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넥스트레벨 콘서트 포스터 이미지 <사진=넥센타이어>
넥스트레벨 콘서트 포스터 이미지 <사진=넥센타이어>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7장 오해(1)

 

모텔 문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사내가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작정 뛰었다. 그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그 옛날 기타를 훔쳐 달아나던 때와 오버랩 되었다. 도망치는 것이 맞는 걸까. 모텔 사내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지 내 숨소리만 요란했다. 비가 그친 뒤라 그런지 쌀쌀했다. 안개가 찻길과 건물들을 부옇게 채웠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공중으로 퍼졌다. 아침이 다가오는 것 같았지만 안개 때문인지 동네는 여전히 깊은 밤처럼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입에서 하얀 김이 새어 나와 안개와 섞였다. 호흡이 진정되지 않아 엉거주춤 두 다리를 짚은 채 숨을 골랐다.

안개 속을 터벅터벅 걸었다. 아직도 심장 안에서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는 것 같았다. 안개숲으로 접어든 기분은 묘했다. 이토록 아득하고 모호하고 흐릿한 경계를 본 적이 없었다. 피부 위로 차갑고 축축하게 감기는 안개가 마치 거대한 뱀처럼 여겨졌다. 안개가 내 몸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릴 것 같았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나는 점점 짙은 안개 속으로 섞여 안개와 하나가 되었다. 현실에서 오히려 아주 먼 세계로 도착한 기분이었다. 더 이상 눈동자들은 쫓아오지 않았다. 쇠구슬처럼 굴러다니던 눈동자들은 깨진 거울의 파편 더미에 갇혀 있을 것이다. 한결 마음이 홀가분했다. 거울로 가득한 방에 갇히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어둡고 축축한 길을 천천히 걷는 기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더구나 낯선 동네의 안개숲 밤길이라니.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라는 개념을 ‘자유’라고 본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자유도 없을 것이다. 희열이 온몸으로 훑고 지나갔다. 어둠은 형태가 같지만 전혀 다른 어둠. 아무도 없는 공간, 아무도 없는 시간. 마치 세기말의 공간에 뚝 떨어진 기분이다. 나는 그동안 왜 그토록 죄인처럼 웅크린 채 살아온 걸까. 복종한 죄밖에 없는데. 모든 것에 순종하고 순응한 것뿐인데. 내 목소리를 감추고 살았을 뿐인데. 당신 주변에 있으면 모두가 나를 알았지만 아무도 나를 몰랐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안개가 스며들어 몸속이 안개로 가득 찼다. 어느 순간 몸 전체가 수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아득해졌다.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싶었다. 안개의 축축하고 투명한 입자는 마치 떠도는 영혼의 입김 같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겉옷을 벗었다. 손끝에 닿는 모든 감촉이 축축하고 부드러운 안개에 감겼다. 점점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무중력 공간으로 두 발이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감각을 자극하며 존재를 드러내는 무형의 것들. 눈에 띌 수 없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를 알릴 수밖에 없는, 몸을 갖지 못해 더욱 아름다운 것들. 빛과 어둠에서 파생되는 것들, 음악, 향기, 어둠과 밝음, 안개의 입자와 수많은 무형의 것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어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이 이어졌다.

아침노을이 하늘을 밀어 올렸다. 어느 틈엔가 안개는 모두 사라지고 사과의 속살처럼 아침의 피부가 드러났다. 쌀쌀한 기온과 청량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몸은 쓰러질 듯 무겁고 힘들었지만 머릿속은 가뿐했다. 안개가 사라진 뒤 빠르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동네의 많은 것들을 반짝거리게 했다. 마름모꼴의 보도블록과 가로수 이파리에 젖은 물방울들, 간간이 눈에 띄는 간판들, 낮은 건물의 지붕들. 기분 탓이겠지만 금방이라도 무지개가 둥실 허공으로 솟아오를 것 같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나는 몽롱한 기분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채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마치 등뼈가 솟아오른 한 마리 낙타가 된 기분이었다. 목적지도 없고 목적도 없는 걸음은 자유로우면서도 불안이 스며있었다. 모텔로 가는 방향을 가늠해 보았다. 모텔 근처로 가면 노인에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가게 문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모텔 근처 편의점에 들러 뭐라도 간단하게 먹으면서 노인이 가게를 열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싸늘하고도 시원하게 아침을 밀고 왔다. 늦봄은 빛과 색을 수시로 달리하여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속성이 있었다. 아침에 웅크리고 있던 잎들은 정오 무렵엔 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오후가 되면 순식간에 한 뼘은 자란 아이처럼 크기가 자라 있었다.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삶의 도정과도 닮았다. 오랜 시간 서성이다 보니 허리와 무릎뼈가 뻐근하고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게다가 갈비뼈 통증까지 몰려와 쉬지 않으면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모텔 근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

편의점 의자에 앉아 잠깐 존다는 것이 꽤 긴 시간 잠을 잤나 보다. 햇살이 따가워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자리를 많이 이동한 뒤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갈등했지만 나도 모르게 이미 레트로 가든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중이었다. 노인의 가게가 가까워지자 자연스럽게 기타 긁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고 통증도 잊을 만큼 설레었다. 맑은 햇살이 은행잎 위로 수정구슬처럼 빛을 내며 경쾌하게 옮겨 다녔다. 레트로 가든이라고 쓰인 거울에도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신 빛을 튕겨냈다. 기타 소리는 첫날 들었던 것보다는 미세하게 나아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형편없었다. 저런 식으로 계속 친다면 죽을 때까지 쳐도 실력은 늘지 않을 텐데.

