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8장 내가 그랬나

 

구보아저씨는 젊은 시절 음악계에선 꽤 알려진 유명 기타리스트였다고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갑자기 사라진 구보아저씨는 그 이후 음악계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했다. 구보아저씨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했지만 아저씨는 금세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오랜 세월 떠돌면서 건강을 많이 잃은 건지 처음 만났을 땐 팔을 거의 쓰지 못했다고 했다. 1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아서 이제는 그나마 팔의 신경이 거의 돌아온 것 같다고 했다.

“혹시 아까 그 기타에 대해 아는 거 있으세요?”

“아 그 기타, 볼수록 매력 있죠? 저도 푹 빠졌어요. 가게 구석에 세워놓기만 하고 사용은 안 한다고 해서 새 기타랑 교환하자 했어요. 그런데 단호히 거부하시더라구요.”

그제야 여자는 아저씨가 음악을 잊지 않고 여전히 그리워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여자는 아저씨가 음악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설득 중이라고 했는데, 오늘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던 거군요.”

“뭐가요?”

“운지도 잘 안 되는데 어려운 코드를 계속 연습하셔서 왜 그럴까, 이상했거든요.”

“구보아저씨가 기타를 친다구요?”

“치는 정도가 아니라 종일 쳐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직접 들으면 두 분은 까무라치실 걸요. 이건 뭐 기타를 치는 게 아니라 그냥 학대 수준이지만요.”

여자와 말리가 동시에 진짜요? 하며 의외라는 듯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나는 구보아저씨의 가족은 없냐고 물었고 여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혹시 그 기타에 대해 어떤 얘기 못 들으셨어요?”

“우빈 씨도 그 기타가 꽤 마음에 드나 봐요. 관심 끊는 게 좋을 걸요.”

“내가 알던 기타랑 흡사해서요. 아니 똑같다고 해야 하나……”

“오 역시, 전에 음악 활동 했던 거 맞죠? 내 예상이 딱 맞았네.”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질문을 동시에 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몇 마디만 나눠도 느낌이 딱 통한다고 말리가 덧붙였다.

“그 기타 디자인이 특이해서 같은 종류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우빈 씨 아는 기타랑 똑같다니 궁금한데요.”

“그 기타, 어딘지 모르게 엄청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좀 낡은 거 같지만 그게 오히려 더 멋스럽게 보이지 않아요? 구보아저씨처럼 어딘가 모르게 기이한 느낌도 풍기고 말이죠.”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말했고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들은 다시 내일 일정에 대해 얘기했다. 여자는 어떤 얘기를 하든 에너지가 샘솟는 것처럼 활기차 보였다.

 

여자는 이 동네에서 중요한 존재인 것 같았다. 주민센터와 연계하여 불우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주민들에게 봉사활동 참여를 주도하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음악 서적에서의 공연기획 역시 사적인 기획이 아닌 봉사와 연계된 활동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 중 커뮤니티 센터 얘기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아마도 그곳은 이 동네에서 중요한 공간인 것 같았다.

“우빈 씨, 모텔로 들어가실 건가요?”

여자가 물었다. 나는 모텔로 돌아갈 형편도 아니었지만 다시 그곳으로 가긴 싫었다. 당장은 식사부터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여자를 따라왔지만, 막상 여자의 얘기를 듣고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버벅거렸다. 여자는 맞잡은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한참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당장 계실 곳부터 알아봐 드릴까요?”

“예? 아 아닙니다. 뭐 그럴 것까진 없는데……”

“어제 쉼표에서 말했죠? 어쩌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겐 보인다구요. 우빈 씨가 당장 모텔로 돌아갈 마음이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란 거 알아요. 말리는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여서 편하게 생각하셔도 돼요.”

“어 왜요? 갈 데가 없으신가? 그럼 지금 당장 저랑 동거하실까요? 하하.”

“괜찮겠어?”

“에이 그럼요. 일 년 전 나를 보는 것 같은데요? 아 그때 누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도 하기 싫네요. 저도 누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야죠.”

“그 누군가가 접니까?”

“하하 뭐 그렇게 되는 건가요?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나 행동이 순수하고 거침없어서인지 다른 곳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이곳에서는 가능해 보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모텔로 다시 돌아가지 않더라도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끌고 나와야 했다. 나는 모텔에 가서 정리하고 오겠다며 식당을 빠져나왔다. 말리는 아무 부담 갖지 말고 꼭 오라고 내 등에 대고 몇 번이나 소리쳤다. 추운 날 따뜻한 햇살을 만난 것처럼 관계란 뜻밖에 이루어지는 인연 같은 게 아닐까. 따뜻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

모텔주인은 내가 들고 왔던 서류 가방과 함께 자잘한 물건들을 넣은 쇼핑백을 건네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요. 좋게 끝났으니 된 거지만,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인생은 살지 마쇼.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도 힘든 세상 아닙니까.”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주차장으로 나왔다. 하긴 모텔에서 내가 죽었다면 나는 주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셈이 되겠지.

