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3장 침입자(2)

 

아저씨, 공연 늦지 않게 오세요. 준비 다 해놓을 테니까요.”

이른 점심을 먹고, 잠깐 어디 들렀다 갈 테니 먼저 가 있으라던 구보아저씨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건을 구하러 간 건 아닌 눈치였다. 대체 어딜 간 걸까. 한 번도 개인적인 일로 공연을 펑크 낸 적은 없었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다거나 병원에 약을 타러 갈 때는 언제나 나와 동행했고, 물건을 구하러 갈 때도 한나절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어쩔 수 없이 지역 복지관의 청춘靑春공연은 혼자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공연이 목표였지만 노인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노래를 신청하고 박수를 치는 그들의 가느다란 손아귀는 끈질기게 뭔가를 휘감는 노끈 같았다. 마치 나는 삼류 밴드가 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늦게라도 올지 모를 구보아저씨를 기다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들에게서 풍기는 낡고 오래된 냄새가 나를 계속 붙들었다. 그들에게선 가느다란 숨줄을 이어가면서도 안도하는 노견의 분위기를 느꼈다.

공연을 끝내고 쉼표에 도착했을 땐 꽤 늦은 시간이었다. 쉼표에는 쉬는 시간인지 일반 관객과 회원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뒤쪽으로 돌아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온 걸 어떻게 안 건지 말리가 금방 뒤따라왔다. 눈만 가린 가면을 벗어내며 짜증을 냈다.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 아 진짜, 엉뚱한 짓 좀 그만하고 공동 작업 좀 하자.”

엉뚱한 짓이라니!”

두 시간이나 늦었다고! 자원봉사도 기부공연도 다 좋지만 메인 공연에 신경 좀 쓰자고.”

우리한테 메인 공연이 어딨고 메인 아닌 공연이 어딨어?”

뒤 따라 온 여자가 구보아저씨는? 물으며 두리번거렸다.

어딜 가신 건지 낮공연도 다 빼먹고. 야 말리, 아저씨 여기 안 오셨냐?”

오셨으면 누님이 묻겠어요?”

어후 저 자식이 진짜!”

됐어요, 어차피 앞 타임은 27클럽 회원 팀들이 채워서 괜찮아요. 근데 구보아저씨는 어떻게 된 거지?”

여자는 재빨리 핸드폰을 켜고 레트로 가든 번호를 눌렀다.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더위가 완전히 식어 밤에는 서늘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더위를 느꼈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닦았다. 전화를 안 받는지 여자는 다시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된 거지? 어딜 가신 거야? 무슨 일 있으신가? 왜 연락이 없지? 이렇게 늦은 적이 없는데, 여자는 왔다갔다하며 계속 혼잣말을 했다. 여자의 얼굴은 몹시 초조하고 진지했다. 나 역시 긴장이 됐다. 말리가 다른 팀이라도 공연을 이어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냐고 했다. 여자가 말리에게 먼저 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말리는 가면을 쓴 뒤 쉼표로 갔다. 말리는 얼마 전 펌을 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있었다. 나 역시 그동안 한 번도 머리를 자르지 않아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있었다. 어쩌다 보니 장발집단이 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 가신다고 했어요?”

같이 점심 먹고 잠깐 어디 다녀오신다고 가셨어요.”

어디 가시는지 물어봤어야죠.”

? 물어보면, 아저씨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거 봤어요?”

가게엔 들러봤어요?”

난 여기 와 계실 줄 알았죠. 가게 전화도 안 받고, 그럼 가게엔 안 계신다는 건데.”

어딜 가신 거지? 이런 적이 없는데. 일단 한 타임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 오시면 다 같이 찾아보기로 해요.”

나는 기타를 내려놓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곧바로 레트로 가든으로 뛰었다.

