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1독립운동과 폐교

 

12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정식이 마주앉았다.

“오산학교는 당장 재건키 어렵다더라. 너도 배찬경이처럼 경성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하거라. 넉넉하지는 못할 테지만 유학비를 대 주마.”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여름 한 철을 정식의 집에서 보낸 김억이 정식을 경성 배제고보에 보내 공부하게 할 것을 할아버지에게 권유했었다. 마침 집안에 매캐한 연기처럼 넘실대던 근심을 어느 정도 물리친 뒤였다. 금광은 그 결정적 장래를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채산성이 향상되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세 또한 어느 정도 차도를 보였다. 둘째 작은아버지를 따라 신의주를 다녀온 뒤부터였다. 할머니는 예수님 은혜가 부처님이나 용왕님 위신력보다 더 높다고 칭송했다. 덩달아 온 동네 사람들이 기뻐했다. 할머니는 은혜를 입었으니 교회에 나가자고 할아버지를 졸랐다.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행위를 미신이라고 여기던 할아버지는 결국 할머니만이라도 교회에 나가도록 승낙했다. 때맞춰 정식의 문학적 위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상업계통으로 나갈 것을 원하는 할아버지는 그런 정식을 별 신통하다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문학도 신학문의 하나려니 여겼다. 정식이 공부를 더하면 큰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족들 또한 할머니에게 정식의 경성 유학을 은근히 설득했었다.

정식은 지난해(1920년) 2월 《창조》 5호에 ‘낭인(浪人)의 봄’ 등 5편의 시를 첫 발표했다. 같은 달에 ‘춘조(春朝)’라는 제목의 산문을 《학생계》에 응모하여 ‘지(地)’로 입상했다. 올해는 정초부터 《학생계》 6호에 ‘이 한밤’ 등 두 편의 시가 현상문예에서 ‘천(天)’으로 입상했다. 동아일보에 투고한 또 다른 시 작품은 학생문예란에 실렸다. 경성 같은 데서 정식의 독자라는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왔다. 청개구리가 콩대 위에 올라서서 세상 넓다고 감탄하는 꼴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자신을 정식은 발견하는 중이었다.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시 나부랭이는 집어치우라. 시가 밥이 된다더냐, 돈이 된다더냐. 만세운동이니 하는 것도 관심 두지 말고. 글 장난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일에 힘을 쓰거라. 시문으로 태산을 오른들 뭐하느냐. 두 발로 물레방아를 돌려 벼를 찧는 것만 못하느니라.”

할아버지는 정식의 시들이 실린 신문이나 잡지를 안 보는 척 살짝살짝 보면서 정식이 오 씨네 딸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김억을 만나 시를 논하는 것조차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정식의 아내가 둘째 딸 구원(龜媛)까지 낳았다. 그런데도 정식은 가정에 마음을 주지 못했다.

“지체 말고 수일 내로 떠나거라.”

할아버지가 곰방대를 들어서 재떨이에 대통을 텅텅 쳤다. 그 소리가 정식의 각오를 촉구하는 한편, 할아버지 마음에 깃든 근심을 느끼게 했다.

“나가 보아라.”

할아버지가 할 말을 다했다는 듯 곰방대로 문을 가리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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