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정범종 지음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이 책은 고려 때 문신과 무신의 대립과 갈등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궁궐에서 왕의 다회를 준비하는 상서 시랑을 맡고 있는 주상우는 무예 연마에 힘쓰는 동생 주상모를 늘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도 문신의 천거 없이는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시대였다. 어느 날 주상우는 탐진(강진)의 가마에서 개경의 궁궐로 온 비색 청자들에 섞여 있는 상감청자 찻잔 한 점을 보고 의아해한다.

왕궁에서는 여태껏 비색으로 된 청자만 써왔다. 주상우는 처음 본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에 찬탄하면서도 왕의 색인 비색에 무늬를 새긴 무엄함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범인을 색출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고 칼잡이 동생을 탐진으로 내려보내기로 한다. 형으로부터 늘 무시를 당해왔던 동생 주상모는 이번에 일을 성공하면 벼슬이 내려질 거라는 형의 말을 믿고 탐진으로 내려간다.

이 책은 정범종 작가의 첫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의 초고를 쓰고 다듬고 완성하는 데 십 년의 시간을 보냈다. 신문사와 잡지사 생활을 하는 틈틈이 작품을 썼다.

계기는 고려 상감청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부터였다. 그는 간송미술관,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등 청자가 전시되는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았다. 도편을 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려도공은 어떻게 해서 상감을 시작하게 된 걸까. 거기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질문은 이어졌다. 상감의 무늬 가운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천년의 세월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는가? 도공 윤누리가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학을 새기고 백토를 채운 데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상감의 의미를 사랑과 평화의 의미로 해석한다.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에 몰입되어 도자기를 빚기 위해 생활도예 교실에 등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투박한 찻잔 하나를 만들었다.

사람들과 질흙처럼 섞여 지내면서 경쟁하는 삶 너머의 평화에 대해 생각했다. 이책은 이제 소설가로서 첫 발을 뗀 그의 문학적 다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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