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1장 손님

 

식당 뒷마당에 앉아 당근과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며칠 째 커뮤니티 센터에서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어제는 다문화 가족 교육 프로그램의 공연이 있었다. 그동안 가르쳤던 청소년들과 함께 첫 공연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아이들의 가족들과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반응은 좋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자주 빠져 합주 연습이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자 후련했다. 이틀 동안 꽉 찬 일정을 소화하느라 무리해서인지 어깨가 뻐근했다.

여자는 요즘 쉼표에서 ‘푸른 밤, 푸른 하모니’ 라는 타이틀로 클래식과 기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느라 바빴다. 무대에 서기 힘든 클래식 연주자들을 초빙하여 기타와 협연을 했다. SNS상에서 여자의 서점은 꽤 유명세를 타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하던 일의 일부를 점점 내게 떠넘겼고, 대신 새로운 일들을 끊임없이 벌여 나갔다. 시에서 개최하는 예술지원금 신청 준비를 기획하느라 바빴고, 또는 자잘한 지역문제에서부터 정치적인 문제까지 관여하는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힘으로 이 동네에 위안부 할머니 동상을 설치하겠다는 야심까지 내비칠 정도였다. 조용히 사는 타입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어디에서 그토록 에너지가 끝없이 솟아나는지, 무엇이 그녀의 삶을 그토록 끝없는 열정으로 내모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레트로 하우스에 들러 청소를 해준 뒤 말리의 식당에 필요한 식자재를 위해 농수산물에서 직접 장을 보기도 했다. 잠깐도 틈을 주지 않고 몸을 혹사 시키려 애썼다. 요즘 들어 십 대 때 루시퍼를 훔치던 날의 악몽이 자꾸 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보아저씨의 기타를 처음 봤을 땐 다시 보게 된 루시퍼 때문에 흥분상태가 지속되었다. 잃어버린 꿈의 일부를 떠올리고 꿈과 맞닿은 추억을 건져 올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무엇보다 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에 말이다.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은 오랜 죄의식을 조금씩 밖으로 끌어내는 꼴이 되었다. 나는 다듬어놓은 나물 종류를 한쪽에 밀어놓고 양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단순노동은 생각을 물고 늘어지게 하여 때로는 정신적 파장을 일으키게 했다.

“형 식당으로 들어와 봐요.”

뒷문으로 목을 빼고 말리가 소리를 질렀다.

“누가 형을 찾는데?”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부하직원들 외에는 나를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불안했다. 최 실장이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줬겠지. 이 개자식! 끝내 기타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지 못한 채, 이대로 다시 끌려가고 마는 건가.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당신의 꼭두각시로 돌아가야 하는가.

이번엔 담판을 지어야겠다. 어떻게? 감히 당신의 명령을 어기고 뛰쳐나온 내가, 회사에 커다란 손실을 입힌 내가 감히, 당신에겐 커다란 악행을 저지르고 도망자 신세인 내가, 무슨 배짱으로? 어떤 식이라도 당신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잡혀가더라도 내 발로 당당히 갈 것이다. 그런데도 주인 앞에 꼬랑지를 말고 벌벌 떠는 개처럼 불안에 휩싸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세뇌를 당한 사람들은 다른 세계를 마주해도 흔들리지 않는 속성이 있다. 오직 그 세계만이 진짜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동안 바늘로 새기듯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쑤셨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딨어? 누가 찾아왔다며?”

“내가 언제? 누가 형을 찾는다고 했지.”

“그게 그거지. 어딨냐고?”

“거기 전화.”

“전화?”

“빨리 받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말리는 뭔가 나를 놀리는 듯한 눈빛으로 전화기 옆에 내려놓은 수화기를 가리켰다. 나는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너 장난치는 거면 죽는다.”

“거참, 빨리 전화나 받으셔.”

나는 수화기에 대고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라고 했다. 상대는 오래 기다린 듯 약간 짜증스런 투로 여보세요, 라고 했다.

“저 혹시 옛날 27클럽 회원이신가요?”

나는 깜짝 놀라 말리를 쳐다보았다. 말리가 팔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거기서 27클럽 회원들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요.”

“모임요? 회원들요? 누가요? 그런데, 누구시라구요?”

“모르실 걸요.”

나는 말리를 보며 인상을 썼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저 자식이 그새 SNS를 통해 광고를 퍼트렸겠지.

이름이 뭔지 재차 물었지만 상대는 한참 머뭇거리는 눈치더니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전화에 나는 몹시 어리둥절했다.

내 의견도 묻지 않고 모임을 잡아? 그것도 이 식당에서? 말리 이 자식을 그냥. 말리에게 인상을 쓰자 말리는 오히려 당당하게 두 손을 펼치고 어깨를 으쓱 올렸다.

“고맙다는 말은 사양하겠어요. 대신 빨리 음식 준비나 하자구요.”

“너 꼭 이런 식으로 장사해야겠냐?”

“장사는 무슨! 날 몰라서 그러시나. 저번에 형 얘기 듣고 27클럽 검색해봤지. 궁금해서 글을 올렸는데, 와 진짜 의외였다고.”