 

*

레트로 가든 맞은편에 서서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웬 사내가 소파 옆에서 서성거렸다. 누구지? 나는 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사내를 쳐다보았다. 어두워서 그런지 얼굴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큰 키에 스포츠형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검은색 점퍼 차림이었다. 잠깐이지만 나와 사내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길을 사이에 두고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사내가 빠르게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움직임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마치 스크린 화면에 등장한 유령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았다. 누구지? 처음 본 사람인데? 이 시간에 왜 저기서 서성이는 걸까. 문득 말리네 식당에서 27클럽 회원들을 만난 날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던 사람이 떠올랐다. 게다가 그날 골목에서 스치듯 봤던 사람의 형체와도 비슷했다.

어둠에 잠긴 레트로 가든은 아저씨만큼이나 고집스럽게 보였다. 담벼락 아래 놓인 소파 위로 어둠이 비밀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이 주변을 할퀴며 지나칠 때마다 순식간에 노출됐다 사라지는 풍경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불길했다. 트럭이 지나가자마자 재빨리 길을 건넜다. 소파 아래에 검은 고양이가 웅크린 채 눈에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쏜살같이 소파 위로 올라가 담벼락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검은 사내가 사라진 골목 입구로 뛰었다.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레트로 가든 앞으로 돌아 왔다. 어둠에 잠긴 실내는 시간이 고인 우물처럼 고요하고 적막했다.

구보아저씨가 돌아왔다면 레트로 가든에 있거나 쉼표로 왔을 것이다. 안채로 갔을 리는 없다.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이유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저씨가 갈 만한 곳을 떠올려 보았지만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니 구보아저씨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고작 나이와 신발 사이즈와 기타계의 거장이었다는 소문뿐이었다. 그마저도 여자에게 들은 정보일 뿐 정확히 확인된 사실도 아니었다. 매일 붙어 다니며 음악적으로 감정을 교류했다고 여겼다. 그런데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뿐이라니.

레트로 가든은 문이 닫혀 있었다. 출입문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문이 훅 열렸다.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벽을 더듬어 전기 스위치를 켰다. 가게 안은 평소와 다를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어딘가 모르게 평소와 다른 기류가 흘렀다.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안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채 역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고민이 됐다. 쉼표로 다시 가봐야 할까. 가게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뭐 별일 있겠어, 중얼거리며 몸을 돌리는데 한쪽에서 탁 소리가 났다.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됐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양이가 캬악, 소리를 내며 물건이 진열된 선반 틈에서 튀어나와 안채 쪽으로 달아났다. 어휴 망할 놈의 고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한쪽 벽에 세워진 네 대의 기타를 보았다. 클래식 기타 한 대와 어쿠스틱 기타 두 대와 전자기타 한 대였다. 구보아저씨는 목 부러진 기타를 처음 리폼 한 뒤 이후에도 심하게 훼손된 기타들을 몇 대 구해와 리폼에 빠졌었다.

외모를 백날 가꾸면 뭐 해요? 천성을 바꿀 수 없는 거랑 똑같은 거죠. 보세요, 재료가 벌써 싸구려 티가 확 나는구만. 이걸 누가 사 간다고.”

임마, 이 기타 재료가 고급인지 아닌지 겉만 보고 어떻게 알아? 네가 전문가라도 된단 말이냐?”

그럼 이 기타 재료가 고급이라도 된단 말예요?”

떼끼! 설사 재료가 별로라도 악기는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소리를 품고 있단 말이다. 숨어 있는 진짜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몫인 거야.”

에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세요? 소리를 찾아내는 건 웬만큼 연주 실력만 갖추면 다 가능하죠. 그걸 예술가의 몫이라고까지 하는 건 오바죠. 게다가 소리를 진짜 가짜로 구별하는 게 어딨어요. 소리에는 한계가 있는데.”

멍청한 놈! 넌 거기까지가 딱 한계다.”

? 목재가 안 좋으면 소리가 얇고 짧아서 쨍쨍 거리잖아요. 비싼 기타들이 괜히 비싸게요? 만들어질 때 이미 깊은 울림을 갖고 탄생하는 거라고요. 그게 악기들의 운명이라고요.”

시끄럽다!”

