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4인조 결성

 

8월 중순으로 접어 들었지만 푹푹 찌는 더위의 열기가 계속되었다. 한동안 정대 생각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다. 반복된 일상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었다. 몇 가지 변화는 있었다. 레트로 가든의 물건을 정리해준다는 핑계로 그곳 소파에서 잠드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구보아저씨와의 관계가 발전했다. 또 다른 변화라면 27클럽에 대해 여러 정보를 알게 되었고, 27클럽 회원들의 루트를 통해 루시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놀라운 건 아직도 27클럽이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루시퍼에 대한 환상이 회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루시퍼를 쫓는 음악인들이 많다니 새로운 충격이었다.

휴가 기간 때문에 식당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핑크공주 꼬맹이 부녀도 이 주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말리가 부녀에게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자주 걱정했다. 반면 커뮤니티에는 방학을 이용한 청소년 수강생들이 두 배로 늘었다. 학생들은 스폰지처럼 뭐든 쑥쑥 빨아들였다. 곡 하나를 가르쳐주면 나머지는 유튜브를 이용해 이삼 일 안에 연주를 마스터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계적인 연주를 익힐 뿐이었다. 우리 때와는 감성 자체가 다른 아이들을 보면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 때도 스킬만을 익히려고 혈안이 되었던 애들도 많긴 했다. 꼭 세대의 문제만은 아닌 음악을 대하는 개개인의 차이가 아닐까.

“스킬은 기계로도 충분해. 얘들아, 진정한 음악은 말야, 음표 하나하나에 자신의 마음을, 진심을 담아야 하는 거야.”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반박했다. 스킬이 좋으면 성취감, 만족감, 자존감, 멋지게 보이기, 관심받기 등등.

“종합적으로 개이득이죠 뭐.”

임마 스킬을 익히지 말라는 게 아니고, 아이들은 말이 안 통했다.

 

그사이 구보아저씨와 나 사이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는 매일 가게 여기저기 처박혀 있던 고가구와 장식대들을 끌어내어 개조한 뒤 물건들을 종류별로 진열했다. 당연히 가만있을 아저씨가 아니었다. 한바탕 소란을 치렀지만 결국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동안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 만물상처럼 보이던 가게가 조금씩 정리가 되었다. 낡은 비디오 데스크탑이나 카세트 또는 고장 난 턴테이블은 모두 버리고 쓸모없는 물건들 역시 대형 봉투에 쓸어 담았다.

가게의 물건들은 서로 연관된 것 위주로 진열을 했고, 관련 없는 종류는 모두 재활용으로 보냈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도 반 이상 버려야 했다. 구보아저씨도 그다지 싫은 건 아닌지 모자란 진열대를 직접 짜주기도 했다. 여자가 몇 가지 장식품을 구해와 레트로 분위기가 나도록 꾸몄다. 구보아저씨는 가게 일 외에도 틈틈이 기타 연습을 꾸준히 이어갔고, 팔의 신경을 되살리는 물리치료도 빠트리지 않고 받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가는 중이었다.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조현성 성격장애도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기나긴 터널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아저씨의 모습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활기찼다.

저녁 무렵이면 셋이 매일 산책을 했다. 말이 산책이지 걷기 운동이나 다름없어 ‘하필 가장 더운 시기에 무슨 짓이냐’ 고 말리는 투덜댔다. 평소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로 표시가 나지 않던 말리의 왼쪽 다리의 절뚝거림은 빨리 걷기에서 눈에 띌 정도로 심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익혀갔다. 간혹 보폭이 벌어지면 서로 기다렸다 보폭을 유지하는 것으로 신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구보아저씨는 어디서 낡은 악기들을 용케도 잘 구해왔다. 구해온 악기들을 직접 수리하고 모양도 꾸며 제법 근사한 상태로 바꿔놓았다. 이번에는 목이 부러진 기타를 주워왔다.

“그건 아예 못 쓰겠는데 쓰레기를 뭣 하러 주워오세요?”

“이 기타에 담겼을 역사를 차마 모른 척 할 수 없지 뭐냐.”

내가 투덜거리는데도 구보아저씨는 땀이 범벅이 된 채 묵묵히 기타를 수리하는 데에 열중했다. 가망이 없어 보이던 물건이 점점 형태가 잡히는 것을 보며 내 투덜거림은 어느새 감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동안 쓸모없는 사물들을 귀하게 대하는 아저씨가 이상해 보였었다. 하지만 목이 꺾여 쓰레기나 다름없는 기타가 아저씨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자 신비할 따름이었다. 다음 날 와 보니 기타에 문양을 그려 넣고 색칠과 니스까지, 완전히 새 기타처럼 바꿔놓았다.

