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신문 황정택 기자] 팬택이 우여곡절 끝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팬택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팬택 경영진이 이통사에 도움을 호소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언론은 연일 팬택의 위기를 떠들어대며 이슈 만들기에 급급했고 그때부터 국민들은 ‘팬택의 생사가 이통사에 달려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팬택의 연이은 호소와 여론을 의식한 이통사는 팬택에게 받아야할 채권을 2년 유예해주면서 팬택의 숨통을 터 주었다. 그러나 이통사에게 지급해야할 채권이 유예됐을 뿐 채권단이나 협력업체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은 채무 문제 해결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금을 확보해야 하지만 이준우 대표가 말했듯 팬택의 현금잔고는 바닥이 난 지 오래다. 현금이 나올 구멍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 단말기 판매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팬택 입장에선 속이 탈만 하다.

결론적으로 물건이 제대로 팔리지 않으면 팬택은 존속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당장 팬택의 입장에서는 이통사에 단말기 구매를 호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팬택 경영진도 협력업체들도 전부 이통사 바라보기에 급급하다. 때론 사정도 하고 윽박도 질러가며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이통사에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이통사가 팬택의 단말기 물량을 받아줘야 할 이유는 없다.

이통사들은 필요에 따라 물품을 받고 고객들에게 판매할 뿐 재고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물품을 받아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팬택의 사정이야 딱하지만 이통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팬택을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팬택을 지원해야만 하는 국민적 정서가 형성되는 현상은 바람직해보이진 않는다. 국가도 이통사도 팬택사태를 어떻게 해야할 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어느 순간부터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돈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승자와 패자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루에도 수십 개의 회사가 문을 닫고 다시 생겨난다. 그들 모두 살얼음판 같은 경쟁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패자’를 품고 지원해줄 수는 없다.

일부 휴대폰 사용자들의 착각 중 하나가 팬택의 생사가 이통사에 달려있다는 생각이다. 일정부분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팬택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다. 소비자가 정말로 팬택이란 기업이 유지, 재기하기를 바란다면 팬택의 단말기를 구매해주면 된다. 그렇게 팬택의 단말기가 하나하나 팔려나간다면 이통3사는 당연히 팬택의 단말기를 팔아 줄 것이고 팬택의 경영정상화가 가능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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