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6장 오디션

 

레트로 가든에 도착하자마자 구보아저씨는 재빨리 차에서 뛰어내렸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사람 맞아? 나는 크게 물었다. 용주가 없다는 걸 믿지 않는 눈치였다. 말리에게 전화를 걸어 용주가 D시에서 언제 오냐고 물었다. 용주랑 같이 있는데 뭔소리냐고 했다. 예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말리에게 용주와 당장 레트로 가든으로 오라고 했다. 드디어 용주가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 온 거다. 용주가 안겨준 엄청난 충격의 여파가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구보아저씨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왔다갔다 안절부절 못했다. 어느새 염색한 머리의 뿌리 부분에 흰 머리가 많이 자라 있었다. 나 역시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용주를 기다렸다.

용주와 말리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구보아저씨는 용주를 보자마자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용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겠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는 순간인데 멀쩡할 리가 있나. 두 사람은 각자 얼어붙은 듯 마주 보며 서 있었다. 나는 흥미롭게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짠 것처럼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말리가 내 어깨를 툭 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죄송합니다.”

, 노진, 진기진기는……

루시퍼 기타를 갖고 계신다는 소문 때문에 제가 삼촌이라고 거짓말을 좀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구보아저씨는 고개를 들고 용주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저씨는 또 왜 저래? 나는 두 사람만 갖고 있는 어떤 비밀을 지켜보는 것 같아 긴장이 됐다.

맞구나 맞아진기랑 닮았어. 이런 우연이 있나너를 직접 보게 되다니……

구보아저씨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나는 어어 이게 아닌데, 저 자식이 아저씨 집에 침입한 거 맞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한 채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진기 소식은 한 번도 못 들은 거냐.”

예 삼촌은 제가 어릴 때 나가셨다는데 지금까지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구보아저씨의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수북하게 자란 턱수염 사이로 흘러들었다. 아저씨는 모든 게 다 본인 탓이라며 용주의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용주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디션

 

대기실의 열기는 후끈했다. 우리 차례의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오자 에너지가 모두 소모된 배터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대기 의자에 늘어지듯 앉았다. 여자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긴장을 풀라며 격려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말리 역시 긴장이 되는지 한쪽 다리를 연신 떨며 자주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메이크업 지워진다고 여자가 지적했다. 용주는 벽에 기대어 지극히 평온한 태도로 기타를 만지고 있었다. 짜식은 떨리지도 않나. 문득 고교 시절 동아리실 창문 옆에 기대어 기타를 치던 용주의 모습이 겹쳤다. 그 옆으로 나와 소라와 재림과 정대가 웃으며 용주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창문 유리를 통과해 들어온 빛이 용주의 옆모습에 쏟아져 눈이 부시던 모습. 기타와 용주와 빛이 하나가 되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스펙트럼으로 번지던 그 순간.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가슴이 뭉클했다. 다시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지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기억의 데자뷔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 이순간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한 착각 때문에 힘이 솟았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이 오로지 음악과 무대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당시 록 페스티벌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 꿈을 지금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본선에 진출하기까지 나는 오디션 참가에 대해 투덜댔었다. “꼭 오디션 같은 델 나가야 할까? 굳이 방송을 안 타도 활동할 수 있는 루트가 많은데. 우승자 들러리 역할을 우리가 왜 해야 하지?”

어릴 때의 추진력은 다 어디 갔냐? 음악은 기본적으로 소통이라고 애들 설득해서 동아리 가입하게 할 때를 생각해봐. 음악으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객은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얘기를 떠올리고,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고, 그러는 거라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냐? 암튼 그거랑 오디션이랑은 다른 얘기지.”

다를 게 뭐 있어? 음악은 기본적으로 함께 어울리는 거잖아. 오디션은 함께 어울리기 위한 관문인 거고.”

