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1997년 외환위기가 현실화되던 연말 즈음 우리나라는 정부가 바뀌는 시점이었다. 야당이 여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외환위기가 정권교체를 견인한 셈이기도 했다.

그 1년 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착각에 빠져 흥청망청했다. 이를 두고 외국인들은 ‘코리아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 비웃음을 샀던 기억이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있다.

당시 한국은행 금고는 거의 비어있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줄도산에 놓여있었고 많은 근로자들이 직장을 떠나야 했다. 한마디로 기업과 가정이, 나라가 도산상태였다. 

이렇게 된 까닭은 30여간 고속성장을 하는 동안 쌓인 문제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그것이 환란으로 드러난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우리경제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여 투자했던 외화를 회수하기 시각하면서 금고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 기술력 빈곤, 국민의 과소비, 무엇보다 집권여당의 무책임 등등이 경제기능을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경제최고책임자는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어떠한 경제위기에도 대처할 만만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장담했을 정도였다.

어쩌면 외환위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몰랐던 게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말이다. 그만큼 하루아침에(?) 나라경제가 초토화될 것이라는 몰랐다.

1년도 훨씬 전부터 우리경제에 대한 심상찮은 경고가 있었다. 군부정권에 의한 계획경제하에서 누리던 우리경제는 소위 브리핑 경제가 주류를 이뤘다. 

권력자에게 ‘잘나가고 있다’고 보고하기 좋도록 외양을 꾸미기만 하면 책임과 동시에 넉넉한 보너스가 쏟아졌던 것이다. 그렇게 속빈 강정 같은 금자탑을 쌓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덜컥 민주화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억눌려왔던 노동자들의 쟁의로 나날을 보냈다.

정부는 이들을 제어하기위한 관련법을 날치기 통과하기도 했다. 야당은 이때다 싶어 노동자들과 엉켜 거리투쟁으로 지새웠다. 경제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정치투쟁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코리아에 투자했던 외국투자자는 계산기를 두들겨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경제와 한국인들은 무엇 하나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특히 나라를 책임진 정치권, 정치인들의 싸움은 코리아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계산하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국경제에 대한 내외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 정부책임자가 내놓는 지극히 긍정적인 반론이 이상하게만 들렸던 것이다. 왜 한국정부는 국민에게 어려운 경제실정에 대한 솔직한 사정을 말하지 않는 것에 강한 의심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2016년 5월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과연 어떠한 좌표에 처해있는가. 외환위기 때를 회고해보면서 문득 그 당시와는 어떻게 다른가를 헤아려보게 된다.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당시 정부는 경제위기예상에 대해 전면부인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정부는 틈만 나면 경제위기에 대해 경고하고 이러저러한 대책이 긴요하다고 촉구한다. 오히려 정부의 그러한 주장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고사하고 하나하나 반박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다.

‘경제위기 최악의 대응은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는 어느 일간지의 기사제목이 눈길을 끈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가는지’ 또 위정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이런 질문이 치미는 것을 감출 수 없다.

경제위기를 정쟁의 빌미로 삼아 일신 혹은 일당의 야욕 채우기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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