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3장 침입자(1)

 

*

그날도 장마철 소나기가 계속 쏟아졌었다. 쉼표에서 레트로 가든으로 가는 중이었다. 바닥에 고인 물과 쏟아지는 빗물에 발이 철벅철벅 소리를 냈다. 드문드문 세워진 차량의 몸체에 요란한 소리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시원하게 들렸다. 거센 비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비에서 마른 흙냄새가 진동했다. 가로등 불빛이 풀어진 물감처럼 흐물흐물 번졌다. 길을 막 건너려는데 누군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나는 유령이라도 만난 듯 깜짝 놀랐다.

“회장님 와 계셔.”

“어어 여긴 어, 어떻게……!”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었나?”

“그동안 조용하다 했더니, 근데 여기까지 왜……”

갑자기 불안감과 초조감이 몰려왔다. 익숙한 검은 색 세단이 보였다. 최 실장은 타올을 건넨 뒤 물기를 닦고 차에 타라고 했다. 어디서든 익숙한 패턴의 삶은 이어지기 마련이었지만 같은 공간이라도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감정의 진폭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타올을 든 채 엉거주춤 서 있자 최 실장이 차 뒷문을 열어주며 타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차에 탔다. 냉장고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실내는 서늘한 냉기로 가득했다.

“임마, 너 뭐 하는 새끼야!”

차에 타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위압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사나운 맹수 앞에 잡혀 온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곧 오만하게 꼬고 앉은 다리가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천하에 못난 짓은 다 하고 다니는구만. 이 새끼야 내가 너 이 꼴 보자고 비싼 돈 처들여 외국까지 보낸 줄 알아? 천박한 딴따라 짓이나 하라고 지금까지 기다린 줄 아냐고!”

“지금까지 가만히 계시다가 갑자기 왜 오셨어요?”

빗방울이 거세게 차 지붕을 두드렸다. 쏟아지는 빗물 탓에 가로등 불빛이 차 전면 유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묻혔다. 당신의 분노는 서서히 점화하는 불꽃처럼 점점 끓어오를 것이다. 당신의 커다란 손바닥 안으로 뜨거운 불길이 치솟고 있다는 것을 나는 눈치챘다. ‘천박한 딴따라 짓’이라는 표현이 욕설과 함께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내는 당신의 말투와 어긋나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에잇 쌍놈의 새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멍청한 놈! 나이가 몇인데 어? 철없는 새끼. 니가 저질러 놓은 일은 니가 처리해야지. 오늘 법정에 나오라고 최 실장이 여러 번 전했다는데, 참석은 안 하고 여기서 그따위 짓거리나 하고 다니냔 말이다 어?”

“그, 그건……”

머릿속에 검은 물감이라도 쏟아부은 듯 아득해졌다.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생존 이외에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듯,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은 내가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이 가장 못마땅하다고 했다. 남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맞짱 뜰 용기와 배짱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손해를 보더라도 거칠게 대들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신 앞에서 그런 행동은 용납하지 않았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었다. 당신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머리를 가격했다. 나는 순간 주눅 든 마음이 사라지고 사나운 생각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 기,기타 어떻게 하셨죠? 손 대표님께 얘기한 거 다 들었어요. 다 아버지 짓이죠? 으헉!”

“뭐 기타? 그따위 기타 나부랭이가 뭐가 중요해? 이 새끼 이거 진짜 정신 못차리는구만.”

당신의 커다란 손바닥이 또 한 번 내 뺨을 뒤덮었다. 역시 변한 건 없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처럼 당신과 나의 어긋난 관계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속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점점 위로 치솟았다. 내가 그토록 부정하려 했던 대상이 당신이라는 존재인지, 관계의 파편과도 같은 내 삶인지, 완벽하게 타인으로 존재하는 이 세계 자체인지, 그저 혼란스러웠다.

“유에스비 어딨어? 새끼야 법정에 못 오면 유에스비라도 보냈어야지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회사 말아먹으려고 아주 작정을 한 거냐.”

