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해야 할 치부, 꼭 한 번 되짚어봐야 할 촌지 실화

 
 

<촌지(村志)>는 언론계의 ‘촌지’를 다룬 책이다. 많이들 들어는 봤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혹여 낱낱이 알더라도 불문율처럼 입에 잘 담지 않았던 언론계의 ‘촌지’에 대한 얘기다.

낯뜨거운 68가지 실화를 바탕으로 언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저자는 책에서 일부 기자를 무관의 제왕 행세를 하는 기레기(쓰레기 기자)로 표현했다. 기자들은 진실을 밝히고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취재에 나선다. 기레기는 다른 목적으로 움직인다. ‘촌지’를 받기 위해서다.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혈안이 돼 타락한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과 쉽게 결탁한다. 그래서 기레기다.

<촌지>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에 소개된 사례는 저자인 기자와 기자의 선배, 동료, 후배기자의 과거사다. 기자에는 신문기자, 통신기자, 방송기자 등이 모두 포함됐다.

<촌지>의 대표기자인 기레기는 동료기자들과 지방출장, 해외출장을 가겠다며 촌지봉투를 긁어모은다. 정부기관과 산하기관, 관련 기업 등에서 받은 촌지다. 기자 월급이 60만원이던 시절, 지방 출장 한 번에 기자들은 1인당 70만원의 ‘낑’(기자들 사이에서 촌지를 뜻하는 은어)을 나눠가졌다. 출장 내내 제공받은 술값, 밥값, 숙박비는 셈에 넣지 않았다.

촌지 사례에 고위공무원, 경찰 간부, 검찰총장, 기업 간부 등이 등장한다. <촌지>는 그들과 기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털어놓고 있다.

일부 기관은 출입처가 바뀌어 떠나는 기자에게 ‘전별금’ 명목의 촌지를 전달했다. 나중에 다시 담당을 하게 됐을 때를 대비해 후환이 없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6·29봉투’라는 것도 있었다. 기자들은 과거 노태우 대통령이 매년 6·29를 기념해 하사했던 촌지봉투를 그렇게 불렀다.

한 기관장은 해외출장을 떠나는 기자에게 ‘장도(壯途)’라고 씌여진 봉투에 '빳빳한' 달러를 두둑하게 넣어 전했다.

장관의 수행기자로 미국 출장을 갔을 때의 취재 일정에서도 촌지의 실화가 낱낱이 드러난다. 출장비용은 정부가 댄다. 숙소는 욕실이 7개나 되는 초특급 호텔이다. 장관은 비서관을 통해 기자들에게 촌지를 전달한다. 기자들은 촌지로 취재가 아닌 관광, 누드쇼, 도박을 즐긴다.

기자들 사이에서 촌지를 놓고 불협화음도 있었다. 촌지봉투를 공평하게 가르지 않고 차별하면 촌지를 덜 받은 기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성골기자, 진골기자, 평민기자라는 우스꽝스러운 골품이 있었을 정도다.

기자들은 ‘식이난타(食而亂打)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먹고 때리라‘는 의미다. 촌지를 받아먹고도 속된 표현으로 ’조지는 기사‘를 써야 잘난 기자였다. 촌지를 거부하면서 붓을 예리하게 휘두르는 ’불식이난타(不食而亂打)‘는 이보다 못난 기자였다. 이만큼 촌지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반성해야 마땅할 과거사”라고 밝혔다.

[ 저자 김영인 / 지식공방 / 2015.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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