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2장 4인조 결성(2)

 

*

4인조 밴드 첫 버스킹인가. 구보아저씨는 감쪽같이 젊은 록커처럼 변신했다. 여자의 설득으로 아저씨는 긴 머리를 약간 자른 뒤 펌을 하고 염색을 해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다. 게다가 찢어진 헐렁한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받쳐 입어 세련되게 변신했다. 가면까지 쓰니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헤이, 록 앤 롤 보이!”

구보아저씨 역시 록 스피릿을 의미하는 손가락 제스처로 왼쪽 가슴을 탕탕 친 뒤 팔을 공중으로 뻗었다.

우리는 각자 마지막 공연 장비를 검토 중이었다. 우리 밴드 외에도 두 팀이 한 시간 간격으로 공연을 한다고 했다. 시(市)에서 허가한 장소라 그런지 라이브 스테이지는 제법 규모가 갖춰져 거리공연자들이 욕심을 내는 장소라고 했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기는 시각인데도 해는 여전히 열기를 뿜어냈고 오가는 사람들 손에는 미니 선풍기가 들려 있었다. 다행인지 찜통 같은 더위에도 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고 나는 엠프와 스피커의 연결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가면 안에서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인사를 하며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이 떠드는 동안 나는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나를 본 두 여자가, 우와 붉은 박쥐다, 하며 스테이지 쪽으로 뛰어왔다. 어리둥절한 채 서 있는 내게 여자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다가오는 그들에게 엉겁결에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였다.

저희 완전 팬이에요, 두 여자는 손을 불쑥 내밀었다. 엉겁결에 두 여자와 번갈아 가며 악수를 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여자는 쾌활하고 발랄했다. 어쩜 기타를 그렇게 잘 치는지, 기타를 친 지 얼마나 됐는지, 몇 살 때부터 쳤는지, 지금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그들은 거의 취재 수준의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두 여자의 호들갑에 혼이 쏙 빠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 밴드의 멤버를 모두 좋아하지만 그중 붉은 박쥐 가면인 나의 광팬이라고 했다. 광팬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 맞아요?”

“어머머, <날개를 꺾지 마> <그날, 이후> <푸른 밤 고속도로> 이거 다 붉은 박쥐님이 부르는 거잖아요?”

“우리 멤버 전체가 부르죠.”

“목소리가 어쩜 그렇게 특이하세요? 실제 목소리도 그런지 궁금했는데, 와 신기하게 비슷하다.”

“그러게 완전 소울 충만, 우울하면서도 울림이 촤악 깔린 목소리, 넘 좋아요.”

특히 <날개를 꺾지 마>는 젊은 세대의 고충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더욱 공감이 가서 들을 때마다 위로를 받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를 보며 신기해하는 그들이 나는 오히려 신기했다. 지나친 리액션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한 여자가 미니선풍기를 내 쪽으로 틀어주었다.

“그런데 우리 노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네? 어머머 그거 지금 농담이죠?”

“……?”

“은근 귀여우시다! ‘붉은 박쥐와 비따비’밴드 요즘 화제밴드 랭킹 1위예요. 유튜브 조회수도 엄청난데?”

“유튜브요?”

“얼마 전 라이브 공연 영상은, 와- 완전 찐감동이었어요.”

두 여자는 바톤을 주고받듯 번갈아 가며 말을 이었다.

“가사를 직접 다 쓰신다던데, 어떻게 그런 멋진 가사가 나오죠? 완전 음유시인이에요. 게다가 기타연주도 대박.”

소공연 때마다 기획팀 직원들이 찍은 영상을 편집해서 여기저기 SNS에 올린다고 했다. 여자와 말리에게 알아서 맡긴 일이지만 내가 모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붉은 박쥐 가면은 누구 아이디어예요? 진짜 잘 어울려요.”

멤버들의 가면 속 얼굴을 두고 네티즌들의 추리게임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고 했다. SNS 상에선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에 긍정적 반응과 반대 의견의 공방전이 치열하다고 했다. 긍정적 반응 쪽에선 호기심 자극과 편견을 없애고 음악성만으로 밴드를 평가할 수 있다는 의견이었고, 반대로 영화나 티브이 프로를 모방한 것은 유치하고 새로울 것 없는 삼류 아류밴드이며, 호기심 유발을 위한 관종들로 질 낮은 밴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살짝, 아주 살짝만, 얼굴을 공개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

나는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가면 안에서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일회성으로 길들여진 세상에 잠깐 화제의 대상이 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순식간에 사라질 관심일 텐데. 그런 생각 탓인지 저들의 입에서 오렌지 과즙처럼 톡톡 터져 나오는 새콤달콤 언어들이 오히려 식상하고 지루하게 들릴 뿐이었다.

“가면을 아무 때나 벗는 건 반칙이죠. 우리 밴드가 화제라면 이것도 일종의 게임 아니겠어요?”

“네? 게임이라구요?”

“예 게임요,”

“어머어머 재밌다, 게임이라니까 더 흥미롭네! 그럼 사진은 같이 찍어주실 거죠?”

셀카 몇 장을 찍어준 뒤 자리로 돌아왔다. 구보아저씨는 옷차림과 가면 때문인지 젊은 사람처럼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당장이라도 기타를 이빨로 물어뜯는 록커로 변신해도 어색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우빈 씨 예상 밖이네요. 그새 팬도 생기고, 스타성 장난 아니다.”

“농담 마시고, 빨리 오픈 곡 시작하죠?”