아하 당신은 유에스비가 필요했구나. 어제도 최 실장에게 전화가 왔지만 나는 계속 알았다고만 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굴러 떨어지듯 빠져나왔다. 당신의 분노는 극에 달할 것이다. 당장 차에 타라고 소리를 질렀다. 최 실장이 재빨리 내 쪽으로 뛰어왔다. 그러곤 양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차 안으로 내 몸을 다시 밀어 넣으려고 했다. 나는 최 실장에게 비키라고 소리를 질렀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지 못한 당신이 결국 차에서 내렸고 나는 벌벌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의 발길질이 옆구리로 무겁게 박혔다. 우리는 언제까지 연속되는 이 비극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최 실장의 우산 밑에서 온갖 욕설과 함께 당신의 발길질이 수 차례 더 이어졌지만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간극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곳까지 와 있었고, 나는 이제 당신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츰 잦아든 빗소리만 처연하게 주위를 감쌌다. 버려진 쓰레기봉투라도 된 듯 나는 빗속에 엎드려 있었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당신의 차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굴 위에서 빗방울이 부서졌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떤 한 세계를 깨트리고 그곳에서 막 빠져나와 비로소 내가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기침과 함께 웃음이 튀어나왔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구보아저씨가 뛰어와 들고 있던 우산을 씌워주었다. 구보아저씨의 몸은 거의 젖어 있었다. 아저씨는 공연 장소까지 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를 흠뻑 맞고 나자 정신이 맑아진 것 같았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없이 27클럽 회원들의 무대는 막바지를 향해 가는 분위기였다. 아저씨와 내가 무대 옆 악기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여자와 말리가 놀란 얼굴로 뛰어왔다. 여자가 재빨리 타올을 가져와 아저씨와 내게 건넨 뒤 다른 타올로 나와 아저씨의 몸을 번갈아 닦아 주었다. 나는 여자의 손을 치며 타올을 거부했다. 여자가 당황하며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말리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고 나는 길을 잃고 헤맸을 뿐이라고 무심한 듯 내뱉었다.

27클럽 회원 3인조 밴드 무대가 끝났다. 여자는 무대 중앙으로 가 마이크를 잡고 멘트를 했다. 구보아저씨가 여자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장비를 정리했다. 여자가 갑자기 마지막 무대는 우리 밴드의 연주로 오늘의 공연을 끝내겠다고 멘트를 정정했고,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우리 무대라니? 이런 꼴로 마지막 무대를? 구보아저씨가 구석으로 내 팔을 끌고 갔다. 아저씨는 기타 케이스에서 루시퍼 기타를 꺼내어 내게 건넸다. 나는 머리를 털다 루시퍼를 보고 절벽에서 떨어진 꿈을 꾸다 깬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조율은 해놨으니까 엠프 연결하고 준비해. 연주할 수 있겠냐.”

“어,어, 갑자기 왜……!”

“싫으냐?”

얼떨결에 기타를 받아 들었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느라 정신이 없었다. 루시퍼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구보아저씨가 내 등을 치며 말했다.

“멋지게 끝내는 거다, 알겠냐!”

 

 

침입자

 

구보아저씨와 나는 공연을 위해 연습을 강행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 우리는 하루하루를 바삐 보냈다. 우리는 지역의 크고 작은 단체에서 진행하는 기부공연에도 기회만 닿으면 모두 참석했다. 여자와는 버스킹 이후 잠깐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몇 번의 공연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 자연스럽게 돌아와 있었다. 그즈음 쉼표에서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여름, 그토록 푸른 밤의 향연’ 이라는 또 다른 타이틀로 공연을 진행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녜요? 젊은 애들도 이 정도 스케줄이면 너무 빡센 거예요.”

“난 너무 오랫동안 샛길로 걸었어.”

구보아저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무리한 스케줄을 막을 수 없었다. 구보아저씨가 저러다 더위에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이토록 끓어오르는 열정을 지금까지 우리는 모두 어떻게 안으로 품고만 살아왔을까. 여자는 얼굴 보기 힘들 정도로 바빴고, 말리는 식당을 유지하느라 연습을 자주 빼먹었다. 말리는 핑크공주 아빠가 죽었고, 아이는 보호시설로 들어갔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말리는 한동안 몹시 괴로워했다. 아이에게 좀더 신경 쓸 걸 이제야 후회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 시간 날 때 연습을 했고, 공연 전에 잠깐 합주를 맞춰보는 정도였지만 각자의 파트는 완벽했다. 나는 여자와 관계없이 이제는 스스로 지역 봉사단체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추진하곤 했다. 레트로 가든은 아예 온라인 판매로 돌렸다. 내가 할 일이 훨씬 늘어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연은 기부형식이 대부분이어서 수입은 미미했고, 나와 아저씨는 모든 면에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다 굶어 죽는 거 아녜요.”

