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숲 작가

[삽화 = 조민성 화백]
[삽화 = 조민성 화백]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14장 비밀(1)

 

이 주가 지났지만 구보아저씨의 의식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저씨의 표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평온했다. 그동안 나는 병원에 면회 가는 날을 제외하곤 레트로 가든에 처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주일도 안 되어 경찰 수사는 흐지부지 넘어가는 눈치였다. 피해자가 의식이 돌아와야 뭔가 밝혀질 텐데 지금으로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여자는 평소와 달리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제는 서로 말이 없어도 어색함을 견디는 관계는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생각에 빠져 신호를 여러 번 지나치거나 놓칠 뻔했다. 다른 때 같으면 여자가 주의를 줬겠지만 급브레이크를 밟는데도 여자는 별 반응이 없었다.

또 오겠죠?”

…….”

기다릴 겁니다. 어떤 새끼인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 뭐라고 하셨어요?”

아저씨를 그렇게 만든 새끼요. 내 손으로 꼭 잡고 말 겁니다.”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오른손을 창틀에 올린 채 엄지손톱을 툭툭 물어 뜯었다.

우빈씨는 누군가에게 인생을 통째로 빚진 적 없어요?”

인생을요? 그것도 통째로?”

내 탓이에요. 말렸어야 했는데……

무슨 소린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어 여자를 쳐다보았다. 오전의 늦가을 해는 곳곳으로 부서졌다. 맑은 빛이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에 반사된 여자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햇빛 안에는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만 있는 게 아니었다. 차갑고 쓸쓸하고 창백한 느낌까지 공존한다는 걸 여자의 옆모습을 통해 깨달았다. 라디오에서 익숙한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랫말의 한 구절이 귓속을 파고들어 무의식에 잠겨 있던 가느다란 본능을 일깨웠다.

 

어디쯤 와있는 걸까 가던 길 뒤 돌아본다

저 멀리 두고 온 기억들이 나의 가슴에 말을 걸어온다

(이문세 '슬픔도 지나고 나면')

 

여자는 창틀에 기대고 있던 손을 내려 두 손을 포개었다.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내 처지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까지 가려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궤도에 머물러 이리저리 떠밀리는 중이었다.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순간들이 무의식의 심연에서 조금씩 회오리처럼 올라왔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두 손을 오므리고 있는 여자의 동그란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여자의 손바닥 안에는 빛이 만들어낸 그늘이 비밀스러운 우물처럼 담겨 있었다. 늘 에너지가 넘치고 밝은 모습만을 봐와서 그런지 조금은 생소했다. 나는 내 안의 무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또는 여자의 생소한 모습이 낯설어 일부러 목소리 톤을 높여 물었다.

누구한테 빚을 졌고, 뭘 말려야 했다는 건데요?”

여자가 어떤 말인가를 꺼내려는데 우리는 이미 병원 주차장에 도착한 상태였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중환자실 쪽으로 걸었다. 아저씨가 깨어나 있기를 바라면서. 아저씨가 깨어나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릴 테니까.

구보아저씨의 상태는 여전해서 우리의 바람은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자는 놀라운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운전을 하며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닌 것 같아 차 한 잔 마시고 들어가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갓길로 빠졌다. 이디야 카페로 들어가 나는 어피치 블러썸 티를 여자는 콜드 브루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우리는 음료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각자 생각에 빠져 있었다.

구보아저씨가 그렇게 될 걸 아저씨도 해주 씨도 이미 다 예상한 일이라니 무슨 뜻이에요?”

예상까지는 아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거죠.”

여러 가지 가능성?”

구보아저씨는 그 기타 때문에 누군가 찾아올 거라고 했어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고, 그래서 기다린다고. 내가 보기엔 그 기다림이 하염없고 막연해 보였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난 기타의 존재를 바깥에 드러내려고 애썼죠. 그래서 27클럽 회원 모임도 이끌었구요. 물론 말리가 도움을 많이 줬지만요.”

왜요?”

