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귀국과 생업

 

5

 

구성 평지동.

 

정식이 이부자리에 몸을 눕히자마자 아내는 성큼 저고리를 벗었다. 밤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체면을 차리지 않았다.

“아이들 장난감은 관두더라도 장인 장모 선물은 사왔어야지요.”

아내가 등잔불을 껐다. 이불을 들썩이며 정식 곁에 누웠다. 어느새 치마와 속옷을 벗었는지 미끄러운 맨살이 정식의 몸에 닿았다.

“됐어요.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아내가 정식의 샅 사이로 손을 넣었다.

“당신을 보니까 오빠의 불편한 심기가 도졌나 봐요. 도대체 혼인을 하기는 한 거냐고 자주 물었거든요.”

가족들의 눈총과 구박에 대한 불만이 적잖은 무게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장인장모를 모시고 한 집에 사는 손위 처남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었다. 오늘 오후 처가에 당도한 정식이 인사를 건네자 “벌써 왔는가?”라면서 데면데면 대했다. 유학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왜 이리 일찍 왔느냐는 의미 같지는 않았다.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소식을 들었을 터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가라는 타박에 가까운 언사였다. 아내는 아직까지 처가 사랑채에 머물렀다. 벌써 네 해째였다. 네 살짜리, 두 살짜리 딸들과 함께 장남 준호(俊鎬)를 길렀다. 준호는 정식이 일본으로 막 떠나려는 차에 태어났다. 정식은 이제야 첫 대면을 했다. 울거나 웃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젖먹이지만, 아비랍시고 가슴에 안자 목청을 높여 울었다. 처남에게는 방긋방긋 웃으며 옹알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이 아프면 처남이 업고 의원을 찾아갔다. 식구가 늘었으니 농사에 매달리는 처남의 노고 또한 늘었으리라. 거기에 더해 아이들이 처남의 자식들과 싸움질을 했다. 아내는 큰 것들이 작은 것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처남의 자식들을 나무랐다. 그래도 그동안 처남은 정식이 공부한다고 외지에 나간 것을 위안 삼았으리라.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되어 보답을 할 테니까. 이젠 기대할 것 없는 것은 고사하고 건달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되지요?”

아내가 살포시 정식의 성기를 붙잡았다. 그것이 아내의 손 안에서 부풀어 올랐다.

혼인 이후부터 정식은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벼르기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해야 할 말이었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이생에서는 부부라는 관계로 묶여 있도록 운명 지워져 있었다. 그 운명에 저항할 힘을 이젠 온전히 잃었다. 도쿄를 떠나기 전 날 밤 도미꼬가 정식의 손목에서 댕기를 풀어 쓰레기통에 던졌을 때에도 정식은 너무 오래 차고 있었다는 듯 그것을 되찾지 않았다.

아내의 거웃이 살랑살랑 정식의 허벅지를 쓸었다. 하지만 부풀었던 정식의 성기는 어느새 스르르 풀이 죽었다. 정식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내가 팔을 펴 윗몸을 세웠다. 어스름한 달빛에 아내의 얼굴이 정식의 얼굴 위로 올라온 게 보였다. 그런 상태로 한참이 지났다. 정식의 얼굴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습기를 머금은 아내의 한숨소리가 거푸 들렸다.

 

6

 

초승달 아래 사위는 고적했다. 이따금 한두 사람씩 오가는 골목길 발걸음 소리마저 뚝 끊겼다. 풀벌레 소리만이 바람소리에 실려 왔다. 정식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뜰을 거닐었다. 그때 어디선가 여인네가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이어졌다 하면서 들려오는 시구가 귀에 익었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라.

 

- ‘못 잊어’ 일부

 

정식 자신이 일본에 가기 전 《개벽》 에 발표한 시였다. 정식은 가만히 소리를 따라서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가가 소리의 진원지였다.

