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8장 내가 그랬나(2)

 

*

모든 것이 새로웠다. 이곳에 닿기 전까지의 삶이 먼 곳의 일처럼 여겨질 만큼. 감당하기 힘든 증오와 끓어오르던 복수심도 잠시 소강상태를 맞은 것처럼 잠잠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음악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감춰진 죄책감을 부추겼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모르게 기타를 잡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여자의 권유로 어깨와 갈비뼈 통증 치료를 받았다. 근육파열을 방치한 탓에 생각보다 치료가 더뎠다. 나는 말리의 식당 일을 도우며 틈틈이 쉼표에서 첫날 읽다 만 지미 핸드릭스 책을 읽거나 두 사람의 악기 연습을 구경했다. 말리는 그날 이후 기타를 잡지 않는 내게 ‘게으른 천재’ 라며 장난을 쳤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연주하기를 거부하자 천재의 반란, 교만한 천재 등등 문장을 조금씩 뒤틀어 나를 조롱했다. 그러나 불쾌하지 않았다. 웬일인지 그날 이후 나는 기타를 다시 잡는 것이 힘들었다. 여자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 같다가도 이따끔,

이 부분은 일렉기타가 어울리겠죠? 라든가,

여기선 레트로 감성이 필요한데, 손이 부족해서 어쩌나, 등등.

내 반응을 살피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이 가끔 기타를 치긴 했지만 나는 그날처럼 적극적이지 못했다.

말리네 식당 일은 양파와 대파 실파 등을 다듬고 무 껍질을 까는 등 재료 손질을 하고 나면 내가 할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사이 매일 김밥을 먹으러 오는 꼬맹이와 마음을 터놓게 되었는데, 내게 백수아저씨라 놀릴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꼬맹이의 아버지는 말이 없는 건 한결 같았다. 나는 식당 일이 없는 틈을 타 수시로 레트로 가든을 드나들었다. 구보아저씨는 나의 존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도 됐을 텐데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더 이상 구보아저씨의 엉망진창 기타연습도 볼 수 없었다. 모두 내 탓이었다. 나는 되도록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기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척했다. 일부러 여자와 함께 들르기도 하고 김밥이나 간식을 슬쩍 놓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선 언제나 기타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조바심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강물이 흐르는 대로 구름에 달 가듯, 그저 자연의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 많은 것을 비워내니 마음은 편했다. 비운다는 것은 그만큼 채울 공간이 늘어난다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지 못했던 음악에 대한 욕망이, 오래전 꾸었던 루시퍼의 환상에 대한 욕망이 다시 스멀스멀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팔아 당분간 지낼 방을 얻을까 생각하며 중고매매 사이트에 차를 올리고 사이트를 기웃거렸다. 사이트에 차를 올린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 비서 최 실장이 나타났다. 마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듯 갑작스러웠다. 회사에서 뛰쳐나온 지 20여일 만이었다. 마침 말리는 재료 구입을 위해 시장에 가고 없었다.

“그만 들어가죠. 자꾸 늦어질수록 그만큼 힘들어질 텐데요. 벌여놓은 일은 회장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해결요? 하하 당연히 그러셨겠죠. 그 정도도 못 막으면 신이 아니죠.”

“이번엔 고충이 심하셨습니다. 일단은 잠잠해졌으니 한 팀장님이 마무리는 하는 게 모양이 좋지 않겠어요.”

“다 해결 했다면서 뭘 마무리 해요? 아니 근데 협박이야 뭐야? 이번엔 웬일로 조용히 내버려 두나 했더니.”

“회장님은 제가 여기 온 거 모르십니다. 어차피 차를 회수해가면 보고는 해야겠지만요.”

“아아 그러니까 차를 회수하러 오신 거네? 그러니까 나한테 한 푼도 줄 수 없다 그거네. 뭐 맘대로 하라 그러세요. 그런데요 자료가 담긴 유에스비는 필요 없으신가 보죠? 진짜 목적은 그거 아닌가?”

“현명하게 행동하시죠. 회장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요.”

“회사를 위해서요? 크하하하 네네 최 실장님께 애사심을 배워야 하는데, 전 그게 잘 안 되는데 어쩌죠.”

“결국 한 팀장이 끌고 갈 회사인데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하면 안 되죠.”

“최 실장님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하 그럼 차는 왜 뺏어가죠?”

“한 팀장 맘대로 처분하는 건 불가능한 거 잘 알 텐데요.”

나는 최 실장 면상을 치고 싶은 걸 참느라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차를 회수해가다니, 한 방 먹은 셈이다. 매물이 나온 순간 최 실장 레이더에 걸려들었겠지. 최 실장은 대기 중인 부하를 불러 반강제로 내게 받아낸 차키를 넘겨주었다. 몇 년 동안 함께 했던 충직한 동료를 잃은 것 같았다. 잠시나마 잊고 지냈던 증오와 분노가 새롭게 들끓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다가오던 세상이 다시 검게 변했고 모든 것이 억울했다. 나는 다시 불완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구보아저씨의 기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당신이 손 대표에게 했던 루시퍼에 대한 모호한 말들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었다. 구보아저씨 기타가 루시퍼가 맞다면 비밀의 단서는 오히려 쉽게 풀리지 않을까.