여자는 대답 대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러 개의 얼음이 다르륵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몰렸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얘기를 꺼냈으면 속 시원하게 모두 얘길 하든가, 갑자기 멈추면 어쩌자는 건지. 궁금증만 더해져 침을 꿀꺽 삼켰다. 구보아저씨는 대체 누구를 평생 기다려 왔다는 걸까. 그 누군가와 기타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걸까. 나는 여자와 아저씨 사이에 내가 모르는 어떤 내용들이 많다는 것에 강한 질투를 느꼈다.

혹시 그 기타가 진짜 루시퍼인 걸까. 그 시절 나와 친구들은 우리가 잠시 소유했던 기타가 진짜 루시퍼라고 우기긴 했지만, 속으로는 진짜라면 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숨겨져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진짜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용주가 워낙 신비감을 조장한 탓에 훔친 기타가 진짜 루시퍼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각자 가슴에 품고 있던 죄책감의 무게를 일정 부분 정당화 할 수 있었으니까. 진짜 루시퍼였기 때문에 저주를 내려 사람을 죽이게 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구보아저씨의 기타가 진짜 루시퍼라면 어떻게 된 걸까. 아저씨가 기다리는 사람은 또 누구일까. 많은 의문들과 함께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여자는 말없이 끈질기게 창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길게 늘어선 줄을 견디지 못해 이탈하는 심정이 되어 말했다.

구보아저씨가 그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그럼 범인이 누구인지 아저씨는 당연히 알 텐데 형사들한텐 왜 전혀 내색을 안 했을까. 나한텐 왜 또 미심쩍다는 듯 이것저것 캐물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퍼즐이 어긋났다.

여자는 드디어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았다.

예상과 확신은 서로 다른 영역이에요.”

은근슬쩍 핵심을 피하려는 의도가 보여 나는 재빨리 말을 낚아챘다.

인생을 통째로 빚졌다는 건 무슨 얘기예요?”

여자는 구보아저씨를 말리지 못한 건 자기 탓이라며 자책했다. 그러다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나를 성공이나 명예욕에 미친 여자로 많이 생각해요.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나는 여자의 말이 다 맞고 다 틀리더라도 거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내가 투덜거릴 때마다 구보아저씨가 언제나 강조했던, 모든 것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야, 라고 한 것처럼.

마치 고해성사라도 듣고 있는 것 같아 경건해지려고 했다. 여자는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보아저씨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하필, 자살 직전 우연히 아저씨 눈에 띤 건데, 그때는 하필, 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어쨌든 구보아저씨는 여자에게 인생을 다시 살 기회를 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통째로 빚졌다는 표현이 맞긴 했다. 게다가 당시 뱃속의 아이까지 살린 셈이니 두 배의 인생을 지켜준 거라고 했다. 아이는 곧바로 해외로 입양이 되어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여자의 말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누구보다 아픔을 깊이 새기고 있는 사람이 그토록 밝은 에너지로 가득하다니. 가장 밝은 곳에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더니 여자가 그런 건가.

세월이 흘러 구보아저씨가 폐인이 되어 공원을 떠도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수소문 끝에 여자는 아저씨를 돕게 됐다고 했다. 여자는 진지하게 얘길 이어갔지만 깊은 내용에 대해선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적어도 구보아저씨와의 인연은 아주 오래 되었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여자에게 구보아저씨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했다. 나는 여자의 말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무거운 짐을 안고 오느라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여자는 지금 묵직한 무게에 짓눌린 듯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차고 넘치는 물을 조금씩 퍼내듯 묵직한 무게의 물질을 조금씩 퍼내는 중일지 몰랐다. 여자에게 아저씨는 늘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인 것처럼 나 역시 그녀에게 또 다른 나무가 되고 싶었다. 나무와 나무는 움직이지 못해도 각자의 세계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듯,

 

*

27클럽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동기가 있다는 동네로 갔다. 동기의 작업실은 망원동이었는데 동기는 합정역으로 오라고 했다. 여자가 내 얘길 듣고 함께 가자고 했지만 나는 혼자 가고 싶다고 했다. 한정식 집에서 동기는 친한 후배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밥 생각이 없어서 두 사람만 음식을 주문했다.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끝없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문을 보는 것처럼 조바심이 났다. 식사부터 끝내고 얘기를 나누자고 해서 어떻게 됐는지 묻지도 못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식사를 금방 마쳤다. 후식을 시키며 동기가 물었다.

