 용주를 미워하고 원망하느라 에너지가 모두 소진될 지경이었다. 사실 내가 원망하고 미워하는 진짜 대상은 딱히 용주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급물살은 용주를 향해 치달았다. 나는 구보아저씨가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린 원인을 모두 용주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자와 말리 역시 금방 일상을 되찾았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각자의 파트를 충실하게 연주하듯 각자의 영역에서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공연을 할 때마다 내가 빠진 합주는 완성되지 않았고, 게다가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며 용주와 말리는 틈만 나면 쫓아와 나를 설득했다.

너만 슬프고 힘들다고 착각하지 마. 나도 내가 아저씨를 돌아가시게 만든 것 같아서 미칠 것 같다고! 용서를 빌 기회마저 놓쳐버린 난 마음이 편할 줄 알아? 이젠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알려야 해. 그게 아저씨 노래를 널리 알리는 길이고 또 그것만이 용서를 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미친 새끼! 그런다고 아저씨가 살아 돌아오시기라도 한 대?”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지. 그렇지만 아저씨의 노래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영원히 살아 있을 테니까.”

전설 따위 다 소용없어. 사람이 가고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냔 말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건 다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 집중해야 해. 다 같이 이 순간을 통과하잔 말야! 청승 그만 떨고!”

니 눈엔 내가 청승 떠는 걸로 보인단 말이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살면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던 사람이 사라졌는데, 청승 떠는 건 당연한 거 아냐? 난 나대로 살 테니까 니들은 니들 알아서 해!”

형은 맨날 그대로네, 변한 게 없어. 인생을 어떻게 기분 내키는 대로만 살지? 구보아저씨가 말했잖아 우리는 하나라고. 누구 하나라도 이탈하면 그 밴드는 이미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거라고.”

! 둘 다 가라고. 가서 각자 멋진 인생 살라고, 나 끌어들이지 말고 어? 밴드 이름이 괜히 비따비? 애도의 기간도 무시하고, 어후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내뱉었다. 멤버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구보아저씨를 너무 빨리 떠나보내는 녀석들이 못마땅했다. 구보아저씨가 사라진 공간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밤마다 꿈속에서 정대는 슬픈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멤버들이 어떤 말을 지껄여도 나는 못 들은 척했다. 레트로 가든의 물건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구보아저씨에게 말을 걸 듯 사물과 얘길 나눴고 아저씨가 리폼한 기타를 치며 매일 술에 취해 지냈다. 그사이 얼굴이 홀쭉해지고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나는 기타 안으로 숨고 싶었다. 오랜 세월 음악을 등진 채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구보아저씨의 지난한 삶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 역시 무의식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음악을 품은 채 삶을 견뎌왔다. 그저 가사와 곡을 만들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들이 좋아서, 라고 말하기엔 설명하기 힘든 부분들이 분명 존재했다. 어쨌든 나는 내게 주어진 많은 두려움들을 피해 기타 안으로 나를 밀어 넣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고 싶었다.

한 음 한 음 내는 소리 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두려움을 숨기고 불안과 초조를 숨기고 비겁한 마음을 숨기고 그 안에서 가만히 숨죽이며 눈치를 보았다. 떨리는 기타 현이 나를 부추겼지만 나는 모른 척 소리와 대응했다. 잠재된 음이 폭발하려는 어떤 순간을 기다렸으나 나는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다. 건조한 음이 마른 잎처럼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갈라지는 대지 사이로 떨어진 음이 싹이 되어 조금씩 올라왔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시작된 변화의 예고처럼.

여자가 찾아왔다. 놀랍게도 루시퍼를 들고 있었다. 루시퍼는 구보아저씨의 과거를 추적하며 다큐 제작을 기획하느라 모 방송사에서 관리한다고 들었다. 구보아저씨는 입원해 있을 무렵 여자에게 자신의 동료를 찾으면 꼭 기타를 돌려주라고 했단다. 루시퍼는 결국 용주에게 돌아갈 것이다. 루시퍼가 용주의 삼촌 것이었다니 충격이었다. 이제는 루시퍼가 누구의 소유가 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구보아저씨는 용주를 만난 뒤 잃어버린 동료를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그래서인지 용주가 저지른 범죄는 범죄가 아닌 기타를 찾기 위한 마땅한 행위로 인정됐다.

