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귀국과 생업

 

11

 

지국 사무실의 미닫이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아내가 정식의 책상 앞에다 편지 한 통을 툭 내던졌다. 그동안 사무실에는 얼씬하지 않았다. 남자의 일터에 출입하지 않는 여인네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한몫했겠지만, 해야 할 말조차 참는 아내의 성격으로서는 그보다는 점증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 탓일 가능성이 컸다. 오늘은 달랐다. 나름 대담한 결심을 품고 온 듯했다.

“이 여자는 또 어찌 낚아챘소?”

아내가 정식 앞에 똑바로 서서 정식을 꼬나보았다. 퍽 당돌했다. 당혹감을 견디며 정식이 편지로 눈길을 돌렸다. 봉투에는 도쿄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도미꼬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늘 곽산 본가 마을에서 남시로 오는 사람이 있다더니 그편에 딸려온 것인가 보았다.

“난들 어찌하겠소, 내가 좋다고 자기 스스로 보낸 걸.”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오? 아무려면 당신 꼬리가 제 절로 흔들렸단 말이오?”

봉투는 뜯겨 있었다.

“근데 왜 남의 편지를 읽소?”

“아직도 오순이란 여편네를 못 잊고 있다는 걸 내가 다 아오. 대체 여자가 몇이오? 경성에는 또 없소? 다 대 보오.”

정식은 대꾸하지 않았다. 의심이 억울했지만, 터무니없지는 않았다. 다만 사실을 밝혀서 아내의 이야기를 길게 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의심을 깊게 하는 사람에게 변명은 의심을 가중시키는 짓.

“당신은 나를 신문지 쪼가리를 바라보듯 대하고 있소. 내가 노리개나 씨받이에 불과하오? 시를 쓰면 딴 세상 인간이 되는 것이오?”

아내가 꼬나보는 눈길을 풀지 않았다. 정식은 먼산바라기를 하며 긴장의 시간을 견뎌냈다.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등한히 하면 천벌을 받으오.”

아무리 생활이 어렵다한들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으며 함께 살아온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언젠가 그런 날이 닥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궁핍한 살림 문제만이 아니었다. 남편으로서의 구실, 아비로서의 구실이 몸에 배어들지 않는 것을 무시로 뉘우쳤다. 하지만 사위가 밝아지면 태양의 존재를 잊고 마는 것처럼 그런 감정이 곧 까맣게 자취를 감추곤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흑흑, 탁음이 들렸다. 아내의 눈이 벌겋고 눈동자에 물기가 잔뜩 끼었다. 울음은 진심의 표현이라던가. 아내가 휙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갔다. 미닫이문이 닫히는 소리가 문을 부수는 소리처럼 컸다. 아직 남은 화를 어떻게 다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행동이 같았다.

아내가 길 저편 시리게 열린 하늘 밑으로 사라지는 것을 정식은 창문으로 넘겨다보았다. 비로소 책상 위의 편지를 집어 들었다. 헤어진 지 벌써 이태가 흘렀구나. 이젠 고등중학을 졸업하고 여대생이 되었겠지? 어엿한 처녀티가 나겠지? 일본 아내가 되겠다고 했지? 편지에서 도미꼬의 특유한 정취와 향내가 풍겨 나왔다. 정식은 편지를 코 가까이 옮기다가 멈추었다. 해야만 할 일을 하지 못한 적이 적잖았지만, 하고 싶은 일도 아내 말처럼 하지 않는 적이 있어야 했다. 아쉽지만 편지를 건너편 벽 쪽에 있는 휴지통을 향해 내던졌다. 도미꼬, 당신과 당신 어머니에게 진 신세는 결코 잊지 않겠소. 내가 더 할 게 그뿐 뭐가 있겠소.

12

 

정식이 문을 열어 주자, 사동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눈송이가 얹힌 작지 않은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평소보다 더 심하게 절뚝거렸다. 닷새 전 신문 배달 중에 개에게 물린 장딴지가 아직 낫지 않았다.

“눈길에 수고가 많았어. 어서 불을 쬐거라.”

정식은 얼른 보따리를 받았다. 보따리는 신문 배달을 마친 사동이 지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편소에 들려 가져온 것이다. 아침에 집배원이 찾아왔었다. 배달할 소포가 많아 눈길을 오가기가 힘들다면서 가까이 사니 직접 가져가 달라고 사정했었다. 기다리던 소포여서 정식은 기꺼이 사동을 보냈다.