나와 말리는 오디션에 나가는 것을 반대했고, 용주와 여자는 오디션 참가를 통해 좀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맞섰다. 여자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계기로서의 오디션을, 용주는 자신의 인생에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오디션을 원했다. 말리는 끝까지 대회에 나가는 걸 못마땅해했다. 자신의 장애와 나이 든 구보아저씨 때문에 본선 진출도 전에 떨어질 거라고 했다. 말리의 얘기를 듣자 나는 갑자기 오디션에 나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오디션 참가였고 예선을 모두 통과한 건 의외의 결과였다. 본선까지 오는 동안 구보아저씨는 자주 쓰러졌다. 연습을 무리한 탓에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중간에 빠져야 한다는 의견으로 우리는 자주 충돌했지만, 끝까지 가보겠다는 아저씨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티브이 출연 횟수가 늘면서 우리 밴드 이름은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고, 유튜브 조회수는 엄청난 횟수로 늘었고, 음원이 출시되면서 우리는 화려하게 등장한 유명밴드가 되어 있었다. 전혀 다른 세계에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오디션 진출 효과는 파격이었다. 결승 직전 무대를 마친 뒤 구보아저씨는 결국 쓰러져 입원을 하고 말았다. 구보아저씨의 정체가 밝혀지자,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인터넷에서 아저씨 이름이 내려갈 줄 몰랐다. 아저씨는 이제 소원을 푼 것 같아 미련은 없다고 했다.

우리 밴드의 차례가 되어 무대로 나갔다. 몇 번의 예선을 치루면서 심사자들과 낯을 익혔는데도 회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점점 거대한 대상처럼 여겨졌다. 우리의 운명이 그들에게 달려 있다 생각하면 마치 저승사자들 앞에 선 것처럼 자꾸 움츠러들었다. 기대와 호기심에 찬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심사자들이 돌아가며 질문을 했다. 심사자들은 모두 구보아저씨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며 주로 아저씨와 관련된 질문을 했다. 말리는 음악과 관련된 질문보다 장애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왜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다른 면을 참지 못할까. 아이돌 출신이었던 여자 심사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질문을 했다.

예선을 치르는 동안 가면을 착용해서 이유를 물은 적 있었죠? 편견이 싫어서, 단지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또 모두 가면을 벗었네요? 그런데 가면을 쓸 때보다 벗은 지금이 더 쇼킹하고 새로워 보이는 건 왜지? 이것 역시 의도한 건가요?”

아닙니다. 다만 편견이 싫어서 가면을 썼던 것처럼 오늘 역시 편견이 싫어서 가면을 벗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어렵네. 편견이 싫어서 가면을 썼다가 편견이 싫어서 가면을 다시 벗었다, 무슨 뜻이죠?”

그동안 가면을 쓴 상태로 예선을 치루는 동안 많은 추측들을 하신 것 같은데, 이번엔 모든 걸 오픈해서 진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예선 때의 답으로 되돌아가는데, 아무 편견도 없는 상태에서 노래와 음악만으로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그렇군요. 오늘은 한우빈 씨 자작곡을 들고 왔네요? 보이스가 아주 독특한데, 싱어 송 롸이터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군요. 한우빈 씨는 고교시절에 음악을 하다 그만둔 뒤, 다시 시작한 건 1년도 채 안 됐다구요? 그동안 넘치는 끼를 어떻게 견뎠나 몰라. 암튼, 한우빈 씨께 음악이란 뭘까요?”

전에 구보아저씨도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넌 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냐? 음악은 왜 하냐? 나는 갑자기 말문이 탁 막혔다. 기타 치는 게 좋아서?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아서? 음악을 통해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어서? 어떤 말을 해도 다 맞았고 어떤 말을 해도 다 맞지 않았다. 나는 버벅대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눈치 빠른 여자가 답을 대신했다. 내게 음악은 뭘까. 그토록 거부하던 음악을 왜 다시 시작한 걸까. 그 질문은 갑자기 내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은연중 그 질문과 함께 답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우리는 각자의 포지션으로 돌아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만을 느끼고 음악을 통해 나만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아까의 질문이 전주곡을 연주하는 동안 사이사이 끼어들었다. 네 팀의 진출자들과 겨루려면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해도 자신할 수 없는 게 오디션의 특징이다. 용주가 눈치를 챈 건지 내 옆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눈빛 교환을 유도했다.

집중해!

