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이별

 

1

 

“거짓말이지?”

정식이 비틀거리면서 물었다. 배찬경은 정식이 쓰러지지 못하도록 곁에서 정식을 바짝 붙잡았다. 늦은 밤까지 순사주재소 창에서 비치던 불빛은 벌써 사라졌다. 정식과 배찬경이 막 나온 큰길가 옥화네 주막의 불빛도 두 사람을 몰아내고는 툭 꺼졌다. 배찬경이 정식에게 거짓말을 한 기억은 없었다. 다만 참말을 거짓말처럼 싱겁게 말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는지 참말을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었다.

“자네 엉너리에 놀아나는 착한 이가 되고 싶지 않다니까. 왜 거짓말이라고 말하지 못하지? 거짓말이니까 거짓말이라고 실토하지 못하는 거지?”

배찬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정식과 마찬가지로 취했다. 다리를 절면서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정식을 지탱해 주는 데 열중할 뿐이었다.

조금 전 옥화네 주막에서 배찬경은 오순이 병에 시달리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낙엽처럼 바짝 말랐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온 계모의 무릎을 베고서 눈을 감았다고 했다, 술이나 안주를 들고 오가던 옥화네 조카딸은 드문드문 귀동냥을 하며 얼굴에 진한 그늘을 드리웠다. 옥화네 역시 정식에게 외상값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잊힐 듯이 볼 듯이 늘 보던 듯이

그립기도 그리운 참말 그리운

이 나의 맘에 속에 속 모를 곳에

늘 있는 그 사람을 내가 압니다.

 

- ‘맘에 속의 사람’ 일부

 

정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오순은 이런 노래를 사그라져가는 목소리로 겨우 부르다가 고작 서른넷을 넘기지 못한 채 떠났다고 했다. 오늘 낮에 오순네 친정 친척을 우연히 만나서 들었다고 했다. 언젠가 남산 옥녀봉에 올라 정식과 함께 부르던, 정식의 시에 오순이 떠도는 창가 곡을 붙인 노래를 마지막으로 불렀다는 대목에서 정식은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죽음을 믿기 싫었지만, 믿어야 했다. 회환과 무능과 자책이 해일처럼 자신을 덮쳤음을 인정해야 했다.

8년 전 나빈도 저세상으로 갔다.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

 

소월, 보게나.

경성 학생들이 자네의 시 몇 편쯤은 줄줄 외고 다니더군. 시인으로서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나. 제발 자네 정신 속에 깃들어 시를 주재하는 영감이 자네를 떠나지 못하게 꽉 붙들게나.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진실을 잊지 말게나. 사악한 데에 해찰을 하면 영감은 가차 없이 시가 시인을 떠난다네. 나는 기성질서에 좌절하였네. 문학이 나를 등지고 저만큼 떠나가고 있네.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네. 문학을 할 수 없으니 뭘 하겠나. 그래서 가네.

소월, 마지막으로 부르는 이름이여, 안녕!

도향 절

 

말로 그칠 나빈이 아니었다. 나빈의 편지를 받자마자 정식은 부랴부랴 동아일보사 학예부로 전화를 걸었다. 나빈은 그동안 소설 ‘벙어리 삼룡(三龍)’, ‘물레방아’, ‘뽕’ 등 수작을 발표했다. 본능과 탐욕 때문에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나빈을 설득해 주시오.”

“이미…….”

학예부 직원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내일 자 신문에 부고를 내보낸다고 덧붙였다.

순이 누이나 나빈 모두 갈망해도 성취할 수 없는 그리움을 화석으로 남기고 떠났다. 하늘이 거대한 암반으로 변하고 그 암반의 무게를 정식 혼자서 지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식이 가로수를 붙잡고 섰다.

“찬경이, 왜 거짓말이라고 실토하지 못해?”

정식이 허리춤을 풀고 오줌을 갈겼다. 배찬경이 제 바지로 튀는 오줌을 피하려다가 넘어졌다. 정식을 붙잡은 채여서 정식도 같이 넘어졌다. 정식의 오줌발이 허공으로 뻗쳤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시를 칭찬한다고 하더라도 누이가 없으면 그 모든 칭찬이 헛된 거야.”

정식은 먼저 일어난 배찬경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물기 축축한 목소리로 외쳤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 ‘초혼(招魂)’ 일부

“정식이, 술부터 끊게. 결심대로 악착같이 살게. 진통 때문에 생아편을 복용한다는 소문도 들었네. 순사보 놈한테 맞은 몸이 아직까지 온전치 못하다지? 조심하게. 상용하면 그게 딴 세상으로 인도하는 급행열차 표가 된다네.”

배찬경이 정식의 허리춤을 추슬러 아직까지 바지 밖으로 나와 있는 성기를 넣어 주었다.

“내가 왜 술을 마시고 아편을 하는 줄 아나? 세상이 죄다 미쳤어. 나만 어찌 멀쩡할 수 있겠나.”

정식이 배찬경에 어깨에 기대어 흑흑, 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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