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이성현 지음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겸재가 조선회화사에 등장한 것은 노론 강경파 장동 김씨 집안의 삼연 김창흡의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게 되면서였다.

이때 제작된 신묘년풍악도첩은 그의 금강산 그림의 원형이 되었으며, 이후 겸재는 평생토록 장동 김씨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전폭적 후원 아래 화업을 이어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술사가들은 겸재의 진경산수화에서 ‘진경’이란 말을 차용하여 조선후기 문화를 ‘진경문화’라고 하면서도 한사코 겸재를 노론의 화가라 부르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사가들 스스로 ‘진경문화는 조선중화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란 주장을 펼쳐왔고, 그 중심에 겸재를 두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겸재를 노론의 화가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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