“근래 가장 반가운 선물을 가져왔구나.”

정식은 보따리를 책상 위에 놓았다. 사동이 손을 비비며 난롯가 걸상에 앉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보따리를 풀었다. 50권 남짓한 책들이 나왔다. 경성(서울)의 매문사(賣文社)에서 나온 자신의 첫 시집 『진달래꽃』이었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시집으로 묶기로 하고 작업을 해왔었다. 시집을 낼 때가 되었다, 시집을 내야 시를 계속 쓰게 된다는 ‘영대(靈臺)’ 동인들의 조언을 못 이기는 척하고 따랐다. 정식은 지난 1월(1925) 『영대』가 폐간될 때까지 김억과 함께 동인에 가담했었다. 지국 일을 열심히 하고 싶어도 크게 힘쓸 일이 없었다. 농사가 주업인 사람들이라서 세상 소식에 귀 기울일 의지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신 병든 인간이 되면 시혼이 시인을 떠난다는 김억과 나빈의 충고를 가슴에 새겼다. 물론 신문 보급을 놓지 않는 한편으로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영대』와 동아일보, 『조선문단(朝鮮文壇)』, 『문명(文明)』 등에 시들을 발표했다. 시집에 담기 위해 ‘진달래꽃’, ‘산유화’, ‘초혼’, ‘금잔디’ 등 무려 127편이나 되는 작품들을 다듬고 다듬었다. 편수가 많아 더 추릴까 했는데, 김억이 괜찮다며 말렸다.

정식은 시집 한 권을 펼쳤다. 첫 권을 지금은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있는 김억에게 보내 주어야 도리였지만, 김억을 비롯한 경성의 지인들에게는 이미 출판사에서 보냈다고 했다.

“봉섭아, 이 책 받아라.”

정식은 겉표지에 사동의 이름을 써서 건넸다. 사동은 지국에 채용된 뒤 정식에게서 글을 배워 틈틈이 신문을 읽었다. 정식이 이름 있는 시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뒤부터는 정식 앞에서 처신에 더욱 신경을 썼다. 난롯가로 돌아간 사동은 책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다만 한 푼이라도 돈을 받기를 원했을 터. 월급 주기조차 부담스러운 형편은 차지하고서라도 책의 가치를 아는 듯한 사동의 변화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 책에 정식은 배찬경의 이름을 적었다. 배찬경은 요즘 지국에 발길을 끊었다. 함께 어울렸던 얼마 전의 나날이 새삼 그리웠다. 정식은 서산 본가에 갈 때마다 배찬경을 데리고 동아일보사 정주지국장인 방응모(方應謨)가 경영하는 동주 양조장에 드나들었다. 동주는 서산과 가까웠다. 처음에는 지국 경영상의 애로를 나눴지만, 차차 함께 술잔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스무 살 가까이 나이가 위인데도 방응모는 정식과 배찬경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러다 보니 배찬경은 혼자서도 가끔 양조장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 방응모는 동주에 없었다. 자신 소유의 삭주 교동광업소에서 금맥을 발견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배찬경 또한 남시 가까운 곳으로 분가해 왔다. 양조장이나 들락거리자 건달꾼과 다름없는 놈이라고 할아버지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은 뒤였다. 정식은 이사 온 배찬경에게 구성지국 총무라는 직함을 주었다. 의욕적으로 인맥을 연결해 신문 보급과 수금 활동을 도왔는데, 사무실에 순사주재소장 후지모토가 자주 나타나자 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에게 당당한 척하다가 꼬투리를 잡힐까 염려했으리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곧 무슨 일을 낼 듯했지만, 아직은 행동이 뒤따르지 못했다. 그나마 줄기차게 자기 신념이나 고집에 매달려 있는 것이 경외감을 들게 했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시집 출간을 함께 기념할 만한 인물은 배찬경밖에 없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시인이라면 대단한 인물로 보았지만, 한글 시집을 냈다면 그까짓게 시라면 나도 시인이 되었겠네, 라면서 비웃을 것이 뻔했다. 정식은 눈이 그치면 내일이라도 배찬경에게 다녀올 다짐을 하면서 다음 책을 잡았다. <계속>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