 

저녁 식사 손님들이 여러 차례 몰려왔다 모두 빠져나간 시간에 세 명의 남자들이 들어왔다. 말리가 전화 주신 분들이냐고 묻자 그들은 전화하지 않고 SNS 남긴 주소로 곧장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은 딱 봐도 27클럽 회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악 활동을 하는지 겉모양부터 일반적이지 않았다. 셋 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 스타일에 뾰족한 징이 수십 개 박힌 청바지에 사슬은 왜들 주렁주렁 매달았는지. 한 사람은 스판 티셔츠를 입었고 또 한 사람은 해골 문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나머지 한 사람은 헐렁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더위에 웨스턴 부츠는 또 왜, 볼수록 너무 튀는 의상들이었다. 마치 양아치 부대처럼 참으로 전형적 캐릭터들 같았다. 해골 문양의 티셔츠를 입은 남자는 머리를 한가운데로 뾰족하게 세운 모히칸 스타일에 체인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여어, 한우빈! 여기서 다시 보다니 진짜 반가운데?”

“와아 진짜 오랜만이네.”

“이 자식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범생이 모습 그대로잖아.”

세 남자는 틈도 주지 않고 아는 척 하느라 소란을 피웠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나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야야, 너 우리 중 아무도 기억에 없어?”

“한 학기뿐이었지만 그래도 같은 동아리 동기였는데 섭하다 섭해.”

“야 난 그래도 꽤 오래 학교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날 기억 못 해?”

세 사람은 계속 동시에 말을 뱉었고 나는 그들의 말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어언 십칠 년이 지났잖냐.”

“너는 우릴 몰라봐도 우린 널 보고 딱 알잖냐 그럼 된 거지. 하하.”

“너랑 용주를 모르면 우리 학교 출신 아니지. 우리 학교 히어로들이었잖냐.”

“용주 자식은 잘 있냐? 당연히 밴드활동은 하고 있겠지?”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27클럽 회원들에 대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말리는 술안주를 푸짐하게 만들어 탁자 한가운데 놓아두고 묻지도 않고 소주를 두 병 가져다 놓았다. 그들 역시 자연스럽게 술을 따랐고 다 같이 건배를 하자고 했다. 낯선 얼굴들이 친밀하게 다가오자 거부감이 들었다. 한 명은 이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텔 클럽에서 노래를 한다고 했고, 다른 두 명은 직장을 다니지만 음악 동호회에서 활발하게 밴드활동 중이라고 했다. 지난 세월의 근황을 떠드느라 셋은 한참 동안 시끄럽게 떠들었다.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27클럽 회장이 대체 누구냐? 너 맞지?”

“에에이 쟤 아니라니까, 용주라니까.”

“무슨 소리야, 우빈이가 더 잘 나갔잖아. 얜 못 다루는 악기가 없을 정도였고 노래까지 끝내줬잖아.”

말리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세 명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했다. 그들은 답을 독촉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회장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지. 그게 27클럽 명맥을 이어가는 가장 큰 무기였잖아. 나도 용주도 당연히 회장이 아닐뿐더러 회장이 누군지 모르지.”

노랑머리가 모른 척 말라며 빨리 불라고 했다. 세 사람은 27클럽 회장을 알아맞히기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지난 시절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을 아직도 품고 있다니. 마치 그 시절 고삐리 녀석들이 다시 모인 것처럼 풋풋하기도 했고 유치하기도 해서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세 사람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야 그런데, 뭐냐? 너 음악은 아예 그만두고 여기 식당에서 일하냐?”

“어 그렇지 뭐. 혹시 용주 소식 아는 사람 있냐?”

“그걸 우리한테 물으면 어떡하냐. 우린 너한테 소식들을 줄 알았는데? 아참 근데 말야, 그때 너희 밴드 중에 또 한 명 있었잖아. 드럼 치던 애. 걘 죽었단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무슨 소리야? 정대가? 걔가 왜?”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얼떨떨해져서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 잘못 들은 게 분명했다.

“어 너 몰랐냐? 걔 전역한 뒤 복학하고 나서 졸업하기도 전에 자살했다는 거 같던데?”

나는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순간 정대의 죽음이 우리가 훔쳤던 기타와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빠르게 스쳤다.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충격 때문인지 머리가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몸이 휘청거려 벽을 붙잡았다.

식당 안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대가 왜? 정대가 죽었다고? 나는 초조하게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초조할 때마다 그렇듯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어쩔 수 없이 골목 담벼락에 소변을 봤다. 고양이 한 마리가 구석에서 나를 노려보며 크아악 공격적인 소리를 냈다. 고양이의 두 눈동자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감히 내게 달려들어? 나는 바지 지퍼를 올리고 고양이에게 헛발질을 했다.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나는 벽을 치며 으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문득 식당 옆 골목 모퉁이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몇 초간 검은 그림자와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문득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한 뒤, 거기 누구세요? 라고 소리쳤다. 검은 그림자는 갑자기 몸을 돌려 골목 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쫓아갈 틈도 없었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헛것을 본 것 같았다. 27클럽 회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나는 밤새 술을 마셨다. 말리가 무슨 일이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대의 선한 눈빛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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