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5장 만남

 

병실에서 만난 구보아저씨는 너무도 멀쩡해서 마치 딴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말리는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라도 대하듯 호들갑을 떨었고 구보아저씨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온 표정으로 우리를 대했다.

넌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전쟁터라도 다녀온 거냐?”

어휴 살 만 한가봅니다, 농담까지 하시고. 그런데 아저씨, 범인 얼굴 보셨죠? 얼굴 보면 아시겠어요?”

여자는 당황한 듯 나를 툭 건드렸고 말리는 형 아까 화장실 급하다며? 하고 말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에게 범인이 용주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과거 우리가 겪은 사건의 발단은 용주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 내 아버지에게 잘못을 돌리려는 용주의 말투가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게다가 과거에 아픈 경험을 경험했으면서도 또다시 같은 방법으로 구보아저씨에게 가해를 저지른 행위는 분명 범죄였다. 그런데도 범죄를 덮으려고만 하는 용주의 행동이 불쾌했다. 용주와 친구들을 만나 위로받고 싶었던 기대감은 모두 나의 착각이었다.

구보아저씨가 잠든 사이 여자와 말리는 일 때문에 먼저 돌아갔고 나는 좀더 옆에 있기로 했다. 나는 잠든 아저씨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늘어난 주름들이 더 깊게 팬 것 같았다. 한 겹 한 겹의 주름 사이로 인생의 굴곡이 비밀처럼 담겨 있는 듯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아저씨와 아버지의 인생은 서로 너무 달라 보였다. 기름진 아버지 얼굴에 비해 썩은 나무껍질처럼 버석거리는 아저씨의 얼굴은 늙고 초라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저씨의 영혼이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구보아저씨가 내 아버지였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나는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기대고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마치 수분기가 바싹 마른 나무처럼 거칠고 메마른 손이었다.

넌 왜 안 갔어? 바쁠 텐데……

깜빡 잠이 든 건가. 구보아저씨가 내 머리를 만지며 물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머리에 닿은 손의 감촉이 기분을 좋게 했다. 아버지에게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이었다.

아저씨…… 난 아버지와 악연인가 봐요. 내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릴 때부터 줄곧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왜 아직도 그 생각은 안 바뀌는지.”

구보아저씨는 다시 잠든 건지 자는 척 하는 건지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같을까. 아저씨도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면 내 아버지처럼 자식을 자신의 부속품처럼 키웠을까.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뛰쳐나온 게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엄마는…… 지병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아픈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어요.”

구보아저씨가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내 얘기를 아저씨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그저 아저씨가 내 곁에 존재하는 현재의 아버지의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고교시절 동아리 얘기, 루시퍼를 찾아다닌 얘기, 루시퍼를 훔치다 사람을 죽인 얘기, 쫓기듯 외국에 유학을 갔다 왔고 회사에서 뛰쳐나와 자살을 시도하다 아저씨의 기타소리를 듣게 된 순간까지의 시간들을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얼마 전 알아낸 사실이지만 그때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기타주인이 죽지 않았고, 그 믿음 때문에 친구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내용까지 모두.

아무리 이해하고 싶어도 아버지란 사람, 이해할 수 없어요. 아니, 애초에 이해 자체도 싫은 거죠.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다 똑같을 리 없잖아요. 난 아저씨처럼 아예 자식을 안 낳을 거예요.”

이런 머저리 같은 놈!”

아얏! 갑자기 때리면 어떡해요, 놀랐잖아요. 에이 씨.”

에이 씨? 넌 맞아도 싸, 철없는 놈의 자식!”

나는 벌떡 일어나 왜 자꾸 머리는 때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구보아저씨는 내게 그만 가라고 화를 냈다. 나는 커튼을 걷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이다.

병실로 다시 돌아왔을 땐 구보아저씨는 눈을 꼭 감고 자는 척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 보호자 침대에 앉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난 이미 오래전에 죽은 목숨이었어. 나와 멤버로 활동했던 그 친구가 사라진 순간 내 인생도 끝장날 거란 걸 상상도 못했지 그 당시엔. 난 내가 최고라고 자만했으니까.”

