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오해(2)

 

*

가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게로 다시 들어갈까 하다 바깥을 둘러보았다. 마당이 있는 쪽 담을 끼고 옆으로 돌았다. 길게 이어진 골목은 주택가였지만 낡은 집이 대부분이었다. 드문드문 허물어진 폐가도 여러 채 보였다. 재개발 구역이거나 버려진 동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4차선 도로 건너편과는 전혀 다른 얼굴처럼 분위기부터 달랐다. 맞은편 동네는 신축 건물과 함께 새로 생긴 듯한 상점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이쪽과 저쪽이 찻길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였다. 마치 노인과 젊은이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갈증 때문에 입과 목이 바짝바짝 타올랐다. 찻길 건너에 있는 편의점에서 알로에 두 병을 샀다. 길을 건너기 위해 차도 옆에 서서 레트로 가든을 쳐다보았다. 막 찻길을 건너려는데 언제 나타난 건지 오토바이 한 대가 클랙슨을 요란하게 울리며 아슬아슬하게 내 몸을 스쳐갔다. 나는 깜짝 놀라 돌처럼 굳은 채 서 있었다. 정오를 향한 해가 쏟아내는 맑고 차가운 빛이 요란한 클랙슨 소리에 놀란 듯 구름 속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한 여자가 기타를 들고 막 레트로 가든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어, 나는 소리치며 찻길을 건넜다. 맞은편 찻길에서 택시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길을 다 건너는 동안 여자는 순식간에 찻길을 건너 맞은편으로 뛰어갔다. 나는 다시 길을 건너려 했지만 어느새 택시가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타는 게 아니라고 손을 휘저었지만 기사는 유리문을 내리고, 뭐라고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안 타요. 안 타!”

“안 타면 그만이지 소리는 왜 지르고 그러쇼?”

여자는 순식간에 건물 모퉁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여자를 쫓기 위해 택시 뒤쪽으로 뛰었다. 음악 서점 쉼표에서 보았던 여자였다. 그런데 쉼표 쪽이 아닌 왜 다른 쪽으로 가는 걸까. 그 여자가 왜? 허둥지둥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기타를 훔쳐 달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라진 여자 뒤를 쫓아야 할지 레트로 가든으로 들어가 먼저 상황을 알아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노인의 집 공터에선 마치 내 머릿속처럼 수십 개의 바람개비가 숨 가쁘게 팔랑팔랑 돌았다. 빠른 속도 때문에 각각의 색이 모두 사라지고, 원심으로 도는 운동력만 남아 바람개비의 형태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침 안쪽에서 나오던 노인과 마주쳤다.

“아저씨 기타, 그 기타 말예요 좀 전에, 바, 방금……”

“기타 어쨌어. 네놈이 가져갔지?”

“예? 내가 왜 기타를 가져가요? 그리고 놈이라뇨.”

“그 기타 안 판다고 했지. 이 나쁜 놈!”

“어휴, 이거 놔요. 숨 막혀요.”

노인은 멱살을 더 세게 잡아당겼다. 노인의 움켜쥔 손등이 목을 눌러 숨이 막혔다. 흥분한 노인의 입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일그러뜨린 미간에 여러 개의 주름이 움푹 패였다. 흥분한 탓인지 눈동자의 동공은 크게 확장돼 있었다.

“너 뭔데 자꾸 내 앞에 나타나서 귀찮게 구는 거냐 어? 그 기타가 어떤 기타인데, 그걸 훔쳐 가다니, 당장 가져오지 못해!”

나는 컥컥거리며 내가 아니라 그 여자, 쉼표 서점 여자가 가져갔다고 간신히 말했다. 노인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인의 손아귀를 잡아당겼지만 노인은 그럴수록 멱살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노인의 커다란 손은 생각보다 악력이 셌다. 노인이 순식간에 다른 한 손으로 내 얼굴과 머리와 어깨를 마구 때렸다. 나는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노인의 손아귀를 풀어내려고 하자 노인이 내 몸을 밀어뜨렸다. 나는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면서 재빨리 다친 갈비뼈를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다.