구보아저씨는 실종된 동료를 찾기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을 허락했다. 하지만 1회분만 찍고 그렇게 떠나게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저씨의 죽음과 장례의 순간에도 다큐멘터리 촬영은 계속되었다. 구보아저씨의 동료이자 루시퍼의 진짜 주인인 용주의 삼촌을 백방으로 추적했지만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아저씨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나랑 그 자식이 아저씨를 그렇게 만든 거예요. 그 자식이 친구라 해도 또 구보아저씨가 찾던 친구 조카라 해도 용서가 안 돼요.”

여자가 옆에 앉아 내 몸을 감싸듯 한쪽 팔로 반대편 어깨를 쓰다듬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은 둑이 무너진 듯 거침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여자의 품에서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우빈 씨 인터스텔라 영화 봤어요?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와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만큼 무언가를 뒤에 버려야 한대요. 버린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전에 아저씨가 부탁해서 비밀로 했는데, 구보아저씨가 갑작스럽게 가신 건 안타깝지만, 사실은 예정된 일이었어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정해진 시간보다 오래 견디셨어요. 아마도 평생 억눌렀던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나는 또 한 번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무리 없애도 자꾸만 튀어나오는 좀비의 세계처럼 인생은 끝없이 예상을 깨트리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내 표정을 본 여자는 다 안다는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주먹으로 닦으며 으아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구보아저씨가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크고 화려한 무대에 서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아저씨가 우빈 씨한테 말하면 무대에 서지 못할 거라고.”

나는 여자에게 그만하라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니, 구보아저씨가 말을 못하게 했더라도 여자는 내게 말을 해줬어야 했다. 새로운 배신감이 나를 덮쳤다. 여자가 나를 달래듯 팔을 꽉 잡더니, 기타 케이스에서 루시퍼를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루시퍼를 만났지만 예전만큼 감흥이 일지 않았다.

이 기타는 우빈 씨가 맡아야 할 거 같아서 가지고 왔어요.”

이걸 왜 나한테……

구보아저씨가 원한 거예요.”

아저씨가요? 그럴 리가, 용주가 있는데……

루시퍼는 우리 모두의 기타예요. 하지만 지금은 우빈 씨에게 가장 필요할 때니까.”

여자는 쉼표에서의 촬영 시간이 다 돼서 빨리 가 봐야 한다며 일어섰다. 그러곤 팜플렛 한 장을 탁자 위에 놓은 뒤 밖으로 나갔다.

여자가 나간 뒤 나는 케이스에서 기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마음을 비웠다 생각했는데 막상 루시퍼를 마주하니 손이 떨렸다. 루시퍼 헤드의 튜닝 머신을 하나하나 만졌다. 루시퍼는 여전히 화려한 왕관을 쓴 여신처럼 우아했고, 선악의 기원을 담고 있는 영물처럼 신묘한 기운을 풍겼다. 줄을 조였다 풀며 조율을 마친 뒤 현을 하나하나 튕겨 보았다. 여섯 개 음의 공명이 지하 깊은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깊고 영롱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비바람 소리는 점점 거세게 공간을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졌다. 여섯 개의 기타 줄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점점 상승하는 음 안에서 태풍이 휘몰아쳤고 어느 순간 하강하는 음을 헤치고 페가수스가 날아올랐다. 나는 구보아저씨가 좋아했던 도어스의 ‘The end’를 치고 있었다. 악보를 모르는데도 마치 루시퍼의 현이 나를 이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악기는 중요하지 않다. 악기와 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너희들이 쫓아다닌다는 그 루시퍼라는 기타 말이다, 이 기타가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런 건 다 소용없어. 전에도 말했지만 모든 건 받아들이기 나름인 거야. 내 꼴을 봐라. 그걸 깨닫는데 너무 오래 걸린 거지.’