구보아저씨가 말을 꺼내어 깜짝 놀랐지만 나 역시 아저씨처럼 모른 척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다 내 탐욕이 부른 불행이었어. 그 친구는 당시에 최고의 기타리스트에 최고의 뮤지션이었는데 말이다……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살아 있기나 한지…… 기타를 돌려주기엔 너무 때가 늦었어……

루시퍼 기타요? 그날 아저씨 집에 그 사람이 온 거 아니었어요?”

왔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하여간. 모든 비극은 내가 만든 거지 내가…… 음악계에도 천재 한 명을 잃어버린 일은 엄청난 비극이었지. 노진기, 그 친구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원……

? 방금 누구라고요? 노진기요? ? 그분 전설의 기타리스트였다는 분 맞죠?”

네가 그 친구를 어떻게 알아?”

그날 아저씨 이렇게 만든 놈, 젊은 사람이죠? 키가 크고 비쩍 말랐잖아요 그쵸?”

네가 어떻게 그걸 아냔 말야.”

나는 아까 말한 고교 때 밴드 친구가 용주이고, 아저씨 집에 침입한 놈도 그 자식이 분명한데, 용주의 삼촌 이름이 노진기라고 했다. 구보아저씨는 갑자기 스프링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고 당장 용주에게 가자고 했다. 가봐야 어차피 용주를 만날 수 없다고 해도 아저씨는 막무가내였다.

 

구보아저씨의 성화에 부랴부랴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에서 나왔다. 레트로 가든으로 가는 동안 구보아저씨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며 두서없는 질문이 이어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게서 알아낼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구보아저씨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릇된 욕망이 다른 누군가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 니들이 쫓아다녔다는 그 기타도 그릇된 욕망에 불과할 수 있어, 잘 생각해라.”

무슨 말씀이세요? 우린 단순히 호기심 탓에 그랬던 거고…… 암튼 더 좋은 음악을 하고 싶은 거야 다 똑같잖아요 안 그래요?”

임마, 악기가 좋다 해서 음악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 전에도 말했지만 어떤 악기든 연주자의 영혼을 불어넣어야 훌륭한 연주가 되는 거란 말이다.”

교차로에 도착할 무렵 신호가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교차로를 건너기엔 이미 늦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속도를 냈다. 구보아저씨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저씨는 창문 위 손잡이를 붙잡고 몸의 균형을 잡았다. 교차로 중간쯤 진입했을 때 신호는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더 낼 수밖에 없었다. 차체가 휘청거렸고 몸이 휘청거렸다. 핸들을 꽉 붙잡았다. 아저씨는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데도 몸이 앞쪽으로 심하게 쏠렸다. 속도를 서서히 줄이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몸의 균형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속도가 붙어 앞차와 부딪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다. 끼이이익! 스키드마크를 그으며 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몸이 반동을 일으켜 앞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뒤쪽으로 휘청 넘어갔다. 아저씨는 재빨리 왼쪽 팔을 뻗어 내 몸이 앞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았다. 그렇다고 균형이 잡히는 건 아니었다. 앞차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아슬아슬하게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우리는 동시에 후우-. 하고 참았던 숨을 길게 내뿜었다.

녀석아, 한 발짝 물러서는 것도 지혜야. 그냥 마구 달리면 반작용이 일어나는 거야.”

놀라셨죠? 죄송해요.”

인생도 마찬가지야.”

뭐가요? 지금 상황에 그런 말이 왜 나와요? 아 꼰대!”

이놈의 자식이!”

아 왜 때려요, 말로 하시라니까요.”

모든 건 약한 쪽으로 밀리는 거다. 부모자식 간에 싸우면 어디로 밀리겠냐 어. 친한 사이도 마찬가지고. 사람과 사람끼리 아무리 신경전을 벌여보아야 중심의 힘은 제로가 될 뿐이야, 알아듣겠냐?”

