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楚 장왕-鄭을 벌하다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叛而伐之 服而舍之 반이벌지 복이사지
배반하면 토벌하고 복종하면 용서한다 (<左傳>선공 12년)
정나라를 토벌하고 또 용서한 초 장공에 대하여 晉의 대부 隨武子가 평한 말 중에

초나라 장왕이 정나라를 정벌했다.

처음에 정나라를 친 것은 일찍이 정나라가 초 장왕의 부탁으로 송나라를 공격했을 때 사로잡은 화원을 쉽게 풀어주고 화해한 일에 대해 문책하려는 것이었다. 정나라는 진(晉)나라의 도움을 받아 방어하고 화해했다.  

정나라의 새 군주는 양공(襄公)이었다. 본래 자공은 자라탕을 혼자 먹은 영공을 살해한 뒤에 대부들과 함께 영공의 아우 거질을 군주로 세우려고 했는데, 거질이 사양하면서 “반드시 현명한 사람이 등용되어야 하는데 나는 불초하며, 순서대로 한다면 공자 견이 연장자다”라고 사양하여 견이 제후 자리에 올랐다. 견은 죽은 영공의 서제다.

새 군주 양공은 곧 영공을 살해한 자공 일족을 제거하려 하였는데, 거질이 반대했다. “자공을 꼭 제거하겠다면 나는 이 나라를 떠나겠다.” 자가와 자공 등은 그대로 대부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뒤에 자가가 죽자 정나라 사람들은 그의 남은 가족들을 추방했다.

양공이 초를 물리친 뒤 8년째에 초나라가 다시 침공해 왔다. 정나라가 진(晉)과 동맹을 맺고 초나라군은 석 달 동안이나 도성을 포위하여 공격을 계속했다. 정나라는 더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다.

초왕이 정나라 수도로 들어가자 양공은 윗도리를 벗고 염소를 끌고 나와 신하의 예를 갖췄다.

“제가 하늘에 버림을 받아 당신을 섬기지 못하였으므로 대왕께서 진노하게 하여 친히 여기까지 오시게 한 것은 오직 저의 죄입니다.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 저를 남해로 귀양을 보내신다 해도 따르겠으며, 땅을 빼앗아 제후들에게 나누어주고 저를 노예로 삼게 하신다 해도 따르겠습니다. 명령만 하소서. 그러나 만일 대왕께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선조들의 얼굴을 생각하시어 그들의 사직에 제사가 끊이지 않도록 우리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고 앞으로 낮은 자리에서 대왕을 섬기도록 허용해주신다면, 이것은 물론 사치스런 저의 소망입니다만, 그야말로 대왕의 은혜요 감히 바라는 저의 본심입니다.”

좌우의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장공은 정나라와 양공을 살려두기로 했다. “정나라 임금은 이토록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니 틀림없이 그의 백성들이 따를 것이다.” 

이러는 사이 정나라의 동맹국인 진(晉)나라가 보낸 구원군이 정나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출병 전부터 초나라와 맞서는 것이 옳은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여 출발이 늦었다. 더구나 이제 정나라가 이미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다시 혼란에 빠졌다. 진군의 지휘자들 사이에 격론이 펼쳐졌다.

“전쟁은 적의 빈틈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오. 초나라는 정치와 형벌, 법과 예의가 다 올바로 행해지고 있어 임금을 원망하는 자가 없으니 꺾기 어렵소. 막 전쟁을 치렀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진법을 써서 군대는 강하고 군사들의 사기 또한 높습니다. 굳이 이런 군대를 공격할 필요도 없고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패자였던 이유는, 군대는 용감하고 신하는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오. 동맹국이 남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내버려두는 것은 노력이 아니며, 적의 뒤를 추격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오. 패자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느니 죽읍시다.”

결국 진나라 군대는 철수하는 초나라군의 뒤를 추격했다. 초 장왕이 되돌아와 진나라 군대를 기습했다. 진나라 군대가 후퇴하는데, 이미 초나라 편이 된 정나라가 또한 협공해왔기 때문에 진군은 황하에서 크게 패했다.


이야기 PLUS    

힘없는 나라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 나라에 붙거나 저 나라에 붙어 생존을 구걸해야 한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다. 거칠 것 없는 힘을 자랑하고 있는 초나라와 아직 진 문공 시대 패권의 향수에 젖어 있는 진나라 사이에서 허약한 정나라는 힘겹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한번 정벌을 당하면 승전국 군주의 뜻에 따라서 이 나라는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도 있었다.

정 양공은 웃옷을 찢어 몸통을 드러내고 최대한 자신을 낮춰 굴복함으로써 겨우 사직과 영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초나라에 굴복한 대신 그동안 동맹이던 진나라와는 원수가 되었다. 초나라군이 돌아간 이듬해 진나라는 정나라를 공격하여 섭섭한 감정을 풀었다. 한때 주 천자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친족 제후이던 정나라는 어쩌다 이렇게 동네북이 되었던가. 또 초와 같은 변방의 나라는 어찌하여 다른 제후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대국이 되었던가. 두 나라의 제후들이 마음을 쓰는 방법과 크기를 비교해보면, 나라의 처지가 단지 ‘운명’과 같은 추상적 원인만으로 변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양공은 윗도리를 벗고 염소를 끌고 나와 말했다.

“대왕께서 저를 남해로 귀양을 보내신다 해도 따르겠으며, 땅을 빼앗아 제후들에게 나누어주고 저를 노예로 삼게 하신다 해도 따르겠습니다. 명령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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