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9장 클럽 비따비(1)

 

소라와 재림이 기다린 곳은 십 대들이 몰래 드나든다는 클럽이었다. 난생 처음 그런 곳에 가게 된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숨은 공간, 우리 또래들만 갈 수 있는 공간. 마치 길거리를 각자 떠돌던 고양이들이 한곳으로 모여든 것처럼 아이들의 눈빛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기진 구석이 있었다. 소라와 재림은 자주 드나든 애들처럼 자연스러웠다. 눈이 휘둥그레진 내가 계속 놀라자 용주가 내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정대 역시 용주와 가끔 왔었다며 흥분한 표정이었다.

“야 자연스럽게.”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데 어떻게 자연스럽게 하란 건지.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술잔을 내밀며 술을 권하는 재림에게 손을 저었다. 용주가 어깨동무를 하듯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야, 촌스럽게 왜 이래. 여기선 모든 게 자유야. 봐봐, 다들 아주 자연스럽잖아. 아무도 간섭할 사람이 없어.”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이거 우리한텐 다 금지된 것들인데……”

“들켜? 누구한테? 으하하하.”

쿵쾅거리는 음악 소리와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아이들의 소음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야 했지만 서로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금지? 누가 금지해? 선생님이? 아니면, 부모님이? 쟤네 언니나 형? 삼촌이? 이모가?” 용주가 터지려는 웃음을 참는 듯 유쾌하게 떠들었다. 금지라는 건 딴 세상에나 존재한다는 투였다.

“촌스럽게 짜식이. 여기선 아무도 우리 자유를 금지 시킬 수 없어. 봐봐 쟤네 얼마나 자유로워 보이냐.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같지 않냐?”

“여기서만 자유로운 게 자유냐? 술 담배는 왜 몰래 하는데? 밖에서 못하니까 여기 숨어서 하는 거 아냐. 그런 게 자유란 거냐?”

소라가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우리가 술 담배만 하려고 여기 모인 것 같아? 그런 건 그냥 상징일 뿐이야.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따로 있어. 여긴 우리끼리 음악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곳이야. 좋아하는 걸 똑같이 좋아하고 그걸 서로 공감해주고 함께 즐기는 게 뭐 잘못 됐니?”

용주가 벌떡 일어나 팔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 모인 애들 다들 어른들 간섭 받기 싫어하는 애들이야. 자유를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가 있는 애들이란 말이지. 저항이란 게 뭐 별 거냐. 아주 하찮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라고. 암튼 범생이삘 대사야말로 지금부터 금지다, 알겠냐.”

용주가 술잔을 들고 원샷을 했다. 재림과 정대는 일어서서 잔을 들고 ‘우리의 인생을 위하여’라고 외쳤고, 용주가 ‘자유를 위하여’ 외쳤고, 소라가 ‘비따비!’ 라고 외친 뒤 잔을 비웠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조명이 홀 구석구석을 쏘아댔고 동시에 마이클 잭슨 음악이 폭죽처럼 터졌다. 아이들이 일제히 와ㅡ 소리를 지르며 마이클 잭슨의 춤동작을 따라 했다. 재림과 정대는 테이블 옆으로 나가 똑같은 춤을 추며 열광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몇몇이 중력을 거스른 듯 몸을 앞으로 비스듬히 세우는 동작을 하다 바닥으로 차례로 넘어졌다. 클럽에 있던 모든 아이들은 이번에도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에 휩쓸린 나는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마치 같은 비행기를 타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 어딘가 우리들만의 세계로 떠나온 것 같았다. 이래서 모이는 건가. 이런 기분을 자유라고 표현하는 건가. 탈선과 자유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나 역시 어딘가에 있을 자유를 위해 한 번쯤은 뭔가에 미친 듯 빠져 보고 싶기도 했다. 비록 지구 어딘가로 다시 추락하게 될지라도.

소라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야 한우빈, 너 오늘 좀 오버하는 거 알지? 촌스럽게 왜 이러니?”

소라가 새침하게 말했고 재림이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떨결에 클럽 안을 둘러보았다. 용주와 소라의 얘기를 듣고 난 뒤여서 그런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 보였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 모양을 삐죽 내밀어 소라가 약간은 도발적으로 물었다.

“너 태어나서 술도 한 번 못 마셔봤지?”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해.”

“왜 중요해?”

“어른들의 의지를 거부하는 차원에서.”

그러고선 자신이 마시던 잔에 맥주를 채운 뒤 마셔봐, 하며 내게 내밀었다.

나는 기죽는 게 싫어 잔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안이 시릴 정도로 맥주는 차갑고 썼으며 목이 따끔거렸다. 한 잔을 모두 비운 뒤 잔을 내려놓자 친구들이 박수를 치며 ‘비따비!’ 환호성을 질렀다. 클럽 안 다른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비따비’를 외쳤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런 게 있어, 용주가 가볍게 넘겼고,

여기 클럽 이름이잖아, 재림이 소리를 질렀고,

정대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바보처럼 히죽거렸고,

소라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비따비!’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여기선 저 단어로 모두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어쨌든 내 딴엔 술 한 잔으로 금기를 깬 건 분명했고, 탈선인지 자유인지 모를 어떤 풀어진 기분에 빠진 것도 분명했고, 이런 기분이 싫지 않고 서서히 분위기에 빨려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용주가 일어나 탁자를 벗어나며 소리쳤다.

“자자 그만 떠들고 무대 올라갈 준비나 단단히 해라, 꼬맹아.”

