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7장 오해(3)

 

*

당시 루시퍼를 훔친 뒤 우리는 기타 주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누구도 내색할 수 없었다. 주말 동안 멤버들은 동아리실에 모여 페스티벌 참석에서 누가 루시퍼를 연주할지에 대해 의논했다. 당연히 메인 기타 포지션인 용주가 연주를 해야 맞지만 용주는 일렉기타와 베이스를 연습해왔다. 어쿠스틱은 내 포지션이었기에 다른 멤버들은 용주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나는 루시퍼를 연주하는 것이 왠지 두려웠다. 그럼에도 루시퍼는 꼭 내가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라가 의견을 말했다.

“둘이서 한 곡씩 번갈아 연주하는 건 어때?”

“오디션은 한 곡 뿐인데?”

“왜 한 번이야? 예선이 여러 번 있고 마지막 본선이 있잖아. 예선과 본선에서 각각 연주하면 되잖아. 포지션을 바꾸면 심사위원들 눈에는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거 같은데?”

결국 소라 말대로 내가 예선에서 용주가 본선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경연에 나갈 곡들을 선정해 클럽에서 미리 공연을 하면서 반응을 알아보기로 했다. 연습 때에도 루시퍼를 사용하느냐의 문제로 또 한 번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루시퍼는 동아리실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들킬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우리는 루시퍼를 장식해서 모양을 바꾸기로 했다.

드디어 루시퍼를 연주할 기회가 왔다. 우리는 신성한 물건을 대하듯 긴장했다. 용주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는 동안 모두 숨을 죽였다. 나는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루시퍼는 달빛에 반사되어 오묘한 빛을 뿜어내던 신비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눈이 부셨다. 소라는 언제 준비했는지 ‘Lucifer, 27club’ 라고 이니셜을 새긴 네임카드를 꺼냈다. 우리 것이란 걸 확실히 해두자는 의미였다. 떨리는 손으로 나는 소라에게 건네받은 네임카드 뒤에 본드를 바르고 가장 큰 나뭇잎 모양으로 파인 사운드 홀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 네임카드를 붙였다. 재림과 소라가 준비한 나뭇잎 스티커로 바디를 장식하고 네크와 헤드머신 역시 갖가지 스티커로 장식을 했다. 용주가 마지막으로 원래의 픽카드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새로운 픽가드를 붙였다. 외관이 오히려 조잡스럽게 바뀌었지만 루시퍼의 매혹적인 자태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제야 훔쳤다는 죄책감을 어느 정도 잊고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용주가 내게 먼저 한 곡 치라고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율을 한 뒤 레드 제플린의 ‘Stairy To Haeven’을 쳤다. 처음엔 손가락이 떨려 운지가 잘 되지 않았지만 전주를 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연주에 빠졌다. 노랫말처럼 우리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내 연주에 맞춰 모두 노래를 부르며 화음을 맞췄다. 수많은 별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우리는 희열에 들떴다. 현실은 저 멀리 사라진 것 같았다. 바톤을 이어받듯 용주가 루시퍼를 품에 안고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불렀다. 모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마치 천국의 문 앞에 와 있는 것처럼 몽롱한 분위기에 심취했다.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우리가 천국의 문을 노크하는 것에 빠져 있는 동안, 동아리실로 아버지의 경호원 두 명과 경찰이 들어왔다. 기타를 훔쳤던 현장에서 동아리 마크가 찍힌 손톱깎이가 발견됐다고 했다. 왜 아버지의 경호원들이 경찰과 함께 온 건지 당시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경찰은 루시퍼 주인이 죽었다고 했다.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서로 가지 않고 왜 아버지 회사로 우리를 데려간 건지 그땐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

우리는 살인을 저지른 죄인들이 되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소라와 정대는 훌쩍거렸고 재림은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들어가자마자 아버지의 발길에 차였다. 친구들은 놀라 비명을 질렀다. 동아리 활동에 외부공연까지 하고 다닌다는 것을 얼마 전 아버지가 눈치챘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몇 배로 심해진 강압적 감시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아버지를 속인 채 꾸준히 동아리실을 드나들었다. 루시퍼의 유혹은 그만큼 강렬했다. 대신 밴드 연습의 합주에서 자주 빠졌다. 아버지는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 기절 직전까지 두들겨 패며 분노를 표출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아버지는 아직 학생들이니 미래를 위해 사건을 절도 정도로 축소해주겠다고 했다. 살인이라는 거대한 죄악 앞에서 우리는 생각할 능력과 판단력이 제로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순간 우리를 구해주는 구원자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버지는 우리를 구원해주는 대신 조건을 내세웠다.

 

1. 영원히 음악 활동은 하지 않을 것.

2. 기타와 모든 악기는 쳐다보지도 말 것.

3. 수능 기간 동안 공부만 집중하고, SKY 중 한 곳에 필히 합격할 것.

4. 친구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을 것.

 

이후 나는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 갇혀 공부에만 전념했다. 시험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나갔지만 용주와 정대를 마주쳐도 서로 모른 척했다. 아버지가 걸었던 조건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각자의 마음속에 담은 무거운 죄책감을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려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몇 개월 뒤 수능을 보았지만 터무니 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쫓기듯 나는 강제로 미국으로 보내졌다.

 

*

여자는 사람을 다루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꽤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보였다. 여자는 모텔 주인까지 불러들여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노인은 안심하는 표정이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모텔 주인은 깨진 거울의 화장대 값을 돌려받는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마치 연극무대 위에 선 배우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연기한 뒤 서둘러 막을 끝낸 것 같았다. 수긍이 잘 안 가는 장면이었지만, 여자는 노련하게 배우들을 조정하는 감독처럼 보였다.