여자의 한쪽 눈이 짙은 화장 속에서 찡긋했다. 나는 말리와 구보아저씨를 돌아보며 신호를 보냈다. 말리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무대 바깥 여기저기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많았나, 생각하는 순간 무대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주변을 파고들자 가로등이 일제히 켜졌다. 몰려든 관객들의 손엔 약속이라도 한 듯 촛불이 들려 있었다. 서울 광장도 아니고 중심지도 아닌, 외곽 공원에 불과한 이런 장소에서 촛불군중이라니, 문득 예감이 이상했다. 설마, 나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까혼을 두드리며 ‘캘리포니아 드림’을 부르고 있었다. 저음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다크쵸코 아이스크림처럼 깊고 부드러우면서 쌉쌀한 느낌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었는데도 더위는 꺾이지 않았다. 일기예보는 연일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에 대해 떠들었다. 끈적거리는 피부 위로 날벌레가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한 줄기의 바람마저 더위 안으로 숨어버린 듯 공기는 탁하고 후덥지근했다. 날벌레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늘어난 촛불들이 리듬에 맞춰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모기가 팔과 다리에 붙어 피를 빨았다. 모기 때문인지 촛불 때문인지 아니면 더위 때문인지 도무지 연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연주를 하지 않자 여자와 말리가 자주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인지 구보아저씨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연주에 몰입해 있었다.

두 곡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함성이 이어졌다. 마치 유명밴드 공연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여자가 관객들을 향해 멘트를 했다. 어떤 공연에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멘트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점점 멘트가 음악 얘기가 아닌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엉뚱한 내용으로 흘렀다. 어어, 하는 사이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물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연스러웠고, 나만 느끼는 이상함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구보아저씨 옆으로 갔다. 아저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변함없는 태도였다.

나는 재빨리 다음 곡 전주 부분을 연주했다. 여자가 내 눈치를 보며 <날개를 꺾지 마>를 부르겠다며 멘트를 정리했다. 관객들의 함성이 공원으로 넓게 울려 퍼졌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다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고 내 목소리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내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과 희열을 느꼈는데, 오늘은 아무런 감흥도 없고 오히려 맥이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부르는 노랫말은 나에 대해 쓴 얘긴데, 촛불을 든 관객들과 함께 부르자 마치 시위곡이 된 분위기였다.

공연의 목적은 단지 아저씨의 회생을 돕는다는 게 첫 번째였고,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밴드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주목적이고 공연은 단순히 부수적인 분위기였다. 나는 특정 목적이 담긴 음악을 하는 것은 반대였다. 게다가 갑작스런 이 상황들을 나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갑자기 기습공격을 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버스킹이고 뭐고 당장 무대를 떠나고 싶었다.

구보아저씨가 옆으로 와 어깨를 꽉 잡으며 말했다.

“니 마음 안다. 그런데 무대는 이미 시작됐어, 음악만 생각해라! 해주도 다 생각이 있겠지”

“아저씨는 알고 있었어요?”

“다음 곡 준비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무대를 벗어나는 건 음악인의 자세가 아니지.”

“저런 건 음악인의 자세입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 구보아저씨는 제자리로 가 기타 줄을 만졌다. 디리리링. 효과음처럼 기타 줄에서 부드러운 소리가 울렸다. 여자가 고조됐던 멘트를 정리하려고 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한 실천이 나중엔 거대한 힘이 되는 거 아시죠? 로 시작해서 촛불모임에 대한 변명인지 찬사인지 모를 얘기를 늘어놓으며 여자는 멘트를 마무리했다. 관객들은 촛불을 높이 쳐들고 함성으로 답을 했다. 여자의 삶이 온통 봉사와 사회참여에 바쳐지고 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쾌감을 애써 감출 마음도 없었다. 게다가 27클럽 회원들 모임이라니! 요즘 정대의 죽음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27클럽 회원들이 모였다고 하자 심한 거부감이 일었다. 나는 어깨에서 스트랩을 뺀 뒤 기타를 앰프 옆에 내려놓았다. 말리가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왔다. 급하게 오느라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형 왜 이래? 메인기타가 빠지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어쩌라고, 어? 분위기가 이게 뭐냐. 27클럽 회원들은 또 뭔데?”

“워워 일단 진정하시고, 형은 당연히 거부할 거 아니까 끝나고 다 설명할 참이었어. 연주부터 끝내자 어? 형 제발.”

눈치를 챈 여자가 재빨리 자연스럽게 멘트로 분위기를 새롭게 이끌어 나갔고, 그사이 구보아저씨가 기타를 들고 와 내게 건넸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냐? 기타를 내팽개칠 정도로 화낼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무책임한 녀석!”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무대에선 한 방향으로 가는 거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생각! 봐라, 여기에 영혼이, 이렇게 하나로 통일돼야 해. 혼자서 할 거면 지금이라도 때려 쳐라. 그런 놈은 필요 없다!”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말하는 구보아저씨의 충고는 충격이었다. 마치 데자뷔의 순간을 겪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하는 말들은 예전 용주가 했던 말과 거의 흡사했다. 가면 탓이기도 했지만 용주가 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구보아저씨는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영문을 모르는 관객들은 붉은 박쥐 가면을 외치며 응원을 보냈다. 여자는 휴식을 핑계로 노련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밤 숨어 있던 벌레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었다. 밤을 뜨겁게 달구는 더위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나는 앞을 향해 계속 걸었다. 구보아저씨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모르는 아저씨만의 세계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은 뒤죽박죽이 되어 한참 걸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공연장에서 멀리 벗어난 것 같았다. 주변이 너무 고요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하늘에선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처럼 소나기가 쏟아졌다. 삼 일 전 당신이 불쑥 찾아왔던 것이 떠올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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