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차례 주가조작 사태로 몸살
금투업계 대표 모여 윤리경영 다짐

[현대경제신문 임대현 기자] 올해 금융투자업계는 라덕연 사태부터 채권 손실 돌려막기까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며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 이에 업계는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대표 교체 등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다. [기획자주]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앞줄 가운데)과 증권사 및 자산운용자 대표들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금투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계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앞줄 가운데)과 증권사 및 자산운용자 대표들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금투협 대회의실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계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올해 금투업계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 서울가스와 대성홀딩스, 삼천리 등 8개 종목이 돌연 하한가를 맞았는데 매도 창구는 외국계 증권사인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이었다. 해당 사건의 배후에는 라덕연 투자컨설팅업체 대표가 있었다.

라 전 대표 일당은 차액결제거래(CFD)를 활용해 주가를 조종하고 있었으나 당국이 조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일당 중 일부가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대규모 하한가 사태가 시작됐다.

2개월이 지난 6월에도 또다시 무더기 하한가가 나왔는데 해당 종목들이 바른투자연구소에서 꾸준히 추천 종목으로 거론돼 왔다는 게 드러나면서 바른투자연구소 강기혁 소장과 카페 회원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어 10월엔 영풍제지와 대양금속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업계에선 영풍제지가 1년간 주가 상승률이 600%에 달했다는 점을 주목하며 주가조작에 무게를 뒀고 이후 이뤄진 수사 끝에 검찰은 영풍제지 시세 조종에 가담한 일당을 체포했다. 현재는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금융감독원이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실태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수천억 규모의 손실을 돌려막기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 증권사의 경우 돌려막기를 한 횟수가 6,000번, 금액은 5,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18일 여의도 금투센터빌딩에서 ‘금융투자업계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증권·자산운용·부동산신탁 등 금투업계 각 업권별 CEO 30여명이 참석했다.

금투협 측은 이번 행사가 “올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사고로 훼손된 업계의 신뢰를 스스로 회복하고 구체적 실천과제를 제시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내부통제 역량 강화, 건전한 영업문화 조성, 사회적 책임 등 크게 세 가지 부문에서 구체적 윤리경영 실행방안을 제시한 선포문을 발표했다.

랩·신탁 불건전 영업 관행 근절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를 약속했으며 공매도 주문 수탁자로서 불법 공매도 근절 방안의 철저한 이행과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모니터링 및 유관기관 협력 확대도 약속했다. 기업공개(IPO) 기업실사 개선을 위한 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도 강화할 계획이다.

예탁금 이용료와 신용융자 이자율 등의 합리적 산정체계 구축,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프로그램 운용 등 대체자산 리스크 관리 등을 통해 건전한 영업문화 조성에도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투자 확대, 중소기업 자금조달 지원 등 IB업무 본연의 역량을 강화할 것을 약속했다.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역량 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업계 스스로의 개선의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며 “업계의 본분인 국민자산 증식과 모험자본 공급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하고 공정금융·상생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키움증권 본사 전경. [사진=키움증권]
키움증권 본사 전경. [사진=키움증권]

증권가 CEO 세대교체 바람

앞서 사건들에서 특히 키움증권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됐다. 4월 '라덕연 사태' 때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주가조작 의혹에 휘말렸다. 다우데이타의 주가가 폭락하기 전 김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지분을 팔아치워 600억원대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에 내부정보를 이용해 폭락 직전 매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를 부인하던 김 회장은 결국 차익 금액을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히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키움증권은 10월 영풍제지 사태 때에도 주가조작 일당이 키움증권의 계좌를 집중적으로 활용해 비판을 받았다. 다른 증권사들은 영풍제지의 주가 상승률이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해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지만 키움증권은 하한가 사태 당일까지도 40%의 종목 증거금률을 유지했다.

결국 리스크 관리 부실로 키움증권을 이끌던 황현순 대표는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며 엄주성 부사장이 새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한편, 키움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삼성증권 등도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창업 멤버였던 최현만 회장이 퇴진하면서 그 자리에 1968년생인 김미섭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또한 허선호 부회장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각자대표 체제로 개편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회사를 5년간 이끈 정일문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고 김성환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경영 성과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이어가면서도 금융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성장 전략의 변화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메리츠증권은 최고리스크책임자(CRO) 경험이 있는 장원재 사장을 대표로 선임했으며 삼성증권은 박종문 삼성생명 자산운용부문 사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박정림 KB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도 라임·옵티머스 판매사 CEO에 대한 금융당국의 중징계 영향으로 대표이사 교체 가능성이 커졌다.

중소형사도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BNK투자증권은 차기 대표로 신명호 전 유안타증권 대표를 내정했다. 이외에도 김신 SK증권 대표, 박봉권 교보증권 대표, 홍원식 하이투자증권 대표, 곽봉석 DB금융투자 대표, 임재택 한양증권 대표 등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크고 작은 사건들과 더불어 실적 악화도 겹치며 증권사 전반에 세대교체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며 “대형사로부터 시작된 교체 흐름이 중소형 증권사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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