“갈 데 없으면 다시 오세요. 하루 이틀 정도는 방을 그냥 드릴 수도 있어요. 죽지만 않는다면요.”

어느새 늦은 오후로 접어들고 있었다. 차를 끌고 식당 쪽으로 갔다. 식당 문에는 ‘브레이크 타임’ 팻말이 걸려 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려볼까 하다 왠지 뻔뻔한 느낌이 들어 그냥 돌아서려는데 팻말 아래 메모가 보였다.

 

‘쉼표로!’

 

나는 피식 웃으며 메모지를 뜯어 주머니에 넣었다. 차를 식당 옆 골목에 세워두고 천천히 쉼표로 걸음을 옮겼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머리 아프게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물 흐르듯 내버려 두고 싶다. 다만 구보아저씨가 소유한 기타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만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쉼표에 도착했을 때, 서점 옆 조그만 주차장과 이어진 또 다른 공간이 눈에 띄었다. 여자와 말리의 모습이 그쪽 유리문 안에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말리의 키보드 연주는 여자의 목소리를 더욱 풍부하게 받쳐주었다. 문득 발가락에서 돋아난 싹이 몸 전체로 피어오르듯 온몸이 근질거렸다. 어느 순간 가슴 안에서 물컹거리는 덩어리가 용솟음치며 울컥울컥 쏟아져 나올 것처럼 진동했다. 나는 물컹거리는 덩어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들에게 섞여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간절함이 만들어 낸 덩어리.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입에서 거친 호흡이 터져 나왔다. 도망치듯 쉼표 입구로 갔다. 두 사람에게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버티며 벽에 기대어 중심을 잡았다. 내 안에 아직 이토록 끓어오르는 용암이 숨겨져 있었다니, 이건 반칙이다. 내 삶을 틀어쥐고 다시 강하게 뒤흔드는 이 정체는 분명 반칙인 거다. 나는 다시 공포와도 같은 삶의 물살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벽을 붙잡고 헉헉거렸다.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둔 채 이방인들 사이에서 지루하도록 버텼던 고통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여전히 쉼표 뒤쪽 공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리와 눈이 마주쳤다. 말리가 손짓을 했지만 나는 머뭇거렸다. 말리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떨결에 도망치듯 쉼표로 향했지만 금세 말리가 뛰어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왜 안 오시나 했어.”

말리에게 이끌려 쉼표 뒤쪽 공간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가까운 친구를 대하듯 스스럼없이 웃었다. 음악 작업실로 쓰는 공간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엉거주춤 서 있는 내게 말리는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그러곤 여자와 말리는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아마도 편곡에 관한 얘기 같았다. 말리가 싸비 부분을 포크적 요소를 가미해 좀 더 감미롭고 낭만적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자, 여자는 차라리 다이내믹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여자가 불쑥 내게 물었다.

“우빈 씨가 어떤 쪽이 나은지 들어보고 말해줄래요?”

두 사람은 곧바로 기타를 치고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어쿠스틱 연주를 돋보이게 하여 보컬 위주의 포크적 느낌을 내는 노래였다. 두 사람은 다른 버전을 들어보라며 다시 연주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키보드를 살려 연주가 보컬을 이끌고 가는 형식으로 웅장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분위기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한쪽에 세워진 기타를 가져다 좀 전에 들었던 음을 즉흥으로 연주를 했다. 여자에게 노래를 부르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한 뒤 말리에게도 신호를 보냈다. 처음 들은 곡이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감각이 이끄는 대로 연주했다. 여자는 노래를 부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말리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고개를 세게 저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짧은 연주였지만 어떻게 끝을 냈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했다. 여자와 말리가 박수를 치며 브라보! 하고 외쳤다. 나는 얼떨떨했지만 흥분이 식지 않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와 형님, 완전 멋지십니다. 천재 아녜요? 마치 이 곡을 아는 사람 같잖아요? 어떻게 그러지?”

말리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두 가지를 합치다니,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렇게 하니 훨씬 곡이 풍부해지고 우아해진 느낌이에요.”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깨와 갈비뼈의 통증을 잊을 만큼 나는 흥분해 있었다. 물컹한 덩어리의 정체가 속에서 쑥 빠져나간 것처럼 후련했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감동의 파문이 거센 물결처럼 서서히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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