“예술가는 원래 배가 고픈 거다.”

“지금이 뭐 20세깁니까? 설마 헝그리 정신, 뭐 그런 거 강조하려는 건 아니죠?”

“돈과 명예를 얻었다 해도 다 소용없어. 죽음이라는 놈은 절대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진심으로 너를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면 애당초 다른 일을 찾아봐라.”

“에에이 또 꼰대 나오신다. 아저씨는 내 나이였을 때 뭐하셨어요?”

“몰라, 기억에도 없고 기억하기도 싫다.”

“뭐가요? 내 나이요, 아니면 내 나이 때 아저씨요?”

“둘 다!”

거리공연 이후 27클럽 회원들 사이에 이상한 논쟁이 붙었다. 그날 내가 연주한 기타가 루시퍼가 맞다, 아니다, 문제로 회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고 했다. 나는 그날 연주를 어떻게 끝냈는지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졌다. 연주 한 곡을 끝내자마자 구보아저씨는 내 품에서 루시퍼를 빼앗다시피 다시 케이스에 넣었고, 루시퍼를 더 이상 만지지 못하게 했다. 마치 어린애에게 장난감을 줬다가 다시 뺏어버린 심술 맞은 어른 같았다. 몹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루시퍼를 연주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했다. 루시퍼의 존재는 너무나 순식간에 다가왔다 사라져,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허망했다.

나는 말리의 식당에서 만났던 동기 중 한 명에게 그 옛날 기타 루시퍼 절도 사건과 관련된 뉴스와 기사를 모조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었다. 나는 우리가 저지른 일을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사건처럼 각색하여 동기에게 들려주었고, 조용히 묻힌 그 사건이 진짜인지 아닌지 밝혀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동기는 그날의 기사를 찾아내거나 경찰서에 보관된 자료를 찾아보면 가장 확실할 거라고 말했다. 동기 역시 자신도 기타 루시퍼의 진짜 존재가 궁금하던 차에 잘 됐다며 신문기자로 일하는 후배에게 부탁해보겠다고 했다. 그 후 간혹 동기에게 연락이 왔지만 아직까지는 특별히 밝혀낸 건 없다고 했다.

 

*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바람이 불었고 수액을 맞은 듯 공기가 한층 순해졌다. 철 이른 나무들은 잎사귀를 노랗게 물들이며 가을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식사는 주로 말리의 식당에서 해결했다. 물론 공짜는 없었다. 장 보는 일을 도맡아 했고 틈나는 대로 허드렛일을 도왔다. 워낙 규모가 작은 식당이기도 했지만 여름 동안 손님이 많이 끊겨 일이 많지 않았다. 어차피 말리도 식당을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당분간 그럴 셈인지 음악을 하는 동안 쭉 그럴 건지 그거야 알 수 없지만.

말리는 공연 영상을 꾸준히 유튜브나 SNS에 올려 관리를 했고, 여자는 밴드의 기획을 도맡아 음반시장에 우리 밴드의 음악을 내놓았다. 구보아저씨는 지치지도 않는지 공연에 욕심을 냈고, 나는 아저씨를 돕는 척 루시퍼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구보아저씨가 갖고 있는 기타가 루시퍼이든 아니든 이제는 상관없었다. 어떤 경로로 그 기타가 아저씨 손에 간 건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아저씨는 분명 루시퍼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고집 센 사람을 아버지 이후 또 만나게 된 셈이다. 아버지가 권력형 고집불통이라면 구보아저씨는 쥐뿔도 없는 막무가내형이었다. 분명히 뭔가 감추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은 왜일까. 그 뭔가라는 게 읽으면 읽을수록 비밀스러운 단서를 여기저기 숨겨놓은 추리소설 같았다.

어찌 됐든 공연을 이어가는 일이 이제는 내 삶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루시퍼를 다시 만난 건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앗아간 루시퍼가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준 것은 아이러니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루시퍼에 숨은 아름다운 소리를 꺼내주길 원하는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겠지만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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