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6장 기타 루시퍼(3)

 

용주는 생각보다 치밀했다. 언제 이렇게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열쇠까지 맞춰둔 걸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했다. 구멍에 열쇠를 넣고 차분하게 현관문을 따는 용주를 보자 나는 용주가 조금 무서워졌다. 정대는 현관문 근처에 숨어 망을 보았고, 나는 용주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이 비어 있다고는 했지만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용주의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나와는 달리 용주는 몹시 침착했고 마치 아는 집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거실은 어두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밖에서 뭔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용주가 내 팔을 잡아 주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열렸다. 랜턴에서 쏟아지는 빛의 간격을 최대한 좁게 발끝으로 비추었다.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바닥에 붙어버리기라도 한 듯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실내의 어둠에 차츰 암순응이 되자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사물들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뮤지션답게 거실은 온갖 악기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기타 거치대가 놓여 있었는데 전자기타 세 대와 통기타 세 대가 차례로 진열돼 있었다. 그 옆으로는 키보드와 앰프와 보면대와 갖가지 장비들이 진열돼 있었는데 마치 작업실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용주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는 용주가 이끄는 대로 조심조심 따라갔다. 우리는 도둑고양이처럼 발끝을 세우고 걸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이 집에서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장식장 앞에서 용주가 멈추었다. 용주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거실 창문으로 환하게 쏟아져 들어온 달빛이 유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나와 용주는 몇 초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장식장 안에서 푸른 기운을 내뿜는 기타의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푸른 달빛과 흔들리는 나뭇잎이 기타의 바디에 닿아 신비로운 무늬를 만들었다. 넥에 찍힌 일곱 개의 포지션 마크가 별처럼 반짝이며 빛을 냈다. 한쪽으로 모두 박아 놓은 헤드머신은 왕관처럼 보였고 바디로 연결된 여섯 개의 줄은 금발을 늘어뜨린 머리카락처럼 빛이 났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바디는 여신의 몸처럼 보였다. 특이한 건 사운드 홀이 통기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이었다. 부드러운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러 개의 나뭇잎으로 만든 사운드 홀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마치 여신에게 영혼을 붙잡힌 것처럼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용주가 재빨리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당황해서 슬그머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용주가 말하지 않아도 유리장 안 기타가 루시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루시퍼는 달빛과 함께 푸른빛을 내뿜어 마치 눈으로도 신비로운 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루시퍼를 소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영혼을 빼앗길만한 자태였다. 나는 몰래 침입한 두려움도 잊고 루시퍼에 완전히 빨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용주가 내 어깨를 꽉 잡더니 무서운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용주가 조심스럽게 장식장 문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용주가 당황한 듯 멈칫했고 나는 왜? 하고 눈으로 물었다. 용주가 장식장 문을 가리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보관돼 있을 거란 예측은 했지만 문이 잠긴 장식장은 예상치 못했다.

“어떻게 하지?”

내가 속삭였다. 용주가 장식장 문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당연히 열릴 리 없었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용주의 옆얼굴의 각진 선이 달빛으로 푸르게 드러났다. 사각 유리장 안에서 루시퍼는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푸른 자태를 유유히 뽐내고 있었다.

용주가 고민하는 사이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으로 루시퍼와 주변을 번갈아 살폈다. 용주가 현관문을 열었던 뾰족한 물건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나는 차분하고 능수능란한 용주의 행동에 또 한 번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고 대담할까. 용주의 진짜 모습이 궁금했다. 용주를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구석이 많았다. 용주는 언제나 나를 가장 친한 친구 대하듯 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더 이상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냉정함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용주가 자신에 대해 모든 걸 오픈한다 해도 모두 받아줄 의향은 없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용주와 나의 관계에 어울리는 말 같았다.

용주는 조심스럽게 길고 날카로운 뭔가를 유리문 틈새로 집어넣어 걸쇠를 풀어내려 여러 번 시도를 했다. 걸쇠 부분에 마찰이 되면서 끼릭끼릭 소리가 났다. 빈집이라고 했지만 나는 가슴이 쿵쿵거리고 온몸이 덜덜 떨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 뒤 딸깍 소리와 함께 용주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숨을 간신히 내뱉으며 현관과 거실 안쪽을 둘러보았다. 용주가 드디어 루시퍼를 꺼내려고 장식장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나는 이 집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몸을 떨었다. 용주가 제발 서둘러 주기를 바랐다.

용주가 루시퍼를 끄집어내어 한 손으로 바디를 떠받쳤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타줄이 팔에 닿았고 현이 디이잉-. 소리를 냈다. 잠들어 있던 침묵이 기타 줄 소리에 화다닥 깨어났다. 우리는 깜짝 놀라 이삼 초 정도 꼼짝할 수 없었다. 우리가 놀란 건 루시퍼 줄이 낸 소리 때문이 아니었다. 분명히 빈집이라고 했다. 그런데 방문 하나가 덜컥 열리고 검은 그림자가 문 한가운데 나타났다. 마치 유령처럼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시오!”

우렁찬 남자 목소리였다. 강하지만 목소리 끝이 약간 떨려 나온 걸 보면 상대도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용주는 쏜살같이 현관 쪽으로 뛰었다. 루시퍼를 가슴에 안은 상태였다. 방문 한가운데 서 있던 남자는 몸을 날리듯 재빨리 용주를 쫓아갔다. 마치 맹수들의 추격전처럼 보였다. 용주가 현관문 근처까지 갔을 때 남자가 용주에게 달려들어 루시퍼를 잡아당겼다. 그 과정에서 용주와 남자가 약간의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일어났다.

용주가 루시퍼를 놓치지 않으려 몸을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 틈에 남자는 용주의 멱살을 잡고 루시퍼를 빼앗으려 했다. 나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감각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했다. 나는 날다시피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용주가 안고 있던 루시퍼를 잡아 품에 안았다. 용주는 날렵하게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는 덩치가 큰 편이어서 쉽게 밀려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이대로 도망을 가야 하나, 용주를 기다려야 하나, 루시퍼를 두고 두 사람의 싸움에 가담해야 하나, 용주와 함께 도망을 쳐야 하나,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두 사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나는 차마 루시퍼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잠시 망설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남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도둑이야! 강도야! 소리를 질렀다. 나는 얼떨결에 뛰어가 남자의 몸을 발로 찼다. 그 사이 현관 밖에서 망을 보던 정대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는 정대에게 기타를 넘겼다. 남자는 워낙 덩치도 크고 힘이 세서 쉽게 제압이 되는 상대가 아니었다.

우리는 합동작전으로 펼쳐야 했다. 내가 남자의 몸을 잡아당기는 사이 용주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남자의 등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닥치는 대로 쳤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가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용주가 남자를 발로 내리찍으려는 찰라, 남자가 용주의 발을 붙잡고 순식간에 용주를 뒤로 넘어뜨린 뒤 몸을 일으켰다. 나는 키보드 옆에 세워진 사기로 된 화분을 들어 남자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화분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남자가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튀어!”

정대와 용주가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잠깐 돌아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라와 재림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용주가 튀어,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골목을 정신없이 뛰쳐나왔다. 악몽을 꿀 때 아무리 앞을 향해 달려도 발이 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다리가 자꾸 바닥으로 들러붙었다. 소라가 뛰어가다 돌아와 내 팔을 붙잡고 같이 뛰었다. 나는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두려웠다. 골목을 돌아 나오기 전 방금 빠져나온 집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달빛이 무대조명처럼 그 집을 향해 쏟아졌다. 조용한 골목이 우리들의 뒤섞인 발소리와 함께 조용했던 개들이 여기저기서 짖어대며 요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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