아유 당최 뭔 말인지. 운전을 심하게 한 건 인정하는데, 그래서 반작용을 말하시는 것도 알겠는데, 신경전은 뭐고 중심의 힘이니, 제로니, 그런 건 다 뭐냐구요.”

난 평생 그걸 못 깨달아서 이 지경까지 온 거란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임마.”

나는 투덜거렸지만 놀랐던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노란 은행잎이 날리다 앞 유리에 달라붙었다. 구보아저씨가 퇴원했다고 하면 여자가 화를 낼 텐데.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지……

구보아저씨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렇게 시작한 아저씨의 이야기는 그동안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내용들이었다.

국가의 간섭과 억압이 심했던 시대, 모든 예술 분야가 마찬가지였지만 그 시대에는 유난히 음악계의 억압이 심했다고 했다. 아저씨가 속한 밴드의 노래는 음반을 내기도 전 입소문을 타고 대학가나 노동현장에 먼저 퍼졌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 금지곡이 되었고, 음악 활동 역시 자유롭게 할 처지가 못 되어 대개 비주류 활동을 이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음악계에선 가장 핫한 밴드였고 기타계의 레전드, 또는 천재 뮤지션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결국 아저씨의 밴드는 초기 첫 음반 한 장을 제외하곤 모두 금지곡이 되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음반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우린 밴드가 해체될 위기에 놓였어. 생각해봐라, 기타줄이 한 개라도 끊기면 온전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밴드도 마찬가지야. 누구 한 사람 빠져나가면 기타줄이 끊어지는 것과 같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지. 마침 그 친구한테 세계에서 단 한 대 뿐이라던 희귀 기타가 있었는데, 그 기타를 이용해서 재기를 노려보자고 했지. 결국 그런 욕심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꼴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신비의 기타라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은 혈안이 돼 그 기타를 찾아다닐 정도로 대단했다고 했다. 구보아저씨 시대에 만들어진 소문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소멸되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온다는 사실이 신비롭게 여겨졌다. 더욱이 소문을 낸 장본인과 함께 있다니, 이런 우연이 일어날 수도 있단 말인가.

음악의 힘이란 굉장한 거다. 게다가 음악의 분야가 무한하면서도 어찌 보면 아주 좁다고 할 수 있지.”

각자 악기 세션 영역에선 해외 유명 뮤지션들까지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고 서로 알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몇 세기가 지나도 음악과 노래가 잊히지 않고 전해져 오는 게 신기하지 않냐고 했다.

구보아저씨가 들려준 과거 얘기의 결론은 어긋난 욕망이 불러온 불행정도로 정리했다. 말이 이리저리 물처럼 흘러 다니다 진짜가 되듯 구보아저씨 맴버들 역시 신비의 기타의 힘을 믿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나 구보아저씨의 그룹은 기타를 도둑맞고, 진짜 기타 주인이었던 아저씨 친구는 여태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이다. 구보아저씨에게 기타를 돌려준 대상은 놀랍게도 라이벌 밴드 멤버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그 역시 기타를 훔친 뒤 마치 저주가 내린 듯 이후 음악 활동을 아예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기타를 돌려줬다는 사람요.”

폐암으로 죽었다더라.”

그럼 노진기라는 친구분은 아예 소식을 못 들은 거예요? 찾아보긴 했어요?”

당연하지 자식아. 실종신고는 물론이고 백방으로 수소문 해봤지만 소용없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어딘가 살아 계시면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 텐데.”

나 때문이지. 그 친구 천재성을 빼앗은 것도 나고 그 친구 인생을 빼앗은 것도 다 내 탓이야.”

왜 그렇게 생각해요?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음악을 계속 한다면 왜 소식이 닿지 않겠냐. 네 친구 삼촌에 대해선 다른 얘기 들은 건 없냐? 얼굴은 본 적 있어?”

아아뇨, 말로만 들었죠. 친구도 삼촌 소식을 여태 못 들은 모양이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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