음악인들이 그토록 열광하듯 욕망하던 그 기타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구보아저씨 말대로 그런 악기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럼에도 음악인들이 가슴 속에 신기루와도 같은 꿈을 품을 수밖에 없는 속성은 영원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가 되었든 삶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될 테니까. 기타의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믿고 느끼면 되는 거다.

 

보름 만에 레트로 가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일찍 용주는 통화 도중 말했다.

오늘 공연에 특별 게스트들이 오기로 했는데, 누군지 맞춰봐라.”

혹시 소라?”

짜샤! 재림이는 안 물어보냐? 공연 끝나고 다 같이 정대한테 가기로 했다. 네가 공연 전에 오면 공연 끝내고 정대한테 같이 가면 더 좋고!”

문득 아침에 떠오른 햇살처럼 늘 해맑던 정대의 표정이 떠올랐다. 자신만의 음악성을 찾겠다고 늘 고민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정대는 저 먼 곳에서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찾았을까. 자신만의 음악성을 찾았을까.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구보아저씨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던 검은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저씨가 했던 대로 사료 봉투에서 사료를 그릇에 부어 담아 공터 한쪽에 있는 구멍 안에 놓아두었다. 공터에 수많은 바람개비의 날개가 떨어져 나갈 듯 세차게 돌아갔다. 저런 건 왜 잔뜩 만들어 놓았을까. 바람에 저항하는 바람개비들의 날개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람개비들은 거센 바람과 맞서는 중으로 보였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바람은 바람개비의 몸을 얻어 존재를 드러냈다. 우리도 모두 각자가 만든 세계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탐색하기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세계엔 음악이 있고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고 불러야 할 수많은 노래가 남았으니까.

문득 구보아저씨가 거리를 떠돌며 살아온 오랜 세월이 체념의 반복이 아닌 저항의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회에, 음악 활동에 여러 제약을 가해 온 부조리한 국가에, 친구를 잃게 된 무기력한 스스로에게, 아저씨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을 해왔을지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이 두려워 도망만 친 걸까. 바람과 바람개비가 서로 저항하는 힘의 중심, 제로에 가까운 그곳에 숨어 나는 늘 비겁함을 택했다. 바람에 맞서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당신이 내게 그토록 바라던 것도 힘의 중심 안에 숨어버리는 비겁함보다 바람에 맞서는 저항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자 공터에 세워진 수십 개의 바람개비가 타다다닥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갈 듯 저항했다. 가로수 나뭇잎이 한 무더기씩 쏟아져 내려 아스팔트 위로 어지럽게 날렸고 어디선가 펄럭이는 비닐 포장 소리가 숨 가쁘게 들렸다. 나는 마주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쉼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보아저씨가 만든 노래를 루시퍼로 연주해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기타의 전설, 우리의 히어로인 구보아저씨 밴드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싶었다.

문득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저만치에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핸드폰을 켜고 유에스비는 완전히 파기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조만간 집에서 뵙자고 당신에게 문자를 남겼다. 내 아버지인 당신과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어 새롭게 감기 위해선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나는 걸음을 멈춘 뒤 뒤돌아서서 사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내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냥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신경과민이네, 사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거센 바람이 앞서가는 사내의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려놓은 뒤 내게 도착했다. 얼굴을 똑바로 한 채 바람을 맞았다. 쌀쌀한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할퀴었다. 나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새로운 걸음을 막 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루시퍼가 담긴 케이스 끈을 어깨 위로 추켜올리고 쉼표를 향해 걸었다. 가로수 아래 쌓여 있던 은행잎 한 무더기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올라 원을 그리며 공중을 휘돌다 바닥으로 쏟아졌다. 쉼표가 가까워지자 드럼과 기타 연주와 함께 구보아저씨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기타케이스의 끈을 어깨에서 내려 손으로 붙잡은 뒤 쉼표의 문을 열었다. 문득 비틀즈가 마지막 루프탑 공연을 끝내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로서 우리는 오디션을 멋지게 통과하였다!

 

2023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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