근데, 니가 말한 그 사건이란 게 사실인 건 맞냐?”

무슨 소리야?”

아 그게, 제가 그 해 기사를 모두 뒤졌는데 선배가 말한 사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그렇게 중대한 사건이었으면 짧게 한 줄이라도 나왔어야 하는 건데 말이죠.”

나는 실망한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아닌 절도사건으로 마무리 됐다면 기사화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음악계 거장이 죽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런데도 아무런 기사를 찾지 못했다니 이상했다.

그런데 그 날 그 동네서 신고 접수가 된 사건 하나가 있긴 했어요. 고딩들이 저지른 일이라 해프닝으로 마무리 된 사건이지만요. 그때 피해자가 워낙 유명한 기타리스트여서 담당 형사가 기억을 하더라구요.”

야 내가 아주 특별 부탁을 했더만 이 친구가 그 동네 경찰서까지 가서 그날 사건 담당 형사 수배하고 아주 그냥 개고생 했어. 운 좋게도 그 사건을 기억하는 형사를 찾아냈단다. 대박이지 않냐? 이 친구 별명이 백상아리거든. 한 번 물면, ? 알지?”

그 형사가 뭐라고 했습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워낙 유명밴드 출신의 신고 접수여서 조사를 하긴 했답니다. 그런데 잡고 보니 다 고등학생들인데다 돈이나 고가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꼴랑 기타 한 대 훔친 게 다였대요. 피해자가 다행히 심하게 다친 게 아니어서 합의만으로 사건은 마무리 지었답니다. 그때 주범이었던 학생이 다 뒤집어쓴 건지 학교에서 혼자 정학처벌까지 받았다고 해요.”

나머지 학생들은요?”

나머지 학생들은 부모들이 피해자랑 합의를 본 건지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고요. 3 수험생들이어서 참작이 됐겠죠.”

내가 부탁한 그 사건 맞아? 뭔가 이상하잖아. 피해자가 입원까지 했다는데 별로 안 다쳤다고? 그리고 합의라니? 또 꼴랑 기타 한 대? 게다가 죽은 사람도 없었다고?”

야야, 한우빈, 너 뭔 소리 하는 거냐? 사람이 죽었으면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겠니?”

나는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사건을 파헤친 게 아닌가 재차 물었다.

내가 듣기론 분명히 피해자가 죽었다고 들었어. 그것도 경찰에게 직접 들었다고.”

? 경찰에게 직접요? 친구분이 겪은 사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친구 얘기죠. 뭐 암튼, 그때 그 기타가 당시 음악계에선 워낙 유명했던 기타이기도 했지만 그 친구랑 그때 연락이 끊겨서 궁금해서 그럽니다.”

여어 우빈, 이 자식 수상한데? 혹시 용주 얘기 아냐? 그러고 보니 그 당시 용주가 정학 먹어서 학교 안 나온 적 있는데? 너도 2학기 땐 아예 학교도 안 나왔잖아? 이 강한 스멜은 뭐지?”

쓸데없는 소린 그만 두고! 그럼 도둑맞았다는 그 기타는 어떻게 되었답니까?”

야야 커피 마시러 가서 계속하면 안 되겠냐.”

재밌는 건 애들이 훔쳐 간 그 기타가 고가의 기타도 아니고, 악기사에서 파는 기타인데, 디자인이 약간 특이했다고 해요. 더 웃긴 건, 그 기타가 여러 번 신고 접수된 기타라는 사실이죠. 그러니까 피해자 역시 기타의 진짜 주인이 아니었던 겁니다. 당시 피해자 말로는 동료의 기타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 동료란 사람도 행방불명 상태여서 확인이 불가능했구요. 결국 그 기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셈이죠.”

히야 재밌네. 혹시 우리가 그토록 탐내던 루시퍼아닐까?”

뭐 어쨌든 그 기타는 나중에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가긴 했는데, 피해자가 그날 이후 티브이 출연도 거부하고 음악 활동을 일체 중단하고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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