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오죽 답답했으면 한 말이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향해 쏘아붙인 말을 두고 하는 소리다. 연말을 앞두고 국회의 주요 법안처리가 계속 지연되는 사태에 대해 심히 못마땅한 심사를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만날 앉아서 립 서비스만 하고, 경제 걱정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고 하고, 자기 할 일은 안하고, 이거는 말이 안 된다.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국회를 향해 일갈한 것이다. 대통령은 “앞으로 국회가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대통령이 이 말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속절없이 지연됨에 따른 적잖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중 FTA는 이미 양국 간의 논의를 거쳐 우리 쪽에서는 국회비준절차만 남겨놓고 있는 사안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일갈이 있은 지 며칠 후 여야합의에 따라 아슬아슬하게 11월말일 원만하게(?)처리될 전망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국회만큼 나라를 걱정하고, 고달픈 민생을 어루만져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싶을 만큼 말을 잘한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립 서비스’라고 일컬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현안을 두고 논쟁을 일삼다가도 문득 ‘민생이 어려운 판국에…’라는 말로 각자의 주장에 힘을 싣고자 할 때 이른바 ‘민생’을 끌어다 쓰고는 한다. 그들에게 있어 민생은 써먹기 좋은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국사교과서를 올바르게 다시 편찬하겠다고 하는데도 ‘민생이 어려운 판국에 왜 정부가 국사교과서를 새로 만드느냐’ 면서 민생과 국사를 묘하게 들먹이고 있는 즈음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이런 것을 싸잡아 정치인들의 직무위기이고 위선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지난 한해를 허비했다. 그 결과가 연말이 되면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성적표가 그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적표가 그것이다.

경제성장률은 당초 목표치에서 뒷걸음쳐서 2%대에 머물고 있다. 2년 만에 또다시 밀린 것이다. 당연히 1인당 국민소득도 뒤로 처질 것이 유력하다는 판단이다. 수출실적도 하향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전망도 어둡다.

가장 심각한 성적은 취업자 수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증가폭인 53만3천명에 비해 20만 명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3.5~3.7%대. 지난해에는 3.5%였다.

1인당 국민소득(GDP)도 6년 만에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2만7천 달러에 머물러 지난해의 2만8천101달러보다 처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출도 3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연간 교역액도 1조 달러 행진이 마감할 것이라는 어두운 예상이다. 따라서 연간 1조 달러 교역시대는 5년 만에 종언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경제에 적신호가 들어온 지는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정부는 그동안 이에 대비해서 대안을 제시하고 나름대로 위기극복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따른 입법을 국회에 촉구했다. 개혁을 통한 경제체질강화에 힘을 모았다. 그러나 이해당사자의 극심한 반대투쟁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야 말로 국회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민생’을 끔찍하게 위한다는 정치권의 말은 그야말로 구두선에 불과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속셈에서인지 딴전만 벌이고 있다.

민생은 곪을 대로 곪았다. 정치위선이 낳은 민생현실이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