나는 휘파람을 불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쌓인 물건들 틈을 돌아 기타 치는 노인 쪽으로 갔다.

“오호 많이 느셨네요.”

사운드 홀 안쪽만 확인하면 게임 끝인데! 그곳에 ‘Lucifer, 27club’을 새겨 넣은 네임카드가 붙어 있을까. 억지로 기타를 빼앗아 확인할 수는 없어서 조바심이 났다. 루시퍼의 아름다운 자태가 자꾸 눈에 어른거렸다. 좀 전에 기타 소리를 들었는데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가게 안을 이리저리 돌며 노인을 찾았다. 환청이었나. 큰소리로 노인을 불러보았지만 가게 안은 조용했다. 가게 밖이나 마당 쪽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발밑으로 뭔가 와르르 쏟아졌다. 오래된 비디오 테잎들이었다. 아직도 비디오 테크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나. 부모님 세대에나 사용되었을 물건들이 이곳에선 존재감을 갖고 있다니. 무너진 비디오 테잎들이 통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문득 익숙한 장면의 사진을 발견했다. 재빨리 테잎 더미를 뒤적였다. 용주가 보여줬던 홍콩영화들이 수두룩했다. 왕가위 감독에 빠졌던 때가 떠올랐다. 영화 제목처럼 내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한 때’ 또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음악 활동을 했던 2년여 동안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릴까 봐 꼼꼼하게 포장해 깊숙한 곳에 보관해둔 물건처럼 그 시절은 내게 특별했다. 왜일까. 왜 그 시절을 그토록 소중한 비밀처럼 간직해온 걸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있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평생 아버지에게 휘둘려 살아온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인생을 스스로 주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의 억압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던 건 내 곁에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강렬하게 휘감은 희열의 순간들은 내 인생에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루시퍼와 함께 했던 그 떨리던 순간에 외쳤던 그 말은 기타주인의 죽음을 안 순간 깨져버렸다. 마치 복구할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 부서진 유리 장식품처럼. 그런데 그 시절 회오리바람 끝자락을 다시 붙잡기라도 한 듯 떨리고 긴장되는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숨은 열망 탓일까. 아니다. 문제의 기타를 다시 만난 우연 탓이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이 불행하게 꼬여버린 건 용주를 만난 순간부터였다. 고 2때 짝이 된 용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음악을 하지 않았을 거고, 루시퍼를 훔칠 일도 없었을 거고, 루시퍼 주인을 죽일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용주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용주와 친하게 지내지만 않았더라도 내 인생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을까. 인생이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용주가 내 앞에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았든 나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었을 테니 어떤 길을 택하든 결국은 같은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용주가 어린 나이에도 다양한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것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용주는 그 시절 애들 사이에 문화 전파자로 통했다. 용주는 가끔 동아리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전설의 기타리스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정작 그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용주는 내게만 알려준다는 식으로 선심 쓰듯 말한 적이 있었다.

“우리 삼촌이야.”

“누가?”

“내가 말한 전설의 기타리스트!”

“진짜?”

용주는 특별한 장난감을 혼자만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애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왠지 부러우면서도 심술이 났다.

“전설이면 누구나 다 알아야 전설이지. 삼촌 이름이 뭔데?”

“니가 알아서 뭐 하게?”

“전설이면 당연히 나도 알 거 아냐. 어쨌든 이름이 뭐냐고!”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용주의 말투가 거슬려 나는 따지듯 물었다.

“너 전설의 조건이 뭔지 아냐? 끝까지 신비감을 만족시킬 줄 알아야 전설인 거야. 겉으로 다 드러나면 그건 이미 전설이 아니라고 쨔샤.”

나는 용주를 어이없게 바라보며 뭔 소리래, 조롱하듯 대꾸했다.

“그 정도면 당연히 티브이 출연도 하고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해야 전설 아냐? 어디서 사기를 쳐.”

용주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너만 알고 있어라. 우리 삼촌은 범죄자도 아닌데 경찰이 계속 쫓아다녀. 그래서 대중들 앞에 아무 때나 나타날 수가 없는 거란 말이다.”

“죄도 없는데 경찰에게 쫓긴다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암튼! 아티스트들이 핍박받던 그 시대엔 그런 게 있다고, 그냥 그런 줄 알어 새꺄.”

용주는 안고 있던 기타 줄을 디리링 챙, 하고 튕겼다. 기타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나는 우리나라 기타의 전설들을 떠올려보았다. 딱히 용주의 삼촌으로 예상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용주가 거짓말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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