도입부에서 불안정하면 이미 신뢰감을 잃게 된다. 나는 걱정말라는 뜻으로 눈을 깜빡 해주었다. 다행히 시작은 순조로웠다.

간주에서 용주는 나의 불안함을 커버하기 위함인지 화려하고도 파워 넘치는 연주를 했다. 손가락의 현란한 움직임과 함께 기타의 몸체를 이용해 다양한 소리를 내며 재주를 뽐냈다. 고교시절 동아리 회원들의 마음을 휘어잡던 기교였다. 나는 연습 때와 달리 훨씬 풍부한 음을 내는 용주의 연주에 당황했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용주의 연주에 콜라보를 넣었다. 용주의 연주는 마치 깊은 숲속에 숨겨진 높고 거대한 폭포수의 물줄기처럼 시원스럽고도 다채롭게 쏟아졌다. 용주는 점점 연주에 몰입된 상태가 되어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폭포수 주변을 나만의 빛깔로 채워 넣었다. 우리 멤버는 금방 완전한 일체가 되었다.

나는 노랫말처럼 아직도 기나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부모님 몰래 동아리 활동과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에 미쳤던 고교 시절을 거쳤다. 마치 차창 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지나치듯, 루시퍼 기타를 찾아 헤매던 시간들과 푸른 달빛이 마당 가득 쏟아지던 그 공간을 가로질러 신비의 루시퍼와 마주하던 순간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이층집 거실 한쪽 커다란 그림자와 맞닥뜨린 순간부터 풍경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점철된 시간들을 거치며 기나긴 터널을 벗어났다. 커다란 함성과 함께 오디션 장 곳곳에서 붉고 푸른 조명이 터지며 쏟아졌다. 노래 한 곡이 끝나는 동안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후련하고도 시원하고 허탈했다.

노래를 끝내고 마무리 연주를 하는 동안 겨우 현실감을 되찾았다. 잊고 있던 긴장감이 새롭게 달려들었다. 문득 고개를 들고 객석을 한 바퀴 둘러보며 마지막 한 점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침표를 정확하게 찍기 위해 호흡을 하나로 모으는 순간, 정면 객석 위 커다란 모니터에 당신의 모습이 잡혔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스프링처럼 순식간에 기타의 현을 아래로 내리치며 연주를 끝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본 순간 이미 모니터 안에는 무대 위에서 헐떡이고 있는 내 모습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불과 0.5초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내 눈에 가득 들어온 당신, 내 아버지가 진짜 맞는지 그저 얼떨떨했다.

곳곳에서 촬영 중인 카메라들의 동선을 따라 객석을 훑어보았다. 푸른색 응원봉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객석의 관객들은 조그만 모형들처럼 보였다. 나는 혹시나 싶어 중앙과 양쪽에 있는 모니터에 시선을 두었다. 더 이상 당신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당신이 이곳에 왔을 리 없었다. 그러나 착각이라고 하기엔 당신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흔들리던 눈동자까지 카메라에 너무도 선명하게 잡혔다. 그 순간 노래를 부르기 전 답을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불쑥 떠올랐다. 환호성이 끝난 뒤 흥분한 심사위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여자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질문에 답을 하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대신 아까 하셨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습니다.”

? 아까요? 어떤 질문을 했었죠?”

내게 음악이란 무엇인지…… 우리 노래 제목인 ‘truth’ 바로 진실입니다. 사랑과 미움, 화해, 용서, 믿음, 원망, 분노, 슬픔이나 후회, 또는 희망 같은 삶의 근원이 되는 모든 진실을 담을 수 있는 공간, 어떤 한 세계의 끝에서 마주한 통로입니다.”

나는 아까 보았다고 생각한, 보았을지도 모를 당신의 표정과 눈빛을 떠올렸다. 한겨울 강물 위를 떠다니는 유빙처럼 꿋꿋하게 풀리지 않은 견고한 표정. 그 어디에도 전의를 상실한 느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던 단단하게 굳은 표정. 그런 당신에 비해 허망하게 자신을 놓아버린 구보아저씨의 삶이 대비가 되었고, 아직도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루시퍼 기타와 여전히 유효한 삶의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대답을 재촉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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