정식은 영변 성내의 외딴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며칠째 유숙하는 중이었다. 동아일보사 지국 설립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나빈이 혹시 반대한 결과일까 의심이 들어 나빈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나빈은 자신은 그런 용기까지는 없다면서 펄쩍 뛰었다. 한편으론 지식인이라고 해서 일경의 감시와 잦은 출두 명령이 정식을 괴롭혔다. 때때로 가택수색까지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 김성도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발광했다. 일본에서 못 볼꼴을 겪은 정식은 일제의 감시와 간섭을 남보다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다. 울화가 치밀어 술을 자주 마셨다. 자신의 앞날을 더는 길이 없는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아내와 자식들을 만났어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처 없는 여행길에 나섰다. 무작정 걷기로 했다. 사흘 만에 영변에 이르렀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 ‘못 잊어’ 일부

 

벽돌담과 잇닿은 창 밑에서 걸음을 멈춘 정식이 두 번째 연을 읊조렸다. 여인의 목소리가 끊기고 창문이 열리면서 골목이 밝아졌다.

“뉘시나요?”

여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밤중에도 노란 한복을 차려입은 것을 보니 여염집 여인은 아니었다.

“나그네올시다.”

“웬만하면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정식은 대문 앞으로 갔다. 기둥에 청사초롱이 매달린 술집이었다. 여인이 대문을 열며 정식을 맞았다. 손님이 없는지 주청은 불만 켜져 있을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여인의 방으로 들어서자, 여인은 혼자 술을 마시는 중이었던가 보았다. 소반 위에 먹다 만 술 주전자와 구운 꽁치 한 토막이 접시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시는 어떻게 아시게 되었는지요?”

여인이 주전자를 들어 정식에게 한 잔 따랐다. 맑은 정종이었다.

“잡지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 외었소.”

정식은 거짓말을 했다.

“그대는 어떻게 그 시를 외우게 되었소?”

“평양에서 오신 손님이 그 시를 읊으시길래 적어 달라 하였지요. 자기의 한이 시와 맞닿으면 시구 하나 하나가 쉽게 가슴에 박히는 법이지요.”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나요?”

여인의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인이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들어보시겠어요?”

여인이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웠다. 둘은 술잔을 마주 들었다.

채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고향이 진주였다. 아버지는 일본 놈들이 일본식 농촌 건설을 내세워 설립한 동양척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기고 자살했다.

“하루 한 끼 먹기도 힘 들었어요. 제가 열세 살 때 홀어머니가 저를 행상에게 팔았어요. 저는 행상을 따라 동으로 떠돌고 서에서 머물며 가슴을 할퀴는 설움을 키웠지요. 그러다가 나이가 차자 술집 기녀로 다시 팔렸어요.”

정식은 여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여인의 심정을 헤아렸다.

“오늘 점심나절엔 주인한테 밀린 임금을 달라고 했다가 귀뺨을 맞았지요. 저를 버렸다고 어머니를 원망해 왔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고 몹시 그립네요.”

정식은 식상한 말로 위로를 전하고 싶지 않았다. 묵묵히 듣기만 했다.

“돈을 받으면 이 집을 떠나겠어요. 평양으로 갈까 해요.”

여인이 손가락을 펴서 손톱을 보여주었다.

“지난여름에 왔던 평양 손님이 가시면서 봉선화 꽃물을 들여 주었어요. 이 꽃물이 지워지기 전에 오라고 했어요.”

손톱의 붉은 꽃물은 보일락 말락할 정도로 지워져 있었다.

정식은 윗목에 있는 지필묵(紙筆墨)에 눈길을 돌렸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먹을 갈아 시 한 수를 지었다.

 

날 궂다 말아라.

가장(家長) 님만 임이랴.

오다가가 만나도

정 붙이면 임이지.

 

- ‘팔베개 노래’ 일부

 

시를 받아 든 여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도 시인이시나요?”

“아니오.”

“사실 그리워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희망은 줄어 드네요.”

“그래서 시간이 명약이라 하나 봅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실래요?”

정식은 고마움의 표시로 여인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인의 말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처자까지 내 마음에 머물면 내 마음 또한 기어코 찢어질 거예요.”

정식은 그냥 일어나 나가려다가 멋쩍어 여인에게 술잔을 내밀어 한 잔을 더 청했다. <계속>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