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사/ 한열음 지음

이 책은 ‘공간(空間)’에 관한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민주가 그토록 찾던 방(房)은 사건이 일어나는 실제 생활 공간만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적,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상징이며 저항과 순응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설은 시간의 경계를 지우고 독자들을 1980~1990년대로 데려간다. 서울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대한민국.

주인공 민주를 따라 능바우 시골 아이들의 사투리를 듣다 보면 눈앞에 알록달록 꽃동산이 펼쳐진다. 시간이 지나 찬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는가 싶으면 어느새 도시 한구석의 서늘한 냉기에 닿고 말 것이다. 그곳에는 수많은 10대 노동자가 있다.

가난과 폭력, 부서진 마음이 심화하고 확장되어 불행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공간. 보편적인 불행 앞에서 소녀들은 울고 웃으면 일상을 견딘다.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70~1980년대의 노동 문학이 인권 쟁취를 위한 집단적 욕망을 그렸던 반면 이 책의 속 인물들은 시종일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항하는 개별적 존재들을 되살린다.

노동운동에 가려졌던 청소년 노동자들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인간으로서 소녀들은 상처받고 분노하고 욕망하며 ‘우리’와 ‘나’의 선을 넘나든다.

인물들이 허무는 경계를 따라 독자 또한 공간의 경계를 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가 닿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독자와 인물의 경계를 허물고 공간의 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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