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객 예금으로 9조원대 금융 비리를 주도해 고객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원진들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판사 염기창)는 21일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연호(62) 회장에게 징역 7년을, 김양(59) 부회장에게는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이들과 함께 기소된 김민영(66) 부산저축은행장에게는 징역 5년이, 강성우(60) 부산저축은행 감사에게는 징역 6년이 내렸다.

또 안아순(59) 부산저축은행과 김후진(60) 부산2저축은행 전무 등 나머지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징역 5년~2년6월, 집행유예 5년~3년이 결정됐다.

박 회장과 김 부회장, 부산저축은행그룹 대주주들, 임원진들은 6조315억원 규모의 불법대출과 3조원대의 분식회계, 112억원의 위법배당 등 모두 9조780억원에 달하는 금융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고객 예금으로 시행사업을 추진해 출자자 대출을 받거나 불법 대출을 받고, 분식회계로 사업 실패 내용을 감춰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며 “그러나 피고인들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아 중형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상호저축은행이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된 목적을 도외시하고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저소득층이 받게 된다”며 “은행의 예금고가 마치 대주주의 사금고와 같이 사용되는 현실을 볼 때 자기사업은 엄격히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부 피고인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일수록 고수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며 “안정성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은행가에는 부도덕이 될 수 있음을 망각한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박 회장에 비해 김 부회장의 양형을 높게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부산저축은행이 직접 시행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김양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1986년부터 약 17년간 부산저축은행 대표이사직을 지낸 박 회장은 2003년 김 부회장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물론 이전에도 박 회장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취급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예금주들의 막대한 피해, 사회적 파급효과 등 천문학적 손실이 난 것에 대한 책임은 은행의 시행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김 부회장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이 직접 시행사업을 주요 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김양의 주도하에 이뤄진 것”이라며 “은행이 시행사의 주식지분을 취득하거나 시행사업을 하는 것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은행이 무너지게 된 원인을 세계적인 경제 위기 탓으로 돌리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엄청난 리스크가 필연적으로 잠재된 부동산 시행사업을 그룹의 주된 사업으로 선택한 것”이라며 “김양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조원대의 불법·부실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법원은 김 부회장의 잘못된 여신심사 방식을 근거로 들었다. 자금 대출을 원하는 시행업자들은 대출신청서 없이도 김 부회장만 설득하면 쉽게 부산저축은행 보유 예금을 사업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점을 들어 재판부는 “공적인 성격이 포함된 금융기관을 마치 자신의 사기업처럼 운영했다”고 지적하며 김 부회장에게는 검찰 구형인 징역 17년에 가까운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이번 사태에 연루돼 법정에 선 피고인들 중에는 가장 높은 형을 받았다.

재판부가 김 부회장을 주범으로 판단했지만 박 회장에 대한 책임을 적게 보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 임원진들이 각종 위법행위를 저지르게 된 것은 박연호가 만든 잘못된 기업문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봤다.

다만 “박연호가 적극적으로 은행의 자금업무에 관여한 것은 아니고 박연호의 지시에 따라 처리된 대출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양보다 책임이 무겁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검찰 기소 이후 약 8개월간 40차례에 걸쳐 법정심리를 진행해왔다.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문 분량도 500여장에 달했다.

우선 재판부는 박 회장 등의 4조5900억원 상당의 대주주 등 신용공여 부분에 대하서는 일부 피고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유죄를 인정했다.

3조원대의 분식회계 부분과 관련해 재판부는 “부산저축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대출을 실행한 뒤 대출금을 금융자문 수수료로 받거나 기존 연체채권 이자를 변제토록 해 마치 정상채권인 것 처럼 변경하는 이자상환여신을 실행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2008년 12월 박 회장과 김 부회장 등이 공모해 대전저축은행을 통해 모 건설에 80억원을 부실대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대전저축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면서 대출금을 상회하는 담보물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날 재판장을 찾은 부산저축은행 일부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형량이 너무 낮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울분을 터뜨렸다.

앞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최재경)는 지난해 3월부터 장장 8개월동안 수사를 진행, 부산저축은행그룹 임직원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로비스트, 정관계인사 등 모두 76명(구속 42, 불구속 34)을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김두우 전 홍보수석, 은진수 전 감사위원,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 서갑원 전 민주당 의원 등이 각종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한편 불법대출, 횡령·배임, 금융비리, 정관계 로비에 이르기까지 ‘부정부패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21일 박연호(62) 그룹 회장 등 임직원 21명에 대한 선고로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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