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정기주주총회서 회장·부회장직 신설하기로
내부 직원들 트럭시위하면서 반발…“회사 사유화”
조욱제 사장 “회사 사유화 없다는 약속 지키겠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제101기 유한양행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제101기 유한양행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이금영 기자] 고(故)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양행에 회장직이 신설된다.

유한양행은 15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본사에서 ‘제101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회장·부회장직 신설 안건을 가결했다.

이날 주총에서는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과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김열홍 유한양행 R&D(연구개발) 사장·신영재 법무법인 린 파트너 변호사·김준철 다산회계법인 회계사 등 5명의 이사 선임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다.

또 회장·부회장 직위 신설도 함께 상정됐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서 유한양행에서 회장·부회장 직제는 1996년 이후 28년 만에 부활했다.

유한양행은 1962년 회사를 창립한 유일한 박사와 그 측근인 연만희 고문 등 두 명만을 회장으로 뒀다.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1996년 이후 회장·부회장 없이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채택,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다.

평사원 출신의 부사장 중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3년 임기에 1번의 연임만 가능하게 해 특정인에 의해 지속 경영되는 것을 차단했다.

유일한 박사의 ‘가족경영을 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지켜온 것이다.

회장·부회장 직위 신설에 관한 정관 개정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이정희 현 이사회 의장이 회장직에 앉기 위해 직제를 신설한다고 주장한다.

이 의장은 2015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해 연임에 성공, 6년간 유한양행 사장을 역임한 후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이전 대표들은 사장 임기가 끝나면 모두 은퇴했었다.

이들은 “이 의장이 회사를 사유화하려고 회장직을 신설한다”며 “정관까지 변경해 사장 역임 후 의장이라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젠 회장 자리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의장이 대표직 수행 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회사 자금을 방만하게 투자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한양행은 “글로벌 제약 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직급을 유연화하려는 조치”라며 “회사의 양적·질적 성장에 따라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인물을 선임할 계획이 전혀 없고 주총에서도 직제만 개편할 뿐 회장 선임은 예정되어 있지 않아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공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약 300명의 유한양행 직원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이 시위는 회장직 신설에 반발한 내부 직원들의 모금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참여 직원들은 또 ‘유일링 이사 유한재단 이사직 재선임’도 요구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공익 재단인 유한재단이 최대 주주(15.77%)로 회사 이익이 재단에 배당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유일한 박사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이유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만들어진 지배 구조이다.

그런데 지난 2022년 이정희 의장이 재단 이사가 되고, 유일링 이사는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재단 또한 사유화됐다는 것이 직원들의 주장이다.

이 같은 갈등이 이어지자 유한양행 창업주 고(故) 유일한 박사의 하나뿐인 직계 후손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총 참석을 위해 최근 귀국하기도 했다.

유 이사는 이와 관련해 “회장직이 신설되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창립정신이 흔들릴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주총에서도 회장직 신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유 이사는 이날 주주총회에 앞서 “할아버지 유지(정신)이 제일 중요하다”며 “모든 것은 할아버지 유지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총에서도 “유일한 박사님의 뜻과 정신에 입각해 정직하게 회사를 경영해야 한다”며 “유일한 박사님의 뜻에 따라 회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가이드라인이 돼야 하고, 그것이 얼마나 정직한 방법인지, 또 얼마나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평가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총 안건 통과 후 조욱제 사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회사의 사유화에 대해선 제가 회사에 몸 담는 동안 그런 일이 없도록 꼭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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