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혁 국차장
차종혁 국차장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다.

22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개최해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회사 스스로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 영역을 사전에 구분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을 명확히 해 책임을 묻겠다는 게 이날 발표한 제도개선 방안의 골자다. 앞으로 발생하는 금융사고의 책임을 금융회사의 담당 임원들이 미리 맡아서 지도록 하자는 거다.

좋은 취지다.

그간 일부 금융사의 부실한 경영과 불완전판매로 인해 다수의 일반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전 반복됐던 사례를 볼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미연에 방지하자는 이번 제도개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도 금융회사의 임원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식으로 구체화됐다.

다만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개선방안은 금융사에만 책임을 지우겠다는 내용으로 끝나버렸다. 금융당국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은 없다는 의미인가.

그동안 발생한 금융사고의 책임이 금융회사에만 있었다는 프레임 씌우기로 보인다.

수없이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동안 금융당국은 뭘 하고 있었는지 누가 책임을 졌었는지 묻고 싶다.

이번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발표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금융회사 임원별 책임을 명확히 하기 전에 금융당국의 책임소재를 어떻게 명확히 할 건지 먼저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도 노력하겠다”는 공염불 같은 다짐만 있었다.

금융사를 대상으로 한 마녀사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녀사냥은 역사적으로 중세 유럽 당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광적인 행태로 인식된다. 기존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들끓자 이들의 불만을 일부 특정 집단으로 돌리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마녀사냥은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이는 광적인 마녀심판이라는 기이한 행태를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온갖 고문과 처형이 난무했다. 기득권은 사회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마녀사냥을 통해 민중의 불만을 잠재웠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압박 수위를 높이는 행태를 보면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이 연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 수익이 지나치다며 예대금리차를 매월 공개 비교토록 압박하는 방식으로 고금리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을 은행으로 떠넘겼다. 고금리로 인한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글로벌 경제 상황의 큰 흐름과 정부의 이전 정책 실패로 인한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마치 시중은행의 파렴치한 이자장사가 가장 큰 책임이라는 식으로 몰아세우며 마녀사냥에 나섰다.

특히 굵직한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시중은행과 금융투자사의 금융상품 부실 판매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공권력을 동원해 특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사고의 책임 소재가 금융사에만 있다고 몰아세우는 식이다. 이쯤되면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취했어야 할 금융당국의 조치와 책임소재는 이미 시야에서 멀어지고 만다.

22일 금융당국이 각 금융협회장들을 불어모아 ‘간담회’라는 명분으로 발표한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은 금융사 마녀사냥의 완결판이다.

금융회사의 임원별 책임을 강화하겠다면서 “정부도 노력하겠다”는 허울 좋은 말보다는 이런 내용이 더 우선돼야 했다.

“금융당국의 각 국장급부터 먼저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아울러 금융회사의 각 임원에도 함께 책임을 묻겠습니다.” 이게 더 당당하고 명분이 서지 않을까.

금융사 위에 군림해 호의호식하기 위해 있는 건지, 오늘도 금융당국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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