 

다음 날 우리는 각자 바쁜 일정을 보낸 뒤 식당 브레이크 타임에 모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최 실장이 다녀간 뒤 나는 종일 예민한 상태였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여자와 말리는 녹차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차를 빼앗아 가다니 이미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왜 나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는 걸까. 뭔가 꿍꿍이 속이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구보아저씨와 함께 밴드를 결성해서 4인조로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우 브라보! 누님, 굿 아이디어. 구보아저씨가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할 어떤 계기도 만들어 주고 우리도 우리끼리 음악이 아니라 본격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요. 좋다 좋아.”

여자와 말리는 밴드를 결성하자는 의견으로 활기를 띠었다. 밴드를 결성하자니, 그것도 공연을 목표로 기획을 해보자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황당한 제안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수다 같은 대화를 건성으로 들으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었다. 반작용처럼 머릿속에선 두 사람의 대화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운지도 제대로 안 되는 구보아저씨랑 기타에 의욕이 일지 않는 나, 음악에 미쳐 있지만 한쪽 다리를 저는, 의욕만 가득한 저 철부지와? 무슨 외인부대도 아니고. 참 밑도 끝도 없는 발상이네.’

나는 당신에 대한 화를 가라앉히느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나도 모르게 으하핫, 웃었다. 두 사람은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요? 우리가 뭐 실수했어요?”

“구보아저씨가 기타를 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가능하지만 밴드라니, 두 분 너무 나가시네.”

“불가능할 거 같아요?”

여자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어차피 막다른 길에 내몰린 내 입장에선 루시퍼의 정체를 알아내야 할 목표가 생겼고, 또 다른 목표까지 생기면 좋은 일 아닌가. 말리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밴드가 뭐 별 건가. 음악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면 밴드지.”

“에에이 좋아하는 거랑 직접 연주하는 거랑은 다르지. 악기가 그렇게 빨리 익힐 수 있는 도구도 아니고, 뭘 밴드씩이나, 것도 공연요? 으하하하.”

나는 다시 루시퍼 생각에 빠졌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밴드 결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내게 의견을 물었지만 나는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밴드를 결성하면 어떻고 그냥 이대로 지내면 어떤가. 내겐 그런 일들이 그저 지나치는 과정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이미 구체적 단계로까지 이야기가 진행돼 있었다. 밴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고 동호회를 만들자고 했다. SNS 역시 적극 이용은 물론이고 유튜브 채널에도 꾸준히 업로드 시키자고 했다. 그러려면 일주일에 두세 번 공연은 필수라고 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다 보니 자꾸 웃음이 터졌다. 눈빛을 반짝이며 게임 얘기에 빠져 있는 아이들 같았다.

두 사람은 밴드의 온라인 공식 카페 이름부터 정하자며 고민했다. 나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구보아저씨를 설득하여 루시퍼 기타를 다시 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여자는 온라인 카페 이름을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카페 이름과 똑같이 ‘비따비’로 하자고 했다. 나는 젓가락으로 멸치를 집으려다 놓치고 말았다.

“뭐라고요?”

내 목소리가 컸는지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여자에게 금방 뭐라고 한 건지 물었다. 여자가 나와 말리를 향해 손바닥을 위로 펼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마치 연설이라도 하는 제스처였다.

 

“네 삶을 살아라!”

 

나와 말리는 동시에 어리둥절한 얼굴로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런 뜻이라구요.”

말리는 여자와 똑같은 제스처로 ‘네 삶을 살아라? 라고 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17년 만에 어떤 비밀을 푼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 물었다.

“그걸 어,어떻게 아세요?”

“뭘요?”

“비따비……!”

“아아, 그거 영화에 나온 대산데?”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사라며 좀 정중한 표현으론 ‘당신의 인생을 만들어라’ 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그 옛날 ‘비따비 클럽’에 대한 얘기를 기대했다 실망스럽게 웃었다. 우연이 쉼 없이 겹칠 리가 없었다.

“아 그게 그런 뜻이었다니……”

그때의 클럽 이름 뜻을 처음부터 몰랐던 건지 알았지만 잊어버린 건지, 지금 기억에는 그저 ‘비따비!’라고 외쳤던 아이들의 충동적 이미지만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기억이란 원한다 해서 남아 있고 원치 않는다 해서 사라져 버리는, 그런 간단한 시스템은 아니니까. 당시 클럽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가 되어 외치던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인생은 의외의 순간에 사라진 퍼즐을 찾기도 하는 걸까.

뜻은 좋은데 ‘비따비’는 따개비가 연상된다며 말리가 장난을 쳤고, 나는 그러면 차라리 원래 뜻인 ‘네 인생을 살아라’ 또는 ‘네 삶을 살아라’가 낫지 않겠냐고 의견을 말했다. 말리가 장난치냐며 핀잔을 주었고 여자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긍정적인 거 아세요?”

“음 내가 그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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