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최윤석 기자] 금융당국의 연이은 금리인상과 그로 인한 부동산 시장 불황으로 부동산 PF 사업은 증권업계의 시한폭탄이 되었다. 이어 안전자산으로 투자됐던 채권은 금리인상으로 인한 채권가격 폭락으로 실적하락을 이끌었다. 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현재 다사다난했던 2022년 증권업계의 위기와 전망을 살펴보고 향후 업계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12일 도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단회를 갖고 보증채무 2050억 원을 전액 상환했다고 밝히고 있다.<사진=강원도청>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12일 도청 기자실에서 기자간단회를 갖고 보증채무 2050억 원을 전액 상환했다고 밝히고 있다.<사진=강원도청>

채권시장 뒤흔든 레고랜드발 위기

지난 12일 강원도는 최대주주로서 지분 44%를 보유하고 있는 중도개발공사(GJC)의 채무 2,050억 원을 전액 상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9월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발표한 지 두 달여 만이다.

이날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오전 10시 25분 중도개발공사 보증채무를 모두 상환했다”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도개발공사에 대한 강원도 보증채무를 오늘로써 전액 변제했다”고 말했다.

앞서 GJC는 2020년 레고랜드 건설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그러나 아이원제일차가 부도 처리되고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섰지만 최근 GJC가 채권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자 강원도청은 보증 의무를 이행하는 대신 법원에 GJC에 대해 회생 신청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금시장은 이를 보증채무 회피 의도로 인식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지급 보증한 채권도 믿을 수 없게 됐다며 자금시장 경색 사태를 맞았다. 사태가 확산되자 강원도는 GJC의 기업 회생 신청이 보증채무를 피하려는 것이 아니며 연말까지 보증채무를 상환하겠다고 거듭 약속했지만 자금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레고랜드 채무 상환 불발 사태는 지난 9일 강원도의회가 GJC 보증채무를 갚기 위해 편성한 추경 예산안 2,050억 원을 통과시키고 금융당국의 채안펀드 조성을 발표하고서야 겨우 진정됐다.

강원도가 빚보증 의무 이행을 거부한 레고랜드의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국내 증권사 10곳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무소속)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개 증권사와 1개 자산운용사는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레고랜드 ABCP 2,050억원을 나눠 보유하고 있었다.

 
 

증권사별로는 신한투자증권(550억원), IBK투자증권(250억원), 대신증권(200억원), 미래에셋증권(200억원), 삼성증권(200억원), NH투자증권(150억원), 한국투자증권(150억원), DB투자증권(150억원), 유안타증권(50억원), KB증권(50억원)이 총 1,95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증권사 10곳은 모두 신탁 혹은 위탁계좌 등 법인 고객 계정에 편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부동산발 채권 위기, 증권업계 전반 확산

레고랜드 채무 상환 불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여기에서 촉발된 채권 위기는 증권업계 부동산PF와 채권시장 전반에까지 파장이 이르렀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증권사 유동성 및 건전성 리스크 점검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계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채권평가손실로 2분기 1조 3,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해 조사 대상 업계 전반 2분기 당기 순이익이 작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선 이 같은 증권업계 실적에서 중소형 증권사의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할 경우 건전성이 부정적으로 재평가돼 신용위험이 상승하고 단기자금시장의 투자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건전한 증권사의 차환도 어렵게 만드는 유동성 경색 상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 같은 위기 인식은 3분기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4일 발표한 ‘2022년 3분기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국내 58개 증권사의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2.8% 감소한 1조4,38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일회성 수익인 유형자산처분이익(영업외수익) 4,668억원을 제외하면 당기순익은 1조원을 밑도는 9,712억원으로 전년 대비 낙폭은 60%에 달한다. 각 사업 부문에서 전분기 대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한 사업 부문은 9,926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37.2% 감소한 IB(기업금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IB는 부동산 PF 부실화 가능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내년에는 신규 PF 중단이 연중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실적은 올해보다 부진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11월에는 주식시장 반등, 거래대금 회복, 채권금리 하락, ELS 발행 증가 등으로 영업환경은 10월 대비 큰 폭으로 개선됐다”며 “증권사의 부동산PF 관련 신용 리스크가 상승하고 있으며 정부의 여러 유동성 공급 대책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단기 자금 조달 시장의 경색 완화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얼어붙은 증권시장, 증권업계 버티기 나서

위기가 이어진 증권업계에서는 또 다시 찾아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증권업계에선 시장 경색을 대비한 유동성 마련을 위해 분주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다올투자증권은 삼일PwC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국내 금융사 등 인수 후보자를 대상으로 다올인베스트먼트 매각에 나섰다. 다올투자증권은 보유하고 있는 다올인베스트먼트의 지분 전량(52%)에 대해 2000억원 이상 수준에서 매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올인베스트먼트는 1981년 설립된 국내 1세대 VC로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등 스타트업에 투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다올투자증권의 알짜 계열사 매각은 최근 부동산 시장 자금 경색으로 부동산PF와 같은 IB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다올투자증권이 선제적으로 유동성 확보차원에 나선 것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다올투자증권은 지난 11월 21일에도 태국 현지 다올 타일랜드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희망 매각가인 1000억원대에 인수할 상대를 찾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올투자증권 관계자는 “당장 유동성에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장 상황이 불안정한 가운데 장기적인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태국 현지법인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 IB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모 회사채를 발행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달 29일 1800억 회사채(AAA·DGB금융지주 지급 보증) 발행 계획을 수정해 3,000억원으로 발행 규모를 증액했다. 수요예측 때 5400억원의 자금이 몰리며 발행 제한선이 3,600억원으로 높아진 영향이다.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확보한 자금 중 2,000억원은 이달 중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CP)을 상환하고, 1,000억원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운영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앞서 최근 한달 간 다섯 개 증권사가 유동성 확보를 위한 운영자금 조달 등 목적으로 단기차입금 한도를 늘렸다.

키움증권은 지난 17일 안정적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CP 발행 한도를 늘리면서 총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 7조 5,900억원에서 8조 5,900억원으로 1조원 증액하기로 의결했다.

지난 14일에는 한화투자증권이 단기차입금 한도를 기존 3조 9,219억원에서 4조 4,219억원으로 늘렸고 유진투자증권도 금융기관 차입 한도를 기존 1조 2,500억원에서 1조 5,500억원으로 증액했다. 이 밖에 현대차증권과 BNK투자증권도 지난 4일과 지난달 31일 각각 3,000억원, 800억원씩 한도를 높였다.

이 같은 중소형사 유동성 확보 행보는 향후 증권 시장 전체 리스크관리에 있어서 핵심이 될 전망이다.

이재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자금시장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채권시장에 산재해 있는 리스크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CP 시장에서 유동성 지원이 진행되고 있지만 충격 없이 잔액이 조정되기는 어려운 환경이다”고 평가했다.

곽준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 유동성·건전성이 아직 양호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하에서 증권사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며 “중소형 증권사는 일부 자산 가격 하락에 더욱 취약해 수익성 악화가 장기화할 경우 건전한 중소형 증권사의 차환도 어렵게 만드는 유동성 경색 상황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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