“낙엽 문양 넣은 거 꽤 그럴싸한데요, 어, 그런데 이거 콜트 따라 한 티가 확 나잖아요. 오텀 리브즈 알죠?”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에에 몰라요? 이거 완전히 다른 기타가 됐네.”

구보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드디어 구보아저씨가 합류하여 4인조 밴드가 결성됐다. 나는 속으로 ‘이건 내가 이긴 싸움이지’ 쾌재를 불렀다. 같이 기타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다 보면 루시퍼의 비밀을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합주 연습은 방음시설이 돼 있는 커뮤니티 연습실에서 주로 했다. 쉼표 역시 방음시설이 돼 있긴 했지만 주택가가 밀집 돼 있는 곳이다 보니 늦은 시간 합주는 곤란했다. 구보아저씨는 왼쪽 팔 신경이 거의 돌아왔다고 했지만 여전히 오픈코드를 자유자재로 잡는 건 무리였다.

“전설이었다면서요? 전설이 뭐 그래요? 어떤 식으로든 운지가 가능해야 전설 아녜요?”

“싱거운 놈, 어떤 놈이 전설이니 뭐니 그따위 소릴 해?”

“왜 소리는 질러요. 하여간 성질은 역대급이라니까!”

“형님 말버릇 참 오지십니다. 내 눈엔 아저씨 기타 실력 최곤데 뭐. 구보아저씨 브라보!”

우리는 연습 때마다 자주 티격태격했다. 그러다가도 연습이 시작되면 각자의 포지션에서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버린 듯 진지했다. 구보아저씨가 가장 심했는데, 연습 중엔 아무리 불러도 알아채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단단히 둘러치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둬버린 것 같았다. 어떨 땐 너무 늦은 시간까지 연습이 이어져 그만 끝내자 말려도 듣는 척도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두 번에 걸쳐 시도한 소공연에서 구보아저씨는 그토록 많은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떨었다. 어떤 말 못할 깊은 트라우마가 아저씨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구보아저씨는 밴드에 합류한 뒤에도 루시퍼는 꼭꼭 숨겨두었다. 나는 자주 루시퍼 얘기를 들먹였다. 어떤 이유로 아저씨는 그 기타를 애지중지하는지, 속을 알 수 없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저씨 루시퍼 잘 있죠?”

“고녀석 참. 니가 신경 쓸 기타가 아니라는데 왜 자꾸 어거지 부리는 거냐.”

“루시퍼가 확실하다니까요. 이미 팔아치운 건 아니죠?”

“멍청한 놈, 그 기타는 안 판다고 했잖냐.”

“그럼 왜 안 보이냐구요. 아야! 왜 등은 때려요? 말로 하시지.”

“말이 안 통하는 놈!”

우리는 매일 비슷한 얘기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 루시퍼 얘기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고, 그럴수록 궁금증은 점점 증폭되어 극에 달할 지경이 되었다.

동네 소공연에서 보였던 구보아저씨의 공포증이 어느 정도 극복될 무렵, 기다렸다는 듯 여자는 구보아저씨를 설득했다. 이번에는 버스킹을 나가보자는 거였다. 마침 연습실에 여자와 내가 일찍 나와 있던 날 그런 얘기가 나왔다.

“왜 그렇게 버스킹에 집착하세요?”

“왜 그렇게 버스킹을 싫어할까?”

“지역 공연만으로 충분하잖아요? 구보아저씨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래서예요. 구보아저씨에겐 촉매제 역할이 될 거고, 우리 밴드도 이젠 열린 공간으로 나갈 필요가 있어요.”

“굳이 왜요? 우리끼리 해도 충분하잖아요.”

“우리끼리는 의미가 없어요. 취미생활을 위한 밴드는 안 돼요. 우리도 본격 음악을 해야죠.”

“우리 밴드, 동네 주민들 간의 화합을 위한 소규모 공연 위주 아니었어요?”

“다들 어렵게 다시 시작한 건데, 동네잔치로 끝나면 허망하지 않겠어요?”

“이 동네 주민도 아닌데 나는 왜 끌어들였어요?”

“전에 말한 적 있죠? 어쩌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됐다구요. 우리 네 사람 다 비슷한 주파수를 갖고 있어요.”

“비슷한 주파수요?”