몸을 굽히고 숨을 고르는 동안 노인은 안쪽으로 뛰어가 어딘가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당장 와 달라고 했다.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나는 왼쪽 갈비뼈 쪽을 움켜쥔 채 겨우 몸을 일으켜 내가 아니라니까요,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심장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꽉 쥐어짜는 듯 강한 통증이 목소리를 잦아들게 했다. 노인에게 아까 봤던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고 다시 멱살을 잡는 노인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내 기타 어디다 숨겼는지 말해, 어서 말해!”

“컥컥, 이거 놔요. 내가 가져갔으면, 뭣 하러 여길, 또 오겠어요?”

“듣기 싫어, 다 필요 없고 기타 어딨냔 말이다.”

“날 도둑으로 모는 거예요?”

“남의 걸 가져갔으면 도둑놈이지, 이런 순 날강도 같으니라고.”

“그 여자가 갖고 가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 켁, 이거 놔요, 숨 막힌다구요!”

여기저기 쌓아둔 물건들이 노인과 내 발끝에 채여 허물어지면서 쏟아졌다. 나는 더 이상 갈비뼈를 짓이기는 듯한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노인의 팔을 비틀었다. 간신히 노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노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강도야, 사람 살려,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갖고 같다고 몇 번을 말해요! 가서 확인해보면 될 거 아닙니까.”

노인은 내 얘길 무시하며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마치 나는 진짜 강도가 된 것 같았다.

“계십니까?”

누군가 가게 안쪽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살려! 강도야!”

경찰 두 명이 안쪽으로 뛰어 들어왔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봐도 나는 강도이고 노인은 피해자의 꼴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두 명의 경찰이 뛰어와 양쪽에서 내 팔을 붙들고 몸을 벽 쪽으로 몰아붙여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갈비뼈가 움찔하며 극심한 통증이 몰려온 바람에 비명을 지르자 경찰들은 오히려 더 세게 나를 누르며 제압했다. 그러고선 노인에게 다친 곳 없냐고 물었다. 노인은 나를 가리키며 기타를 훔쳐 간 도둑이고 폭력까지 휘두른 강도라고 했다. 나는 통증을 견디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얼굴에 식은땀이 맺혔다.

“훔치다뇨, 아, 아니라니까요. 흐읍, 내가 때린 게 아니라, 아저씨가 멱살을 붙잡는 바람에 허억, 떼, 떼 내려다 혼자, 너 넘어진 거라구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아아, 이 팔 좀 놓으세요. 어깨랑 갈비뼈 나간 거 같다고요.”

“내가 맞았는데 왜 네놈이 엄살이야!”

나는 헌책이 무너질 듯 쌓여 있는 장식장에 몸을 붙인 채 숨을 골랐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나를 붙들고 있던 경찰이 팔을 풀어 주었다.

경찰의 질문에 노인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기타부터 가져오게 하라고 했다. 노인의 억지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걸 왜 나한테 가져오라는 거냐고요.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저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엊그제부터 계속 얼쩡거리는 게 아무래도 수상한 놈이 분명해. 칼로 안 찔러서 그렇지 저놈 강도라고! 저놈은 나를 노리는 게 분명해!”

“하 저 노인네가 진짜! 강도라뇨? 내가 기타를 훔쳤다면 뭣 하러 여길 다시 오냐구요 아 답답하네.”

“저 봐, 저, 저 새끼 저거 도끼눈 뜨고 달려들잖아. 저놈이 날 죽이려고 했다니까.”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한숨만 푸푸 내쉬었다. 경찰 중 한 명이 노인에게 일의 순서가 있으니 일단 진정하라고 했다.

“여긴 왜 들락거리신 거죠?”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경찰이 내게 물었다. 나는 그냥 손님일 뿐이고, 기타를 가져간 사람을 봤다고 말했다.

“거짓말! 저놈은 엊그제부터 들락거리면서 시비를 걸었다고. 기타를 핑계로 내 주변을 얼쩡거리더라고. 그리고 네가 어떻게 손님이야! 첨부터 수상한 놈이었어.”

