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심사 강화, 서민·중소기업 부담만 늘 수도

김영 금융부 팀장
김영 금융부 팀장

[현대경제신문 김영 기자]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소득의 상당분을 이자 갚는데만 쓰다 보니 내수부진이 장기화되고 경제 활력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계가구 수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대출심사 강화 등을 통해 가계부채 문제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획기적인 경기부양 전략 등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25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매년 빠르게 증가해 온 시중은행 가계대출 규모가 올 들어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올 1분기 가계부채 증가분은 전년 동기 대비 5분의 1 수준인 1조1천억원에 그쳤다. 전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올 1분기 가계대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비슷한 증가세를 보였다. 시중은행 대출심사 강화 발표가 나올 당시 제기됐던 저축은행 등으로의 대출 쏠림 현상, 이른바 ‘풍선효과’가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권에 대한 무리한 돈줄 옥죄기가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만능 해법이 아니란 방증이기도 하다.

출범 3주째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의 방점을 서민경제 안정화에 두고 있다. 가계부채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통해 서민 소득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는 가계부채 해결을 위해 소액·장기 채권 소각 및 카드 수수료 우대 대상 확대는 물론 은행권의 대출심사 강화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기존 대출평가 기준으로 활용돼 온 DTI(총부채상환비율)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로 대체해 무리한 대출을 막고 금융 이자에 허덕여 온 가계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내비쳤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업계에서는 전 정권 시절 추진된 가계부채 대책들과 마찬가지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함께 보내고 있다. 대출심사 강화에 따른 시중은행 신규대출 규모 축소가 제2금융권 이하 금융시장의 가계대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민금융을 표방해 온 저축은행업계로도 DSR 도입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이와 관련 저축은행업계 내 신규대출 축소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 경우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에서도 돈 빌리기가 어려워진 서민들이 대부업 등 사금융을 찾게 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최근 시중은행들은 기업들에게 제공하는 한도성 여신규모를 빠르게 줄여 나가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기업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볼 수 있는 한도성 여신을 축소해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개선하고 충당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인데, 한도 축소의 주 대상기업은 중소기업인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들의 대출심사 강화와 여신규모 축소 등에 따라 서민과 중소기업의 어려움만 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 정부의 가계부채 감축과 이를 통한 내수 활성화 정책이 문제되진 않는다.

그러나 돈줄만 움켜지는 정책만 수립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창의적인 경기부양책은 물론 서민과 중소기업만을 위한 자금 지원 방안 등도 함께 제시돼야 가계부채 해결의 답을 찾을 수 있다.

빚을 줄이겠다고 은행의 돈줄을 일방적으로 움켜쥐면 결국 돈 없는 서민과 중소기업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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