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 산업부 기자
박준형 산업부 기자

[현대경제신문 박준형 기자] ‘교각살우’라는 말이 있다.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는 말로 결점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말한다.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대형유통업체 신규출점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의원이 지난 1월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복합쇼핑몰의 월 2회 의무휴업,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대형유통업체의 신규출점 규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제는 대형마트, 복합쇼핑몰을 넘어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11일에 진행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기회에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재논의가 있었다. 회의에서는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확대하고,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 대상에 백화점, 면세점, 농협하나로마트를 포함하자는 등의 내용이 논의됐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유통산업의 효율적인 진흥과 균형 있는 발전,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개정안이나 논의 중인 내용을 보면 유통산업의 균형발전이나 소비자 보호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졌다. 2010년에는 전통시장 주변 500m 이내 대형마트의 출점이 제한됐다. 2011년에는 제한거리가 1km로 확대됐고, 2012년에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정이 신설됐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형유통업체들의 성장세는 꺾였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대규모점포 규제 이전인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유통기업의 연평균 순이익 증가율은 7.6%였으나, 규제 강화 이후인 2012년부터 2016년에는 순이익이 연평균 6.4% 감소했다.

규제 강화로 대형유통업체의 성장세는 꺾였지만 전통시장의 성장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소비자단체 E컨슈머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전통시장 소비자 방문자 수는 대형마트의 휴무일보다 영업일에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은 서울 광장시장·신원시장, 광주 양동시장, 부산 남항시장, 청주 육거리시장 등이다. 이 중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 방문객이 더 많았던 곳은 서울 신원시장 단 한 곳이었다. 나머지는 대형마트 휴무일보다 영업일에 방문객이 더 많았다.

많은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찾는 이유는 접근성이 좋은 일정 공간에서 다양한 품목의 제품을 브랜드별로 품질·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만난 한 여성소비자는 “아기 분유를 사야하는데 마트에 가보니 휴무일이었다. 동네 슈퍼나 시장에는 평소 이용하는 브랜드 분유가 없다”며 “소상공인 보호도 좋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유통산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는 옳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는 단편적인 사고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없다.

전통시장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상품, 청결, 편의시설, 주차문제 등에서 찾아야 한다. 소비자가 더 찾게끔 할 접점이 뭔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대형마트만 규제해서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전통시장으로 돌릴 수 없다.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대다수의 점포들이 소상공인이라는 점도 문제다. 지난 4일 한경연은 복합쇼핑몰 규제 시행시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5.1% 감소한다고 밝혔다.

복합쇼핑몰 입점 소상공인들 중 규제 강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81.7%인데 비해, 찬성은 7%에 불과했다.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소상공인 보호에만 집착해 유통산업의 발전, 소비자 보호, 소상공인 보호 모두를 놓친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유통산업 규제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면 새로운 방식의 논의가 필요하다. 소상공인·소비자·유통사 모두에게 비난 받고 있는 개정안이 과연 유통산업발전을 위한 법안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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