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개발과 판매조직 분리 가속화
기존 회사도 실적 개선·조직 확대

[현대경제신문 임대현 기자] 보험사들의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 설립 움직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상품개발과 판매 조직을 분리하는 제판분리로 영업력 강화,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회사형 GA들의 실적 개선과 영향력 확대로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 역시 더 커지고 있는 추세다. [편집자주]

김상화 HK금융파트너스 대표(왼쪽 두 번째)와 임형준 흥국생명 대표(가운데) 등이 HK금융파트너스 출범식에서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사진=흥국생명>
김상화 HK금융파트너스 대표(왼쪽 두 번째)와 임형준 흥국생명 대표(가운데) 등이 HK금융파트너스 출범식에서 테이프 커팅식을 하고 있다. <사진=흥국생명>

생보사 주도 판매자회사 설립 ‘붐’

AIA생명은 지난 6월 금융감독원에 자회사형 GA 설립 인허가 신청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제판분리 작업에 들어갔다. 초대 대표이사에는 리치앤코 출신 공태식 부사장을 내정한 상태다.

이달 들어서는 흥국생명이 1,300여명의 설계사 조직으로 구성한 ‘HK금융파트너스’를 출범하고 본격 영업에 들어갔다. 본사는 보험상품 및 서비스 개발 등 경영 효율화에 집중하고 HK금융파트너스가 상품 판매를 전담해 영업력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신임 대표 자리에는 지난해부터 흥국의 영업을 총괄해온 김상화 흥국 영업본부 본부장이 선임됐다. 김 대표는 “보험산업에서 GA 영업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시장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무엇보다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자회사형 GA 설립은 신한라이프가 지난 2020년 8월 만든 ‘신한금융플러스’를 필두로 이듬해 한화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이 각각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설립해 전속 설계사를 모두 이동시키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같은 해 현대해상이 ‘마이금융파트너’를, 하나손해보험도 ‘하나금융파인드’를 출범, 지난해에는 동양생명이 ‘동양생명금융서비스’를, KB라이프생명은 ‘KB라이프파트너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제판분리를 추진하고 나서는 것은 자사 상품만 팔던 전속 조직과는 달리 다른 생보사 외에 손해보험사의 상품도 취급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업은 지난 2015년 이후로 2017년(-4.9%), 2018년(-2.7%), 2021년(-0.6%), 2022년(-9.1%) 등 네 차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만큼 장기간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보험사의 제판분리는 인건비, 지점 유지·관리비 등 고정비용 지출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보험업계는 제판분리를 통해 설계사의 경쟁력 향상과 그로 인한 수입 증대, 소비자 편의 향상 등 이해당사자 모두가 윈윈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여의도 63빌딩에서 엠금융서비스, 한국보험금융, 유퍼스트보험마케팅과 ‘오렌지트리 공동사용을 위한 전략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각사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생명>
지난 6월 20일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여의도 63빌딩에서 엠금융서비스, 한국보험금융, 유퍼스트보험마케팅과 ‘오렌지트리 공동사용을 위한 전략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각사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화생명>

1분기 실적 개선·조직 확대도 활발

기존 자회사형 GA들의 실적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가장 큰 조직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의 경우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올해 1분기에는 당기순이익 171억원을 기록했다.

미래에셋금융서비스 역시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9억원 증가한 27억원을, 영업이익은 66억원이 늘어난 19억원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중소형 GA들을 흡수하는 등 조직 확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화생명은 지난 2021년 GA업계 최대규모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출범한데 이어 올 1월에는 GA업계 1위인 피플라이프를 인수했다. 현재는 기존 GA 조직인 한화라이프랩까지 총 3개 대형 GA(설계사 약 2만5,000명)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가 덩치를 키워감에 따라 영업지원 플랫폼 등 시스템을 사용하고 싶어하는 GA도 늘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최근 엠금융서비스, 한국보험금융, 유퍼스트보험마케팅 등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3개사와와 통합 영업지원 디지털 세일즈 플랫폼 '오렌지트리' 공동 사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생명금융서비스의 경우 지난 2021년 말 유니온사업추진TF를 조직해 지속 가능한 영업조직 영입과 정착을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첫 시도로 지난해 3월 메트라이프금융서비스 일부 조직을 데려왔다. 이어 같은해 5월과 8월에는 각각 라이나생명금융서비스 8개 지사와 다올프리에셋 전체 조직을 흡수했다.

이밖에 현대해상의 마이금융파트너도 최근 대구지역에 기반을 둔 소형 GA 인리치에셋을 인수합병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국내 보험시장의 보험상품 소비는 보험소비자가 능동적으로 가입하는 구조가 아니라 설계사의 추천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형태”라며 “이에 영업력 확대를 위해선 중소형 GA 인수 등 조직 확대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보험연구원>
<사진=보험연구원>

과당경쟁 우려에 규제 마련 필요성

한편, 이러한 GA 업체들의 경쟁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집규제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보험사의 자회사형 GA 설립 배경 및 특징을 평가하고 보험회사 경영전략 및 금융당국의 대응 과제를 제시하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보험사의 자회사형 GA 설립 확산은 소비자들의 보험상품 가입 경로, 보험산업의 매출구조, GA 시장 경쟁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보사의 자회사형 GA 설립이 늘어나면서 생명보험 가입경로가 손해보험상품 가입방식과 유사하게 전속설계사에서 GA 채널로 재편되고 있다.

아울러 소비자의 보장수요 변화와 모집시장에서의 GA 채널의 영향력 확대가 맞물리면서, 사람의 질병·상해·간병 위험을 보장하는 제3보험 시장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자회사형 GA 설립이 증가하면서 GA 시장이 '자회사형 GA'와 '일반 GA'로 양분되고 있으며 판매 경쟁이 심화되면서 M&A(인수합병)를 통한 대형화 및 수익 양극화도 나타났다.

김동겸 연구위원은 보험사의 경영대응 방안으로 각 보험사의 고유역량 및 판매채널에 대한 특성 평가·분석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전략 마련을 제시했다. 전속영업조직의 판매경쟁력과 운영효율성, 상품경쟁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자회사형 GA 설립 및 운영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조직 내 갈등 문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책과제로는 판매인력 확보를 위한 GA 업체 간 과도한 경쟁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판분리 환경에 적합한 보험모집 규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판매인력 증원을 위한 GA 업체의 과도한 비용지출 경쟁과 설계사들의 잦은 이동이 불완전판매나 승환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제판분리 환경에서는 상품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객관적・중립적 위치에서 추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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