용주는 테이블 사이를 지나 무대 쪽 디제이 박스로 갔다. 왜 저러냐고 묻자, 쟤 가끔 아르바이트로 여기서 연주하잖아, 못 들었어? 재림이 대답했다. 그러곤 키보드 조율이 됐는지 확인하러 간다며 재림과 정대는 무대 쪽으로 나갔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쿵쿵 울렸다. 소라와 단둘이 남아서인지 처음 마신 술기운 탓인지,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고 생각해서 긴장한 탓인지. 나는 소라의 눈을 마주 보는 게 두려웠다. 소라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 앉았다.

“돈 받고 하는 게 아니니까 아르바이트는 아냐. 쟨 어디든지 연주할 무대가 필요한 거야. 여긴 그러기 딱 좋은 곳이거든. 우리 말고 다른 팀들도 돌아가며 연주하는 곳이야. 드물지만 가끔 팀끼리 배틀도 하고 재밌는 곳이야. 우리가 유일하게 쉼 쉴 수 있는 곳!”

그랬구나. 용주는 학교와 교회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구나. 그동안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하면서도 나는 용주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라의 얘기를 들었다. 씬 리지의 ‘Still In love With You’가 흘러나왔고, 무대에선 용주와 재림과 정대가 각각 악기를 튜닝하고 있었다. 씬 리지의 목소리가 슬프고 감미롭게 공간을 감쌌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우리들 가슴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여기 사장님이 우리나라 전설의 기타리스트라는 소문이 있는데,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쨌든 이런 공간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한텐 이미 영웅 같은 존재야.”

나는 넋이 나간 듯 소라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소라를 쳐다보자 소라는 어깨를 툭 치며 잔을 들어 건배를 하자고 했다. 나는 체면에라도 걸린 듯 소라가 시키는 대로 술을 마셨다. 소라는 한참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기타 쪽으로 몸을 돌렸고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 역시 기타를 붙잡느라 몸을 돌렸다. 소라와 내 얼굴이 닿았는데 공교롭게도 소라의 입술이 내 왼쪽 뺨에 닿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온몸이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촉감이 여운으로 남아 온몸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소라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야 한우빈, 너 오늘 학교에서 멋지더라. 그 곡 여기서 다시 연주해줄 수 있어?”

“여기서? 그 그러지 뭐.”

소라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술기운이 부끄러움을 없애고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라는 웃으며 왼쪽 눈을 찡긋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긴장감을 내려놓고 웃고 말았다. 마치 소라가 천상에서 막 내려온 천사 루시퍼 같았다. 불쾌하고 불안했던 감정들이 비 갠 아침처럼 맑게 걷혀버렸다. 용주가 우리에게 무대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학교 무대에서도 종종 연주를 해왔던 터라 별 거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막상 무대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 떨렸다. 소라가 기타를 끌어당겨 내 품에 안겨주었다. 소라가 나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작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소라를 따라 무대로 나갔다.

어디서 비롯된 자신감인지. 나는 갑자기 연주가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곳에 모인 애들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치기와 소라에게 내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뒤섞였을지도. 그게 아니면 마법의 순간처럼 다가온 소라와의 입술의 감촉 때문일지도. 그도 아니면 처음으로 마신 술의 힘이었을지도. 어쨌든 그날의 연주는 이후 단 하루도 잊지 못할 최초의, 또는 최후의 기억으로 남았다. 아무리 잘한다 해도 풋내기 연주 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폭발적 반응을 보이던 클럽 안 아이들. 내 인생 단 한 번의 주인공 역할. 가장 빛나던 그 한 번의 기억으로 여태 버텨온 건지도 몰랐다.

무대에서 어떻게 연주를 했는지 몽롱한 상태여서 정신이 혼미했다. 쏟아지는 조명이 나와 친구들을 오로라처럼 감쌌다. 무대는 너무 협소해서 네 명이 함께 공연하기엔 다소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연주를 위한 공간이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다행히 기타와 키보드와 앰프가 구비되어 있었다. 음악 하는 친구들을 위한 클럽 주인의 배려라고 했다. 무대에 두 개의 동그란 원의 조명이 비추고 있었고 소라와 나는 각각 조명 안으로 들어갔다. 용주와 재림 쪽에는 스포트라이트가 없었다. 조명 안에 들어서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우리가 발견한 작은 행성에 착륙한 것처럼 울컥 감동이 밀려들었다. 무대는 온전히 우리가 만든 세계였고,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본 무대 아래의 풍경은 특별했다. 좀 전까지 무대 아래에서 느꼈던 보잘 것 없는 개체로서의 자각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정반대의 존재가 되었다.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건 별 거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 인정해 주는 걸 느끼고, 통하는 사람들과 뭔가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또는 다른 사람에게 위로 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 말하자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하나였다.

용주는 베이스기타를 연주했고 정대는 드럼을, 재림은 키보드를, 소라는 메인 보컬, 나는 메인기타와 함께 보컬을 맡았다. 내 기타에 픽업을 장착해 둔 것은 잘한 일이었다. 클럽 안 아이들은 무대 아래로 모여들어 우리와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동아리에서 합주했던 퀸의 ‘We will rock you’를 연주했다. 무대 아래 아이들은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치거나, 우리가 만들어낸 음악에 맞춰 펄쩍펄쩍 뛰며 한쪽 팔을 들어 공중으로 휘둘렀다. 마치 꿈속처럼 짜릿하고 황홀한 감동이 밀려와 가슴을 벅차게 했다. 아낌없이 호응하고 찬사를 보내는 무대 아래 아이들의 모습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소라는 무대에서 더 빛이 났다. 고른 치아를 활짝 드러내고 진성과 가성을 오르내리는 보이스로 한껏 매력을 뽐냈다. 어쩌다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마치 고백을 주고받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계속>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