“두 번째 본 날 서점에서 기타 쳤었죠? 그때 우빈 씨 안에 또 다른 우빈 씨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거든요.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나는 가슴 한쪽이 간지러워지는 느낌이었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지만 왠지 더 이상 얘기가 진행되는 건 싫었다.

“얘기가 다른 데로 샜는데, 구보아저씨랑 버스킹을 꼭 해야겠어요?”

“첫 버스킹에 성공하면 곧바로 공연 횟수를 늘려서 어디서든 공연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할 거예요. 거기까지 극복이 되면 오디션에도 참가할 계획이구요. 우리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을 조금씩 만들어 가는 거죠.”

“하 그런 걸 혼자 다 결정하세요? 미안하지만 난 동의 못해요.”

“왜요, 평생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구보아저씨도 그렇고, 말리도 그렇고, 우빈 씨 역시 비슷한 입장 아닌가? 뭐가 그렇게 두려워요?”

“그래요. 음악도 좋고 밴드도 좋고 공연도 좋고, 다 좋다 쳐요. 우리 멤버들이 다들 평범하지 않은 건 아시죠?”

“평범하지 않아서 음악을 훨씬 더 소중하게 대하는 거죠.”

“그 얘기가 아니라, 젊은 애들도 음악계 뚫고 들어가기 힘든데, 우린 젊은 것도 아니고 신체가 멀쩡한 것도 아니고, 버스킹 하다 입을 상처는 생각 안 해 봤어요? ”

“한 세계를 이룬다는 거, 그렇게 어려운 일 아녜요. 사회참여 음악 쪽으로 적극 활동하기엔 우리 멤버들 만큼 적격인 팀도 없을 걸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줘야죠.”

“하하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녜요? 사회참여 음악이라구요? 와 진짜 비현실적이셔.”

여자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성격인데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우선은 구보아저씨를 도와주기 위해서란 걸 모르겠어요? 아저씨가 왜 그렇게 됐는데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다들 모른 척 하거나 오히려 아저씨 탓을 하잖아요.”

말의 앞뒤를 잘라내고 자신의 생각 만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여자의 화법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음악은 어떤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뻗어가는 거죠. 목적이나 조건, 그딴 게 다 왜 필요합니까. 음악은 그냥 음악일 뿐이라구요.”

여자가 내 말을 자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술이 생각을 바꾼다면 음악은 세상을 바꿔요. 음악은 모든 걸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장르예요.”

“하하하 무슨 거창한 음악 다큐라도 찍겠다는 겁니까? 음악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는데요? 예? 잠깐의 치유 수단은 될 수 있겠죠.”

“우리의 연주는 상처받고 버려졌던 것들이 내는 소리라는 걸 아셔야 해요.”

내가 여자의 말에 막 반박하려는 순간 구보아저씨가 연습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우리는 당황하여 잠시 말을 얼버무렸다.

구보아저씨는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의 연주가 상처받고 버려졌던 것들이 내는 소리라고? 나는 속으로 여자의 말을 곱씹으며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여자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상처받고 누군가에 버려진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지 몰랐다. 나는 기타 줄을 만지며 조율을 하는 척했다. 여자는 구보아저씨에게 이번 주 토요일에 가까운 공원으로 버스킹을 나가보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구보아저씨는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며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마침 말리가 들어와 너무 덥다며 에어컨을 세게 튼 뒤 선풍기 앞에 서서 수선을 떠는 바람에 어색한 분위기는 정리가 되었다. 구보아저씨가 오케이! 라고 했다.

“오호 우리 4인조 밴드가 드디어 결성된 거네요?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주스 한 잔씩 마실까요?”

연습을 끝내고 말리의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연습실에서 나왔다. 구보아저씨와 나는 뒤처져 걸었다. 아저씨가 내 등을 두드렸다.

“이봐, 거리공연 그까짓 게 뭐라고 시끄럽게 구냐. 가면을 쓴다고? 거 재미나겠네.”

“땡볕에 퍽도 재밌겠네요, 쓰러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스읏, 너보고 책임지랬냐? 젊은 놈이 소심해서 원. 평생 난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쓰레기처럼 살았다. 해주 덕분에 이제라도 제대로 살고 싶다는데 것도 못 도와주냐?”

“알았어요. 그럼, 거리공연 땐 루시퍼로 연주하실 거죠? 아니면 나한테 루시퍼를 양보하시든가 예?”

구보아저씨는 내 등을 세게 친 뒤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나는 투덜대며 뒤를 따라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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