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그룹 장씨·최씨 공동경영 체제 깨져
금호석화 3차 조카의 난은 실패로 끝나
한진 조원태 선임 안건도 논란 끝에 가결
포스코 장인화 회장 선임은 무사 통과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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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신문 성현 기자]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영권 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수십년간 이어진 동업 관계를 끝낸 영풍그룹과 주요 주주와 연합해 적극적으로 회사 운영에 개입하는 사모펀드 등이 눈에 띈다.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이 늘어난 점도 올해 주총의 특징이다.

금호석유화학은 22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자사주 처분·소각에 대한 주요 사항 결의 주체를 이사회로 두는 정관 일부 변경의 건, 최도성 한동대 총장의 사외이사 선임 건 등을 채택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선 개인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지분 9.1%)의 주주 권한을 대리하는 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으로 표 대결이 이뤄졌다.

박철완 전 상무는 금호그룹 3대 회장인 고(故) 박정구 회장의 외아들이다. 박찬구 현 금호석화 명예회장의 조카다.

2021년과 2022년 두차례에 걸쳐 박찬구 명예회장을 상대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

올해는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주총 결의에 의해서도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도록 정관을 변경하고, 기존 보유한 자기주식을 전량 소각하는 안건을 주주제안으로 냈다.

금호석유화학은 이사회가 상법에 따라 자기주식의 처분 및 소각에 대한 주요 사항을 결의할 수 있도록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추진했다. 또 앞으로 3년간 보유한 자사주 50%를 순차적으로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사주 소각 주체와 관련한 정관 일부 변경안은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제출안과 차파트너스 측 안건이 동시에 투표에 부쳐졌다. 차파트너스가 함께 주주제안한 자사주 전량 소각 안건은 그와 연계된 정관 변경안이 부결됨에 따라 자동 폐기돼 별도 투표가 이뤄지지 않았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주요 주주와 의결권 자문사의 반대를 뚫고 대한항공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대한항공은 2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등 5개 안건을 모두 가결했다.

앞서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모든 안건이 무리 없이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가 소홀하고 보수가 과도하다는 이유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 14일 의결권 자문사인 좋은기업지배연구소도 보고서를 통해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 반대를 권고했다. 특히 조 회장이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한 이력을 지적했다.

연구소는 “조 회장은 지난 2020년 한진칼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KDB산업은행으로부터 5000억원을 조달하고 우호지분을 확보해 지배권 방어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의 그룹 회장 취임도 순탄치는 않았다.

포스코홀딩스는 21일 오전 정기 주총을 열었다. 장 전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은 전체 의결 가능 주식(7587만6207주)의 43.2% 이상이 참석한 가운데 절반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 가결됐다.

이는 국민연금공단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찬성표를 던진 덕분이다. 지난 14일 수탁위 위원들은 포스코홀딩스 주주총회 안건 중 장 후보의 차기 회장 선임안에 찬성했다.

장 전 사장의 선임은 중국 백두산 호화 출장 의혹과 포스코홀딩스·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 등 시민단체의 고발 등이 걸림돌로 여겨졌으나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포스코홀딩스 지분 6.7%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다만 소액주주들의 반대는 극복하지 못했다.

포스코홀딩스 지분 0.0018%를 갖고 있는 김모씨는 지난 5일 “장인화 회장 후보의 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호화이사회로 물의를 빚어 공정성에 의심을 사는 내부후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은 반대한다”며 “장인화 후보는 포스코의 본질은 철강임을 강조하고 주주환원책과 미래 청사진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풍그룹은 수십년간 이어온 공동 영영 체제가 올해 정기 주총에서 깨졌다.

지난 19일 열린 고려아연 주총에서는 제2-2호 의안인 주식발행 및 배정 표준정관 반영 안건이 부결됐다.

특별결의 사항은 정관 변경은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되는데 찬성률이 53.02%에 그쳐 부결됐다.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함께 설립한 영풍이 모태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지분 25.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지분은 1.75%다. 다만 특수관계자와 우호 지분을 더하면 양측 모두 32∼33%로 큰 차이는 없다.

양측은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정관 변경과 배당 안건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각각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업무를 맡을 법인을 선임하고 소액주주 표심 확보에 주력했다.

고려아연은 기존 정관에서 '경영상 필요시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가능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국내 법인에도 허용하도록 정관 변경을 추진했다.

반면 영풍은 무분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인한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해 정관 변경에 반대해 왔다. 고려아연은 상장사 97%가 도입한 상법상 표준정관을 도입하는 안건으로 상장사협의회가 권고하는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1호 의안인 연결 및 별도 재무제표(이익잉여금처분계산서 포함) 승인의 건은 통과됐다. 해당 안에는 결산 배당 5000원이 포함됐다.

그동안 영풍은 결산 배당으로 전년과 동일한 1만원을 주장했다. 고려아연의 배당 가능 이익잉여금 약 7조3000억원과 현금성자산 등 약 1조5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금 여력은 충분하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안건은 고려아연의 제안대로 가결됐다. 고려아연 측 동의율이 62.74%에 달했다. 배당 의안은 보통 결의 사항으로 과반 찬성만으로 가결된다.

영풍 관계자는 “고려아연과 유기적인 협력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서로 간의 상생 발전을 도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OCI와의 합병을 두고 오너 일가 간 갈등이 벌어진 한미사이언스의 주주총회는 28일 열린다. 최대주주인 IBK기업은행와 방경만 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을 두고 다투고 있는 KT&G의 주총도 같은 날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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