나는 괜히 약을 올리고 싶어 빈정거렸다.

그렇게 예술 좋아하는 분이 왜 평생 그러고 사셨대요?”

구보아저씨는 내 눈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넌 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냐? 음악은 왜 하냐?”

 

나는 그날 아저씨가 던진 질문을 가슴속에 담아 두었다. 정작 그 질문은 나 스스로 끊임없이 품어야 할 질문이었다.

나는 왜 기타에 집착하는가.

나는 왜 연주를 하는 걸까.

나는 왜 음악을 최종 목적지로 선택하고 싶은가.

그냥 음악이 좋아서, 또는 그냥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체가 좋아서, 라고 하기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그 뭔가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낙엽문양의 기타 옆에 세워진 다른 기타를 집어 들고 줄을 당겼다. 크고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헤드에서 바디로 헤엄쳐가는 문양이 꽤 그럴싸해 보였다. 기타는 모두 새것처럼 멋지게 둔갑해 있었다. 물고기 기타의 줄을 튕겨 보았지만 소리는 그저 평범했다. 나는 구보아저씨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투덜댔다.

보통의 삶을 예술로 우긴다 해서 다 예술이 되는 건가. 연주를 끝내주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잘난 척 하기는 쳇.”

기타를 다시 제 자리에 세워놓았다. 문득 루시퍼가 떠올랐다. 루시퍼라면 예술을 논할 자격이 충분했다.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루시퍼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격도 엄청나다고 했지만 루시퍼를 가격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다.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 번 떠오른 생각은 거침없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구보아저씨는 쉼표로 곧장 갈 것이고 이쪽으로 와서 나와 마주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재빨리 안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십 미터 정도 연결된 통로에는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풀더미 안에서 벌레들이 늦여름밤을 노래했다. 문득 오래전 루시퍼를 훔치기 위해 들어갔던 달빛 쏟아지던 마당이 떠올랐다. 마치 그날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자 가슴이 미친 듯 쿵쾅 거렸다. 조심조심 걷는데도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현관문 오른쪽 창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현관문은 당연히 잠겨 있겠지 싶어 열린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동안 이 동네에서 보낸 시간들이 짧은 순간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멈춰야 한다는 것과 창문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하면서 심한 갈등을 빚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루시퍼를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까. 루시퍼의 정체만 확인하고 조용히 돌아 나오면 되지 않을까. 루시퍼 바디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들과 사운드홀 안쪽 네임카드만 확인하고 나오는 거다.

재빨리 창문 아래로 가 창문턱을 잡고 위로 뛰어올랐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창문을 오를 수 있었다. 창문 안쪽으로 조심히 뛰어내렸다. 실내는 유난히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루시퍼를 어디에 두었을지 추측해보았다. 구보아저씨가 지나치게 아끼는 것으로 보아 거실에는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감각에 의지하여 안방이라고 짐작되는 곳까지 다가왔다. 발끝에 뭔가 걸려 앞으로 거꾸러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반사적으로 앉은 채 뒤로 물러났다. 피부에 닿은 물컹한 감촉이 이물스럽기도 했지만 내 몸의 무게가 실렸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에 더 소름이 끼쳤다. 실내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모든 형체가 어둠 속으로 꼭꼭 숨어버린 듯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벽을 더듬어 전기 스위치를 찾았다. 온몸이 덜덜덜 떨려 행동이 둔해졌다. 겨우 전기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물건들이 복잡하게 쌓인 틈으로 갈색 염색의 퍼머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구보아저씨는 뭔가 붙잡으려는 것처럼 오른쪽 팔을 위로 뻗은 채 엎어져 있었다. 나는 미끄러지듯 옆으로 가 아저씨를 똑바로 눕혔다. 코 밑에 손등을 대보았다. 희미하지만 숨결이 느껴졌다. 맥박도 뛰고 있었다. 119에 신고를 해야겠단 생각부터 떠올랐다. 휴대전화를 두고 온 것이 떠올라 집을 빠져나와 가게로 뛰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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