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로존 재정위기가 악화일로를 가고 있자 해결을 위한 구제기금 확충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2일 베이징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기자 회견에서 “유럽의 재정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중국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향후 출범발 유로안정화기구(ESM), 그리고 또다른 채널을 통해 유로존 재정 위기를 해결하는데 개입을 확대하는 방안을 연구․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유럽이 금융체제의 안정과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통합을 촉진할 수 있을지는 유럽의 미래는 물론이고 중국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며 “중국은 유럽을 도와 유로의 안정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을 유로존 구제기금 확충에 참여시키는 것은 메르켈 총리의 이번 중국 방문 목적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현재 유로존 구제기금 재원 규모는 EFSF의 가용 잔액인 2천500억 유로, 7월 출범 예정인 ESM의 자본금인 5천억 유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 몫인 2천억 유로를 모두 합쳐도 1조 유로가 채 안 된다.

시장에서는 유로존 구제와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충분한 방화벽 구축을 위해서는 2조 유로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등이 구제 기금 규모와 이에 따른 유로존 회원국의 분담액 증액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3조2천억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가진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세계 경제의 안정화를 위한 책임을 함께 하는 차원에서 유로 안정화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며 중국의 지원 의사를 환영했다.

원 총리는 그러나 참여 규모와 방법 및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원론적인 의지 표명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 총리는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에 동참해달라는 국제 사회의 요구에 대해서는 “이란과의 일반적인 상업 관계를 정치화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유럽연합(EU)은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제재로 오는 7월 1일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기로 한 상태다.

원 총리는 “중국은 국제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위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무역에 관한 기준에 대해서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교와 무역의 분리를 노선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견해차만 확인했을뿐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 총리는 이와 관련 “양국의 결속이 인권 문제에 대한 의견 교환을 지속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이해를 높여나가게 될 것”이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메르켈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최근 티베트 시위대에 대한 중국의 총격 진압에 우려를 표명하는 등 인권 문제 개선에 힘써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AP 통신 등 외신들은 유럽 경제위기 이후 줄줄이 베이징을 찾으려 하는 유럽 정상들 가운데 메르켈 총리가 첫 번째 지도자라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방중 기간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위원장과도 별도로 회담하고 3일에는 원자바오 총리와 독일 기업들이 밀집한 광둥(廣東)을 방문해 양국 기업대표 좌담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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