“내가 뭘 어쨌다고 수상하대? 아놔 진짜, 그렇게 따지면 내가 오히려 피해자라구요. 저 아저씨가 기타를 엉망진창으로 쳐 대는 바람에 죽지도 못하고 이 지경까지 온 거라구요.”

“아아, 이거 이러지들 말고 한 분씩 차분하게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사장님은 저 분이 기타를 훔쳐 갔다는 것이고, 또 그쪽은 기타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서 찾아왔다, 그 말이죠?”

노인과 나는 각자 자신의 얘기를 하느라 흥분했다.

“아아 알겠으니까 진정들 하시고, 두 분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노인과 나는 둘 다 신분증이 없다고 대답했다.

“일에 순서란 게 있잖습니까.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민번호 불러주세요.”

“이봐요! 빨리 주민번호 불러봐요.”

“내가 범죄잡니까? 그 기타만 찾으면 되는 거 아녜요?”

나는 내 거친 말투에 스스로도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접수를 해야 한다니까요. 거 젊은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잠자코 있던 노인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어이, 제정신 맞아? 저놈이 저렇게 나올 거 다 알고 있었다니까. 내가 신고를 안 했으면 저 놈이 날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여.”

노인의 얼굴은 종이를 구긴 것처럼 주름이 가득 몰렸다. 노인의 말에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그 옛날 기타주인의 죽음이 떠올라 주눅이 들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두 분, 지구대로 같이 가시죠.”

경찰들이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시끄러운 잡음 소리를 냈다. 노인은 당장 기타부터 찾아내는 게 순서 아니냐고 화를 냈다.

나는 주눅에서 벗어나려 일부러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릴 때부터 기어들어 간 목소리, 아버지 표현을 빌리자면 겁먹은 쥐새끼마냥 눈치나 보는 비열한 표정은 내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었다. 시선은 불안하게 떨렸고 누구를 막론하고 마주한 대상과 눈을 맞추기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다. 내 정체가 세상에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내가 존재하는 세상 모든 곳에서 나를 강하게 밀어냈다.

노인이 내게 욕을 하며 다시 시비를 걸었다. 그 순간 누군가 가게 안쪽으로 들어왔다. 모두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기타를 들고 있는 여자가 우리를 보고 놀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나는 여자가 들고 있는 기타에 눈이 팔렸다. 노인이 멱살을 잡은 손을 풀었고 두 명의 경찰은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에요?”

노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여자의 손에서 기타를 빼앗듯 가져갔다. 나는 비로소 올가미에서 풀려난 쥐처럼 생기를 되찾았다.

“거 보세요 내 말 맞죠? 와 진짜 억울하네. 나를 도둑놈 강도, 심지어 강도에 살인마 취급까지 하다니 생각할수록 열 받네.”

모든 게 다 저 여자 때문이었다. 여자는 상황을 모두 파악했다는 듯 말했다.

“아 저 땜에…… 아저씨 죄송해요. 아까 가게 왔다가 아저씨가 안 보여서 기다리다 너무 급해서 잠깐 기타를 빌려 간다는 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거예요?”

노인은 못 들은 척 기타를 재빨리 케이스 안에 집어넣었다.

“나한테 먼저 사과하는 게 순서 아닙니까?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어, 여기서 또 뵙네요?”

여자는 경찰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그사이 노인은 기타 케이스의 지퍼를 채웠다. 나는 아쉬운 듯 노인이 들고 있는 기타 케이스에 눈길을 줬다. 케이스는 상표도 없는 싸구려 재질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다른 기타를 루시퍼로 착각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기타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여자와 이야기를 다 끝낸 경찰들은 일단 신고가 들어온 이상 신원조회를 해야 한다며 주민번호를 부르라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방법이 없었다. 주민번호를 불러준 뒤 일 때문에 모텔에 묶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 경찰은 무전기를 통해 조회를 요청했다. 조회를 마친 젊은 경찰이 나이 든 경찰에게 깨끗하다고 말했다. 깨끗하다고? 오래전 친구들과 루시퍼를 훔치며 벌인 사건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의미일까. 당시 아버지는 사건을 축소하여 처리했다고 했다. 살인사건으로 처리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흔적 정도는 남아 있는 게 당연한 건데 이상한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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