경찰들이 돌아간 뒤 여자는 다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모텔 주인은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숙박 계속할 거요?”

내가 머뭇거리자 여자가 눈치 빠르게 끼어들었다.

“식사부터 하는 게 좋겠어요. 일단 다 같이 가시죠.”

모텔주인은 잠깐 드러난 햇빛 탓인지 인상을 찌푸렸고 자기는 들어가 봐야 한다며 길모퉁이로 사라졌다. 노인 역시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가게 안으로 몸을 돌렸다. 구부정한 어깨가 더욱 둥글게 말려 있었다. 여자가 노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건 여자 앞에서 노인의 표정은 어린애처럼 순해졌지만 고집은 여전했다. 삽시간에 태풍이 할퀴고 간 것처럼 나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한쪽 벽에 기대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자는 노인을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노인은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양 어깨를 으쓱 올렸다.

여자와 함께 간 곳은 놀랍게도 어제 갔던 식당이었다. 식당남자는 벽 한 면을 차지한 브로마이드 속 밥 말리와 여전히 비슷했다. 어제 밥을 먹으며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눠서인지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모텔 사고 처리비용을 여자가 내주어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기분이 개운하진 않았다. 식당 남자와 여자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자는 내게 식당 주인을 소개했다. 식당 남자 역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오 또 보네요? 누님과 아는 사이였어요?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늘 내가 큰 실수를 해서 식사 대접하려고.”

“제가 오해한 것도 있죠.”

여자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여자와 식당 남자는 서로 비슷한 에너지를 풍겼다. 식당 남자는 내게 ‘말리’라 불러달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말리요?”

그는 한쪽 벽면의 벽지로 채운 밥 말리를 가리키며, 광팬이라서 말이죠, 라고 했다. 우리는 동시에 웃고 말았다. 여자는 말리에게 내 이름을 대신 말했다. 그런 뒤 자신은 장해주라고 소개했다. 문득 밥 딜런의 옛 연인이었던 ‘존 바에즈’가 떠올랐다. 긴 생머리와 꾸미지 않은 듯 수수한 외모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가 비슷했다. 소라 역시 그랬다.

“아까 그 할아버지 성함은 왜 구보씨예요?”

“구보아저씨요? 아직 할아버지까지는 아닌데… 성함은 아니고 별칭이에요.”

“왜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말리가 답했고 여자가 이어서 말했다.

“그분 처음 만날 때 종일 걷고 또 걷고 매일 동네를 쉬지 않고 걸어 다녔는데,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어요. 아아 참, 아저씨 별칭은 제가 붙여드린 거예요. 왠지 소설 속 구보 씨 느낌이 나서요.”

대체 뭐가 소설 속 구보 씨 느낌이라는 건지, 당연히 주관적 느낌 탓이겠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심술쟁이 스크루지 영감이라면 또 모를까. 그 사이 식당 남자 말리는 반찬을 가져다 놓았고 나는 큼지막한 깍두기를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다.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서 소일거리 삼아 그 가게에 계셨어요. 그런데 원래 주인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돼서 아저씨가 가게를 떠맡게 되었죠. 오히려 구보아저씨에겐 좋은 계기가 되었죠. 지금은 일하시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상태가 좋아지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군요, 라고 중얼거렸다. 식당 남자 말리는 메뉴와 상관없이 편하고 익숙한 밥상을 차려왔다. 국수는 부드럽고 국물이 진해 속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음식을 먹는 동안 말리는 자리에 함께 앉았다. 여자는 말리에게 좀 전에 일어난 일들을 얘기했고, 말리는 재밌다는 듯 과장된 리액션을 했다. 두 사람의 화제는 지역 얘기로 돌아갔다. 나는 김밥 속 재료를 들여다보았다. 달걀프라이와 시금치와 햄은 일반 김밥 재료와 똑같았지만 단무지 대신 김치를 넣어 개운한 맛이 났다. 이 동네에 와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속한 세계의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마치 딴 세계 사람들 같았다. 신기한 건 처음 만난 사람들도 모두 오래 알아 온 사람들처럼 금방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하물며 구보아저씨나 모텔 사내조차도 원래 알던 사람들처럼 느껴지다니. 포만감이 불러온 너그러움 탓인가.

여자와 말리는 한참 동안 서로의 근황을 전하느라 화제가 끊이질 않았다. 두 사람의 얘기는 돌고 돌아 음악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여자는 쉼표를 운영하고 커뮤니티라는 곳에서 기타 강습도 하고 지역의 많은 일도 맡아 하는 눈치였다. 말리가 키보드를 친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들이 음악 얘기를 하자 나는 관심이 갔지만 모른 척 찌개의 국물만 떠먹었다. 얘기 도중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내게 말을 시켰지만 나는 단답형으로 대화를 밀어냈다. 지금은 조용히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삶의 조각들이 그들의 대화 속에서 진주처럼 빛을 냈다.

자칭 ‘말리’라 소개한 남자는 여자에게 계속 음악과 관련된 질문을 했고 여자는 이런저런 소식을 전했다. 구보아저씨의 가게 얘기로 화제가 넘어갈 땐 긴장이 되어 귀가 번쩍 뜨였다. 그 가게의 정체는 레트로 물건을 취급하는 전문 하우스라고 고급스럽게 포장하는 부분에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원래 주인이 운영할 때는 음악 전문서점과 연계해서 낡은 서적이나 희귀음반을 수집해서 되파는 곳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구보아저씨가 가게를 맡은 뒤 시간이 멈춘 사물들을 수집해 점점 레트로 하우스가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리드미컬한 음악처럼 기분 좋게 들렸다.

“그 아저씨는 어떤 분이셨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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